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18/10 제45호
건설 투자 확대하면 한국경제 살아날까
한국경제의 불황과 건설산업 투자론
최근 각종 경제지표에서 한국경제의 불황을 확인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3퍼센트에서 2.7퍼센트로 낮췄다. 세계적인 장기 저성장 국면 속에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 미국 연방준비은행의 금리 인상에 따른 한-미 금리 격차 확대 등의 대외적인 악재도 많다. 이러한 영향으로 반도체를 제외한, 자동차, 철강, 조선, 석유화학 분야 등의 수출과 고용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소득주도성장론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며 내수산업도 활성화되지 못하고, 국내 고용지표의 부진도 나타나고 있다. 2018년 취업자 수 증가가 매월 10만 명 수준으로 떨어지고, 7월에는 5천 명 수준으로 감소했다.
연일 경기가 침체된다는 보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일부에서는 대대적인 건설투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투자 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경기 부양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건설산업에 투자해야 하고, 정부가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확대 등을 통해 길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8년 사회간접자본 예산은 2017년에 비해 14.4퍼센트 감축된 18.9조 원으로 책정되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17년 사회간접자본 예산은 향후 5년간 연평균 7.5퍼센트씩 감소하리라 전망하기도 했다. 2018년 국내 건설 수주 전망 또한 2017년의 156.5조 원에 비해 15퍼센트 하락한 133.0조 원으로 예상된다.
정부의 건설 · 부동산 정책
8월 27일에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2019년 지역밀착형 생활 사회간접자본 예산으로 8.7조 원을 편성하겠다고 밝혔다. 기존의 도로나 댐 등 대형 토목공사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체육 등 편의시설이나 도시재생 사업에 투자하면서 지역에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이러한 정책들이 이전 보수 정권의 대규모 토목공사 계획과는 다른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9월 13일에는 수도권 주택가격을 규제하기 위해 다주택자 대출 규제, 종합부동산세 인상, 임대사업자 규제 등을 골자로 하는 9·13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그 후속 조치로 9월 21일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방안’을 발표했다. 집값 안정과 주택공급 안정을 위해 수도권 공공택지를 확보하여 34만 호를 추가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인천 검암, 광명 하안, 성남 신촌, 옛 성동구치소 부지 등의 수도권 17곳에 공공택지를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당분간 대규모 건설경기 부양책을 쓰지는 않을 전망이다. 8월 22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고용이 많이 느는 사회간접자본 사업이나 부동산 경기 부양은 일절 쓰지 않는다. 그런 유혹을 느껴도 참고 있다.”고 발언했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론의 기조를 계속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이에 건설투자 등 경기 부양책에 너무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건설투자가 한국경제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2017년 건설공사액(기성액)은 291조 원을 기록했다. 이는 2017년 국내총생산 1730조의 16.8퍼센트를 차지한다. 건설취업자 수는 180만 명 전후인데 전체 산업 취업자 수의 7퍼센트 정도 되는 숫자다. 건설산업은 거대산업이자 다양한 분야와 얽혀 있는 종합 산업, 내수산업이라는 특성으로 국내 경기와 밀접하다. 게다가 공공 공사 비중이 50퍼센트에 육박하기에 건설투자 규모에서 정부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정부로서는 건설 투자를 통한 경기 부양 충동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전 이명박 정권에서는 22조 원의 재정이 투입된 4대강 사업이 본격 추진되면서 2010년 경제성장률을 6.5퍼센트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부동산 규제 완화와 공적자금 투입으로 2014년에서 2016년 사이 민간 건축시장의 붐이 일었다. 2016년 수주액이 164.9조 원으로 최대치를 기록했고, 특히 2016년 2분기 한국 경제성장 중 건설투자 부문 기여율은 51.5퍼센트를 차지한다. 그렇지만 건설경기 부양정책이 한국경제의 지속적인 발전동력이 되지는 못했다.
과거 일본의 사례를 살펴보면 지금 우리에게 대규모 건설투자가 필요한지 의문이 든다. 최근 한국경제의 상황은 1990년대 거품경제 붕괴 이후 일본을 떠올리게 한다. 1980년대 플라자 합의로 일본의 엔화 가치가 급등했다. 내수 활성화를 위해 일본 정부는 1992년에서 1995년까지 건설산업 부양정책을 펼치며 67조 엔에 달하는 자금을 투자했다. 건설 붐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일례로, 1994년 일본의 레미콘 출하량은 1억 9800만 세제곱미터를 기록하기도 했는데, 이는 2016년 레미콘 출하량 8400만 세제곱미터의 2.5배에 달하는 수치였다.
하지만 대규모 건설투자의 효과가 다른 산업으로 확산되지는 않았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 차가 다니지 않는 도로가 경기 부양이라는 명목으로 건설되었고 이는 재정 낭비로 이어졌다. 이후 일본 정부가 은행 대출을 규제하자, 부동산 가격마저 하락하고 건설경기는 계속 내림세를 겪게 됐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원인 중 하나가 대규모 건설 투자였다. 한국 역시 장기 저성장 국면, 지속되는 저출산과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를 겪고 있다. 단기적 경기 부양 목적으로 건설에 투자를 확대하다가 자칫 지난 일본의 상황을 재현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부동산 시장의 위축 가능성도 있다. 저금리 상황에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본이 부동산으로 몰리며 집값이 상승하고 있다. 특히 서울의 주택 가격은 2014년 8월부터 올해 8월까지 49개월 연속으로 오르며 최장 상승기록을 세우고 있다.
문제는 조만간 금리가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9월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기준금리를 1.75~2.00퍼센트에서 2.00퍼센트~2.25퍼센트로 인상하기로 했다. 12월에도 기준금리를 다시 인상한다는 계획이고, 한국의 기준금리 역시 연동하여 오를 가능성도 높다. 현재 1500조에 달하는 가계부채가 문제되는 상황에서 금리가 오르면 부동산 시장에 몰린 유휴자본이 빠져나가며 거품이 붕괴할 가능성도 크다. 9.13 부동산 대책 이전부터 전국 주택거래량은 줄어들고 있었다.
앞으로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고 주택 수요 부재가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위적인 건설경기 부양책이 한국 경제의 저성장을 반등시킬 가능성은 크지 않다. 대규모 건설투자로 경기가 부양되던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 경제의 장기적인 발전 방향 속에서 건설산업과 투자의 방향을 신중히 고민해야 한다.
나아가며 : 건설경기와 건설노동자
일용직의 대표적인 직종인 건설노동자들에게 일자리는 생존이 달린 문제다. 당연히 일이 많기를 바라고 국가의 정책이나 산업 동향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건설노동자들의 노동조합도 건설경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2014년에서 2016년 사이 전국에 많은 아파트가 세워질 때, 노동조합이 직고용 투쟁을 하며 많은 토목건축노동자를 조직할 수 있었다. 건설경기 하락이 건설노동자와 노동조합 모두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무계획적인 건설경기 부양책은 한국경제의 체질을 악화시키고, 오히려 미래의 일자리를 줄일 수 있다. 노동조합은 장기 저성장을 조건으로 인식하면서 건설자본과 현장에 개입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당장 일자리가 줄어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안정정책을 요구하고, 일자리의 감소가 덤핑과 노동조건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건설자본과 국가재정이 적절한 건설 투자에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와 함께 건설노동자가 일할 만한 현장을 만드는 것을 노동조합에 주어진 장기적인 과제로 삼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