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교육
- 2018/10 제45호
고교 교육 정상화를 위한 대학입시전형이 필요하다
무책임한 대학입시전형 개편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학입시전형(이하 대입전형)을 간소화하고 수시전형 비중을 줄이겠다고 공약했다. 당선 직후에는 그해 8월까지 2022년 수능 개편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결정을 1년 유예했다. 올해 4월 11일에야 교육부는 ‘대학입시 제도(이하 대입제도) 국가교육회의 이송 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국가교육회의는 ‘대입제도 개편 특별위원회’와 ‘공론화 위원회’를 구성했고, 국민참여형 공론절차를 거쳐 교육부의 최종 방안이 마련되었다.
이번 대입 전형 개편 과정은 문재인 정부가 보여준 행태는 무책임하기 그지 없었다. 정부는 개편안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에 정치적 부담을 느낀 나머지, 전문가적 식견과 현장의 경험을 충분히 반영하기보다는 여론몰이로 국가의 중요한 과제를 풀고자 했다.
국가교육회의는 설문조사(이를 위해 국가교육회의는 만19세 이상에서 성별·지역별·연령별 안배를 통해 400인 규모 시민참여단을 선발했다.)와 권역별 국민 토론회, 온라인 플랫폼 의견수렴을 거쳐 8월 초에 대입제도 개편 권고안을 발표했다. 이후 교육부의 최종 방안이 마련되었는데, 그 핵심 내용은 정시 수능 전형 30퍼센트 이상 확대, 학생부 기재 내용 간소화, 출신 고교 블라인드 면접, 논술 폐지 유도 등이다.
역대 정부 대입제도 개편의 효과
한국 사회에서 대학 졸업 학력은 평생에 걸친 사회적 지위의 척도로 이용되어왔다. 누구나 대학교육을 받는 최근에는 대학졸업자의 사회적 희소가치가 떨어지긴 했다. 그래도 상위권 대학 졸업자가 소득 수준이 높은 직업을 갖는 현실 때문에 여전히 상위권 대학에 진입하려는 입시경쟁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따라서 교육개혁의 핵심은 대입제도를 개혁하는 일이다. 대입제도는 초·중·고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그 사회가 얼마나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는지 판단하는 잣대가 된다.
해방 이후 대입제도는 거의 해마다 바뀌었지만, 크게 대학별 단독 시험기(1945년~1953년), 예비고사기(1969년~1981년), 학력고사기(1982년~1993년), 대학수학능력시험기(1994년~현재)로 분류할 수 있다.
대입제도의 변천은 고교 평준화와 고등교육의 팽창과 맞물려 이루어졌다. 동시에 국가는 학생들의 입시부담을 해결하고, 사교육비를 절감하며, 고교 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목표를 표방해왔다. 그러나 대입제도의 잦은 변화에 비해 학생들의 입시부담이 줄어들거나 사교육비가 절감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대입제도가 자주 바뀌면서 준비하는 학생들의 혼란만 가중됐고,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꾸준히 늘어나기만 했다. 특히 고등학교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의 증가가 눈에 두드러진다.
결과적으로 역대 정부의 대입제도 개편은 학생들의 입시부담을 줄이고 사교육비를 절감하겠다는 본래의 취지에 부합했다고 평가할 수 없다. 그저 대입제도 개편만으로는 해결 불가능한 목표를 내세우면서, 심화되는 사회적 격차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고자 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현행 대입제도의 맹점
현행 대입전형은 크게 6개로 구성된다. 수시 모집의 학생부교과전형(수능을 제외한 내신성적), 학생부종합전형(비교과의 다양한 활동. 이하 학종), 논술전형, 특기자 전형과 정시 모집의 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과 특기자 전형이다. 이를 바탕으로 각 대학은 다양한 입시요강을 발표하는데, 여기에 수시와 정시의 선발인원, 수능 최저 등급 반영 여부, 내신과 비교과, 면접 반영 비율이 담긴다.
대입전형 중 학생부교과전형과 학생부종합전형 등 수시 전형이 점점 늘어서, 현재 그 비중은 전체 전형의 70퍼센트를 넘었다. 수시 비중이 꾸준히 늘어난 이유는 특목고, 자사고, 일반고의 학력차가 크고 강남권과 비강남권의 학력차가 벌어지면서 수능 중심의 선발이 과도한 사교육비를 유발하고 고등학교의 교육이 입시 위주로 흘러 공교육이 파행적으로 운영된다는 비판 때문이었다.
특히 지금처럼 대입 전형이 다양해진 것은 입학사정관제가 한국에 수입된 결과다. 입학사정관제는 1920년대 미국에서 유대인의 입학을 억제하기 위해 ‘학업능력 중심의 선발을 넘어 다양한 입학전형을 적용한다’는 명분으로 도입한 것이었다. 이 제도는 대학이 채용한 입학사정관이 학업 성적뿐 아니라 소질과 경험, 성장환경, 잠재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입학생을 선발하는 것으로서 2009년부터 국내에 도입되었다. 현재는 학종의 틀 안에 흡수되어 수시모집에서 중요하게 활용되고 있다.
현행 대입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전형방식의 ‘복잡성’이다. 2016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유은혜 의원실 공동조사’에 따르면, 학생 93.8퍼센트, 학부모 96.6퍼센트, 교사96.0퍼센트가 현행 대입전형이 복잡하다고 응답했다. 전형방식이 복잡하면, 정보를 많이 가진 부모의 자녀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자신에게 맞는 대입 전형을 사교육 시장에서 컨설팅 받는 비용이 회당 몇십 만원에서 몇백 만원까지 한다.
대입전형이 크게 6개이지만, 각 대학별로 전형비율이 달라서 학생들의 힘만으로 자신에게 맞는 대학을 지원할 수 없다. 또한 전형과정이 불투명하고, 특정한 계층에게 유리하다고 평가되는 전형인 논술, 특기자 전형, 학종 등은 입시 경쟁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의 소위 ‘최상위권’ 대학에서 많이 선호하는 전형이다. 노동자들의 자녀들에게는 과거 학력고사제도보다 현행 대입제도가 오히려 더 불리할 수 있다.
물론 학종의 장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학종은 정량적 지표인 ‘내신 성적’뿐 아니라 정성적인 지표인 수업 내의 활동, 학교에서의 다양한 활동을 종합적으로 반영한다. 이로 인해 학교의 교육 활동의 다양화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 또한 수능 성적으로 경쟁이 어려운 취약한 지역의 일반고의 경우 학종으로 상당수의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하기 때문에 취약한 지역의 일반고 교사는 학종을 선호한다.
그럼에도 학종의 문제점을 간과할 수 없다. 우선 학종은 부모의 배경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전형이다. 또한 학종은 특별한 사교육을 요구한다. 학생부 비교과 관리 종합컨설팅, 소논문 지도받기, 자기소개서 첨삭지도, 면접대비 및 고난도 구술 대비 등 모두 ‘일반적이고 대중화된 사교육’이 아닌 ‘특별한 사교육’을 요구하는 항목들이며, 이러한 특별한 사교육은 사교육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소다.
대입 전형 다양화라는 교육철학이 놓치고 있는 것
5·31교육개혁 이래 한국교육을 지배해온 담론은 ‘학생중심교육’, ‘체험중심교육’, ‘인성중심교육’이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은 기존의 ‘암기식·주입식 교육’의 대안으로 각광받았다. 또한 학업성적 이외 다양한 요소를 분석하여 평가에 반영한다는 대입전형 다양화의 중요한 근거로 작동하고 있다.
가리야 다케히코의 ≪교육개혁의 환상≫은 한국에 앞서 일본에서 유행한 교육담론이 교육에 미친 영향을 다루고 있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입시 위주 교육, 집단 괴롭힘, 등교 거부, 교실 붕괴, 학교 폭력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신(新)학력관’이 등장했다. 그러면서 ‘인성론’과 ‘체험론’이 강조되고 개인의 관심과 의욕에 의한 학습을 강조하게 된다. 하지만 1990년 후반 들어 신학력관이 학력 저하를 가져온다는 논쟁이 벌어진다. 일본의 교육잡지인 ≪현대교육과학≫ 1994년 1월호 특집 “신학력관은 지식을 부정하는 학력관인가”는 ‘반드시 관심과 의욕이 있어야 지식을 이해하는 것인가’라는 주제를 다룬다. 예를 들어 수학교육은 관심과 의욕이 있어야 지식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지식에 대한 이해가 있을 때 관심과 의욕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신학력관은 지식의 내용을 무시하고 여유교육을 통한 체험중심의 학습을 강조했는데, 학생들의 학습 의욕은 여전히 향상되지 않았다. 오히려 학력 저하가 초래되었다는 주장을 펼친다.
근래 한국에서 유행하는 비고츠키 교육학도 이러한 비판적 논의를 지지한다. 비고츠키 교육학은 학교에 다니는 시기에 ‘과학적 개념 체계’를 습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주입식·암기식 교육이라고 비난을 받는 기본 지식 교육은 자신의 개념을 확장할 수 있는 하나의 과정이며 방법론이므로 완전히 버릴 수 없다. 쉽게 말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기본 지식’이 있어야 핵심역량도 강화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대입제도 역시 중등교육과정에서 반드시 익혀야 할 ‘기본 지식’을 평가해야 한다. 대입제도가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 능력을 판별하는 시험으로 자리 잡아야 중등 교육과정이 정상화될 수 있고, 특수한 사교육비를 치르지 않을 수 있다. 학종처럼 비교과활동을 정성적으로 평가하는 대입 전형은 공정성 시비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학종에서 요구하는 다양한 비교과 활동이 대학에서 공부하는 기본소양으로 어떤 도움이 되는 지도 불분명하다.
고교교육 정상화를 위한 대입제도 개선 방향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에서는 ‘대학 평준화-대입 자격고사화’를 지향하며, 이러한 체제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과도기적 수능 개편방안으로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수능 논·서술형 출제, 학생부 교과전형(내신성적)중심의 대입 전형 개선안을 주장했다. 전교조 역시 학종의 문제점을 제기한 바 있다. 수능 중심 정시의 비율을 늘리면, 수능 사교육의 집중적 혜택을 받는 부유층 자녀나 자사고·외고 등의 소위 특권학교 학생들에게 유리하므로 수능의 영향력을 최대한 약화시키는 것이 대입제도의 우선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능 절대평가와 학생부교과전형을 연계하면, 결국 학생부교과전형의 영향력이 커져 학교 단위에서 경쟁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학생부교과전형은 내신 성적으로 학생들을 평가하고 선발하는 전형이며, 현재에도 수시모집에서 절반 가까이가 이 전형으로 뽑힌다. 서울 강남 학교의 1등이나 강북 학교의 1등, 지방 학교의 1등이 똑같은 1등으로 대접받기 때문에 지역이나 학교 간 불평등 해소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신 성적도 빈부격차에 큰 영향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학교 내 불평등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같은 지역, 같은 학교라 하더라도 학생들의 경제적 여건은 천차만별이다. 학교 내 경쟁과 학교 간 경쟁 중 어느 것이 교육적으로 더 나을까? 직관적으로 생각해보더라도 온종일 같은 공간에서 배우고 노는 동료끼리의 일상적인 경쟁이 학생의 성장과 발달에 좋을 리 없어 보인다.
학생부교과전형 중심의 대입 전형 역시도 고등학교 교과수업에서 의도했던 애초의 효과는 거두지 못할 뿐 아니라, 내신 맞춤 사교육 수요를 발생시킨다. 이로 인해 가정의 사회적·문화적 격차에 따른 교육 불평등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처럼 사교육 시장은 대입 전형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얼마든지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 따라서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서 대입제도를 바꾼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사교육비가 아니라면, 고교 평준화 체제에서 일반고의 교육과정을 정상화해야할 과제가 남는다. 일반고의 교육과정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선택중심의 교육과정이 보편적 시민을 양성할 수 있는 교육과정으로 바뀌어야 하며, 인성중심, 체험중심이 아닌 기본지식(핵심개념)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교육과정과 배운 지식을 제대로 측정할 수 있는 대입 전형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대입제도 개선은 고교 교육 정상화 방안과 같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고교 교육 정상화는 중등교육과정에서 배워야 할 기본지식을 체계적으로 잘 습득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대입제도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교과서로 수능 준비와 내신 준비를 모두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이에 앞서 고교 교육과정이 고등지식을 배울 수 있는 기본과정으로 탄탄하게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대입제도는 복잡한 것보다 간소한 것이 노동자 자녀들에게 유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