오늘보다

  • 건강과 사회
  • 2018/10 제45호

툴젠의 유전자가위 특허 논란을 바라보다

금융세계화 비판의 관점에서

  • 김진현

주식 부자 과학자를 양성하는 혁신성장 정책

3세대 유전자가위 기술 특허 논란이 뜨겁다. 9월 7일 한겨레신문의 단독보도에 따르면 세금을 지원받아 만든 유전자가위 특허를 민간기업 ‘툴젠’이 가로챘다고 한다. 유전자가위 연구자이자 툴젠의 최대주주인 김진수 전 서울대 화학부 교수가 주도자로 지목되었다.

절차적 문제와 구조적 문제가 복잡하게 뒤섞여있다. 한겨레의 보도는 절차적 문제에 집중했다. 구조적 문제는 과학기술연구에서 국가와 금융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어떻게 개입하고 있는지와 관련된 것이다. 이 글에는 구조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사건을 조명하고자 한다.

이번 특허 논란은 혁신성장의 모순과 금융세계화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국가 세금으로 개발한 기술을 기업이 가져가서 주식시장에서 시세차익을 확보하는 것이 바로 혁신성장이 추구하는 본질적 목표이기 때문이다. 김진수 박사와 툴젠의 사례는 모든 벤처기업이 꿈꾸고, 문재인 정부가 권장하는 표준모델이다. 세계적 맥락에서 보면 1970년 후반부터 미국과 유럽이 추구해온, 금융세계화에 적합한 기업모델이기도 하다.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특허권을 강화했으며, 주식시장과 금융거래를 자유화하고 세계화했다. 

그러나 이런 기업모델은 한국에서는 성공할 수 없고, 주식시장 거품만 형성시킨다. 재벌기업이 대부분의 기술을 독점하고 있고, 대학과 연구소의 과학기술 수준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설령 미국과 같이 성공적인 기업모델로 자리 잡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특허는 수많은 이들이 기여해서 탄생한 과학기술에 독점권을 부여해 기술 확산을 막는다. 그뿐만 아니라 특허권자에게 마치 지대(地代)와 같은 형태의 수익을 장기간 부여한다. 이 때문에 대학연구가 분야를 막론하고 급속도로 상업화된다.
 
김진수 전 서울대 화학부 교수
 

유전자가위 기술과 김진수 박사, 그리고 툴젠

유전자가위는 세포 안에 있는 유전자, 즉 DNA를 정확하게 편집할 수 있는 기술이다. 특정 부위를 자르거나, 삭제하거나, 새로운 유전자를 삽입할 수도 있다. 2012년 개발된 3세대 유전자가위는 현재 3개 연구팀이 독자 개발을 주장하며 특허권 분쟁이 진행 중이다. 그중 하나가 김진수 박사의 팀이다.

김진수 박사는 2014년부터 지금까지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연구단의 단장도 맡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11년 개설된 국가연구기관이다. 김진수 박사는 1999년 유전자가위 기술 관련 주식회사 툴젠을 창업하고 2005년까지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는 서울대학교 화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툴젠의 이사를 겸임했다.

2018년 8월에 한국투자증권이 작성한 기업 현황보고서를 바탕으로 툴젠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툴젠은 코넥스 시장에 상장된 생명공학 벤처기업이다. 재무제표를 확인할 수 있는 2015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적자를 기록해 왔으며, 회사 운영비 및 연구개발비는 대부분 주식 발행을 통해 얻고 있다. 툴젠은 정부 기관 및 국내 연구기관과 의료기관 등에 대한 수요가 매출액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또 현재 진행하고 있는 주요 연구계약 12개 중 9개가 정부 및 정부 기관 예산으로 진행되고 있다.

툴젠의 주가는 2015년 초까지만 해도 만 원도 안 되었지만, 점차 상승하여 2017년 말에는 5만 원을 넘겼다. 2018년 초에는 17만 원까지 상승했다. 신규 계약, 유상 증자 등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 기조가 주가 상승에 크게 기여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특허 가로채기 논란

절차적 문제도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자. 한겨레가 핵심적으로 제기하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2012년, 김진수 박사가 본인이 최대주주로 있는 툴젠에 유전자가위 특허권이 돌아가도록 직무발명 신고를 거짓으로 했다는 것이다. 또 특허 출원을 할 때도 서울대에 보고부터 하지 않고 바로 툴젠 명의로 특허를 출원했다고 한다. 이후 서울대학교는 1852만 원이라는 ‘헐값’에 유전자가위 특허를 툴젠에 넘겼다.

서울대학교는 절차상 문제 될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헐값’ 논란에 대해서는 기술이전 당시 유전자가위 기술의 가치가 그다지 높지 않았다고 한다. 김진수 박사가 2011년에 툴젠 주식 10만 주를 서울대학교에 기부했기 때문에 ‘헐값’이나 ‘가로채기’ 의혹은 잘못되었다는 것이 서울대와 툴젠의 주장이다. 이들의 주장이 옳은지 아닌지는 경찰 조사 결과나 서울대학교 감사 결과가 나와야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식 부자 과학자와 혁신 없는 거짓 성장

설령 절차적 과정에 아무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남는 문제가 있다. 바로 김진수 박사가 툴젠이라는 벤처기업의 최대 주주라는 사실이다. 주주에게는 주식 가격을 높이고 싶은 경제적 동기가 있다. 툴젠의 주가를 올리기 위해서는 투자자들이 유전자가위 기술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가가 등장한다. 툴젠에 들어가는 국가의 지원은 어마어마하다. 서울대학교는 툴젠이 유전자가위 특허를 출원하는 과정에서 모든 형태의 기술을 이전해주었다. 또 툴젠은 정부 예산으로 진행되는 각종 연구 과제를 수주했다. 그중에는 김진수 박사가 소속된 기초과학연구원이 지원하는 프로젝트도 있다. 또 보건복지부는 올해 말까지 배아줄기세포와 유전자치료 연구에 대한 규제를 완화할 계획이다. 이 규제 완화로 인해 가장 큰 수혜를 입을 분야는 툴젠이 연구하고 있는 유전자가위와 줄기세포다. 그리고 규제가 완화될 때마다, 정부 프로젝트를 수주할 때마다 주가가 치솟았다. 툴젠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부분 벤처기업을 전폭적으로 밀어주겠다는 것이 혁신성장의 정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 대학과 연구기관에는 이렇다 할 과학기술이 없다는 점이다. 2016년 기준으로 한국은 GDP 대비 총연구개발비 비중은 세계 2위이고 총연구개발비 규모도 세계 5위다. 하지만 연구개발 투자 대비 기술수출액 비중은 OECD 중 28위에 불과하며 연구원 1인당 과학기술논문색인(SCI) 논문 수 및 인용도도 33위에 머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쏟아지면 어떻게 될까. 이렇다 할 기술이 없는 사람도 주식 대박을 노리고 벤처 창업에 뛰어든다. 정부가 주가를 올려주면 주식을 팔아 시세차익만 챙기고 발을 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사실 혁신성장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내용이 거의 같다. 박근혜 정부 시절 창조경제의 아이콘으로 주목받았던 ‘아이카이스트’의 김성진 대표는 얼마 전 징역 9년 형을 선고받았다. 투자금 수백억 원을 가로챈 혐의다. 또 지난 8월에는 줄기세포 치료제를 개발한다면서 과대·허위 광고를 해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네이처셀 라정찬 대표가 구속되는 일도 발생했다.

결국 혁신성장 정책은 주식시장 거품만 키운다. 더불어 벤처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무리한 규제 완화도 진행된다. 상승하는 주가지수는 단기간에는 경제가 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혁신 없는 거짓 성장에 불과하다.

툴젠의 3세대 유전자가위 기술 그 자체가 가치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툴젠은 다른 부실 벤처기업과 다르게 학술적으로 중요한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다. 다만 이런 기술을 개발하고 지원하면서 주식 거품과 규제 완화만 가져오는 혁신성장 정책이 해답이라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의 ‘지식기반 경제’와 특허 장사

혁신성장 모델의 원천을 쫓아가면 김대중 정부의 ‘지식기반 경제’ 모델이 나온다. 그 이후 모든 정부에서 비슷한 정책이 시행되었다. 20년간 지속해온 정책이건만 경제 성장의 새로운 동력이 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경제 모델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중심, 미국의 영향 때문이다.

1970년대 들어 미국, 유럽 등 중심부 국가의 산업 이윤율이 하락하기 시작한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채택했던 경제발전 모델이 ‘3차 산업혁명’에 기초한 ‘지식기반 경제’였다. 구체적으로는 대학이나 연구소가 직접 기업과 주식시장을 매개로 연구개발비를 조달하도록 했다. 이윤율 하락으로 연방정부의 재정이 악화하자, 대학과 연구소에 지원했던 천문학적인 금액의 연구개발비를 삭감했기 때문이다.

1978년 상원의원 버치 베이와 밥 돌은 연방정부 재원으로 개발된 기술의 특허를 대학과 기업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을 입법한다. 그 유명한 ‘베이-돌 법’이다. 이 법안에는 대학이 기술을 상업화하려 하지 않는 경우에도, 연방정부가 직접 또는 다른 기업을 통해 강제적으로 특허를 출원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법 초안에는 특허로 발생하는 라이센스 소득 중 일부를 연방정부에 반환하는 조항이 있었으나, 통과 과정에서 삭제되었다.

대학과 기업은 이 법안을 계기로 특허를 무형자산화해서 주식시장에서 막대한 시세차익을 벌어들였다. 미국은 자본주의의 황금기에 엄청난 금액을 과학기술 개발에 투자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미국 대학과 연구소의 과학기술은 독보적인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식기반 경제’가 일정 수준 성공할 수 있는 든든한 ‘빽’이었다.

그러나 제도의 특성상 거품 형성은 필연적이다. 1990년대 후반 들어 주식 시장을 중심으로 한 엄청난 규모의 거품이 발생했다. 거품은 2000년 초 폭발했다. 이 기간에 주식시장에 발생한 손실은 4조 2000억 달러로, 미국 GDP의 42퍼센트에 달한다. 1929년 이래 최대 규모다.
 

남는 건 대학의 상업화와 규제 완화 정책

혁신성장 정책 아래에서 연구자가 벤처 창업하는 가장 큰 유인은 주식거래를 통한 시세차익이다. 여기서 이익갈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익갈등이란 ‘연구 타당성, 환자 건강 등 일차적 이익에 관한 전문가적 판단이 경제적 소득 같은 부차적 이익에 의해 부당하게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나 조건’을 뜻한다. 

이번 사건에서도 김진수 박사는 툴젠에만 유리하게 연구개발을 진행할 경제적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절차의 문제를 제기한 한겨레의 보도는 충분히 합리적이라 볼 수 있다. 경제적 동기가 연구자의 양심을 압도할 경우 공정한 연구개발보다 사익을 추구할 수 있는 구조가 생긴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식기반 경제’는 대학의 상업화를 가져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생명공학 분야다. 미국의 경우, 1993년 국립보건원으로부터 연구기금을 받은 상위 50개 연구대학에서 생명공학 분야 교수 2167명 중 43퍼센트가 3년 동안 연구비와 별도로 선물을 받았다.

결국 대학은 자본의 요구에 부응하는, 상업화하기 쉬운 지식과 기술만 생산하게 된다. 대학의 연구개발비는 상당 부분 정부 지원을 통해 조달된다. 공적자금으로 생산한 지식과 기술은 특허를 통해 자본이 독점한다. 심지어 특허를 이용한 상품 개발에 필요한 자금도 공적 자금이나 연기금, 또는 개인투자자 자금으로 조달한다. 기업의 상품개발비 중 상당 부분을 국민들의 연금, 저축에서 조달한다는 뜻이다. 대다수 기업은 혁신적 상품 개발에 성공하지 못하고 투자자에게 손실을 입힌다. 그 손실 역시 국가와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그러나 기술과 지식, 상품 이용에 대한 권리는 모두 자본이 가져간다. 반대로 노동자들은 기술과 파생되는 혜택으로부터 배제된다.

가뜩이나 변변한 과학기술이 없는 한국은 한 명의 슈퍼스타 과학자가 출현하면 해당 연구에 필요한 모든 규제를 완화해버린다. 황우석 열풍이 대표적 사례다. 유전자가위도 마찬가지다. 배아줄기세포와 유전자치료 규제 완화는 환자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오로지 경제적인 목적에서 시행된다. 환자와 국민을 위해서라면 툴젠이 유전자가위 특허를 가질 수 있도록 국가적으로 노력하는 게 아니라, 유전자가위 특허 장벽을 낮춰서 보다 많은 연구진이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하는 게 더 낫다.

진정한 기술혁신을 원한다면 대학의 상업화, 주식 거품, 규제 완화를 낳는 혁신성장 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오히려 특허권을 상대화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과학기술 역량을 강화하는 방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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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생명공학 대학 상업화 유전자가위 툴젠 특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