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여성
- 2018/10 제45호
문재인 정부 여성 정책 : 그 목표와 한계
‘맞벌이 부부, 가사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다면?’ 포털 사이트에 뜬 문구를 보고 무슨 얘긴가 싶어 클릭을 해 보았다. 강남 재건축 단지에 호텔식 서비스가 접목된 고급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이 아파트에서는 호텔처럼 방 청소와 빨래까지도 서비스를 해주고, 라운지에는 식사가 준비되어 있어 언제든 가서 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가사노동 해방의 꿈이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나 그 해방은 돈 있는 사람들에게 한정된다. 대다수 젊은이가 가사노동 서비스가 제공되는 강남 아파트는커녕 자기 소유의 집 한 채를 마련하는 것조차 어려운 사회에서는 말이다.
가사노동에는 식사, 청소, 빨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보육, 간호, 병간호, 노인 돌봄 등 가족 내에 돌봄이 필요한 이들을 돌보는 일도 포함되며 이를 포괄해 사회서비스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사회서비스 정책의 역사는 ‘민간 주도 시장화’로 요약할 수 있다. 정부는 사회서비스를 국가가 직접 책임지기보다 민간 기업이 해당 분야에 진출하면 일정 금액을 지원해주는 방식을 택했다. 명목은 소비자의 선택권 보장이었지만, 정부의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것이었다. 그 결과 현재 사회서비스 공급의 국공립 비율은 5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런 채로 수십 년이 흐르자,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했을 때 나타나는 문제점이 사회서비스 분야에서도 발생했다. 서비스의 질은 낮아지고 해당 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노동권은 보장되지 않았다. 높은 질의 보육, 요양서비스는 돈 있는 사람들만 선택적으로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되었다. 마치 강남 신축 아파트 거주민들만의 가사노동 해방처럼 말이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의 과제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관련 공약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육아휴직 제도의 확대와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이다. 이 공약은 문재인 캠프에 특별한 철학이 있어서 제출되었다기보다 다른 후보들도 모두 내놓은 비슷비슷한 공약 중 하나였다. 그만큼 2017년 대선은 여성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은 시점에 치러졌으며, 출산과 보육은 외면할 수 없는 주요 쟁점이었다. 출범 이후 문재인 정부는 육아휴직 급여 인상을 추진하고, 육아기 노동시간 단축 기간을 확대하며, 남성의 육아 참여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육아휴직 제도를 확대한다고 해서 이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나는지, 그리고 육아휴직을 사용한 여성의 직장 복귀율이 높아지는지는 논란이 많은 문제다. 영세사업장이나 비정규직 일자리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육아휴직은 여전히 ‘그림의 떡’ 같은 존재기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육아휴직 지원이 늘어남에 따라 이용률은 고소득 집단에서 크게 늘고 있으며 전체 이용률도 늘고는 있지만, 동일직장 복귀율에는 변화가 없어 육아휴직 종료와 동시에 해고 또는 퇴사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윤자영·홍민기, <육아휴직 제도의 여성 고용 효과>, ≪노동정책연구≫, 2014)
여성의 노동시장 이탈은 단순히 육아에 대한 부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노동시장 성차별과도 얽혀 있다. 남성 중심으로 구성된 기업의 내부노동시장에서 여성들은 결혼 후 직장을 떠나라는 압력에 직면하거나 직업적 전망을 상실하기도 한다. 결국 육아휴직 제도의 확대보다 강조되어야 할 것은 첫째,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충하고 보육서비스의 공적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며, 둘째,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저임금·주변부 일자리를 담당하고 있는 현실을 바꾸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보육 분야뿐만 아니라 사회서비스 전반을 포괄하는 정책인 ‘사회서비스공단’ 정책을 우선 살펴보기로 한다.
후퇴를 거듭하는 사회서비스공단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 중 하나인 사회서비스공단은 그간 민간 주도의 시장화로 사회서비스의 책임성은 떨어지고 종사 노동자는 권리를 위협받던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제출되었다. 이 계획에 따르면 17개 시도가 공단을 설립해 어린이집·요양 시설 등을 신축하거나 기존 민간 시설을 사들여 직접 운영하게 된다. 직영 시설에 채용된 보육교사,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는 공단에 직접 고용된다.
사회서비스공단은 일반적으로 복지 정책이나 일자리 정책으로 분류되나, 여성 문제의 해결에도 굉장히 중요하다.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권리는 가사 및 돌봄 노동에 대한 여성의 책임과 깊이 연동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기혼 여성의 절반가량은 결혼이나 임신·출산 등을 계기로 경력단절을 경험하며, 기업은 채용 면접에서부터 여성 지원자에게 결혼 계획을 물으며 노골적으로 부담을 드러낸다. 또한 사회서비스 시장화는 해당 분야를 저임금·비정규직·시간제 여성 노동력으로 채움으로써 여성 노동의 주변화를 심화시켰다. 사회서비스공단은 제대로 추진된다면 가족 내 돌봄 노동에 대한 여성의 부담을 줄이고 여성 노동의 조건을 개선하는 데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사회서비스공단 정책은 지연과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애초 ‘공단’으로 추진되었던 계획은 논의 과정에서 ‘사회서비스진흥원’을 거쳐 ‘사회서비스원’으로 위상이 변경되었다. 2018년 이내에 출범 목표였지만 아직 국회에서 법안조차 통과되지 못했고 지자체 차원의 시범사업 논의만 진행되고 있다. 해당 기관이 포괄하는 사회서비스의 범위와 방식이 무엇인지에 관한 사회적 논란은 아직 진행형이다.
정책 추진이 어려운 이유는 민간 시설 운영자들의 저항이 크기 때문이다. 규모가 큰 보육과 요양 분야에서는 민간 시설의 원장들이 나서서 사회서비스공단 추진에 해당 분야를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중적인 수요가 높고 민간 주도의 폐해가 심각한 보육과 요양을 제외하라는 것은 사실상 사회서비스공단 정책을 무력화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서비스 수요자와 해당 분야 노동자의 목소리에 최우선으로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를 통해 국공립 사회서비스 시설을 대폭 확충하고 사회서비스공단으로 전달체계를 공적으로 통합하는 일을 중단 없이 추진해 나가야 한다.
‘여성을 위한’ 시간제 일자리 확대?
문재인 정부는 ‘여성을 위해’ 시간제 일자리를 확대한다는 박근혜 정부의 기조를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2017년 12월, 정부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발표한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여성 일자리 대책>은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 지원 대책으로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 및 유연 근무 활성화’를 제시하고 있다. 그 근거로는 구직 의사가 있는 경력단절 여성의 대다수가 시간제 일자리를 선호(61.4퍼센트)한다는 조사 결과를 들고 있다.
시간제 일자리 창출 정책은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되어 박근혜 정부 들어 ‘고용률 70퍼센트 로드맵’ 속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박근혜 정부는 ‘반듯한 시간제’, ‘양질의 시간제’, ‘시간선택제’라는 신조어까지 만들며 시간제 일자리의 확대에 힘썼으며 그 결과 시간제 일자리는 2008년 금융위기 전과 비교해 급격하게 늘어났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여성 시간제 노동자의 수는 190만 2000명이다. 이는 76만 1000명인 남성 시간제 노동자에 비교해 현저히 높은 숫자이며, 2007년 여성 시간제 노동자의 숫자인 84만 명과 비교해도 10년 사이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수사와 달리 시간제 일자리의 실제 양상을 살펴보면, 대부분 생활을 유지하기 힘든 저임금과 기본적인 노동권(4대 보험 등)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2014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정부가 제시한 ‘양질’의 기준을 충족하는 시간제 일자리는 전체 시간제 일자리의 6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경력단절 여성의 대다수가 시간제 일자리 확대를 원한다’는 여성 일자리 대책의 전제 역시 따져 볼 일이다. 여성이 돌봄 노동을 일차적으로 자신의 책임으로 여기게 하는 사회가 문제는 아닌가? 또한 여성들이 육아에 대한 다른 대안(충분한 시간 동안 믿고 맡길 수 있는 보육 기관)이 없기 때문에 시간제 일자리를 원하는 것은 아닌가? 초기 육아기의 여성이 시간제 일자리를 원한다고 할지라도 몇 년 뒤에 전일제 일자리로의 전환을 바란다면 그 바람이 실현될 가능성은 있는가? 결국 여성 시간제 일자리의 확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일·가정 양립정책’과 마찬가지의 근본적 문제점을 지닌다. 남성을 주 생계소득자로, 여성이 일과 가사·돌봄 노동을 병행하는 존재로 상정하여 여성에게 주변적 지위의 노동과 이중부담을 고착화한다는 것이다.
여성의 권리를 위한 요구
IMF 위기 이후 20여 년 동안 역대 정부의 여성 정책은 큰 틀에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여성 인력 활용’이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해 왔다. 즉, 노동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한편으로는 여성의 고용률을 높여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고, 한편으로는 여성들의 출산을 장려하여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여성 정책은 이러한 기조를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낸다. 이는 노동시장과 가정 양쪽에서 여성의 초과착취를 통해 경제를 운용해 온 과거에 대한 반성과 변화의 의지가 부재함을 의미한다.
여성 정책의 목표는 무엇인가? 여성이 ‘2등 시민’의 지위에 머무르지 않고 경제적·정치적·사회적으로 독립된 인격체로 바로 서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확인해야 할 것은 이 단순한 명제다. 정부는 보여주기식의 비용 지원·처벌 강화 정책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하게 여성의 편에 서서,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사회를 변혁해야 한다.
여성의 권리를 위한 요구는 첫째, 가사·돌봄 노동이 여성이나 개별 가정의 몫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몫임을 밝히고 공적인 사회서비스 전달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둘째, 여성 노동의 저평가를 극복하고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보조적 지위에 머무르지 않도록 고용·임금 등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이다. 이 두 과제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결국 여성 자신의 힘으로 쟁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회서비스 여성 노동자, 시간제 여성 노동자를 폭넓게 조직해서 그들의 고충과 요구 사항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노동조합에 요청되는 역할이다. 가사·돌봄 노동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온전한 여성 노동의 권리를 쟁취하는 것은 특권이 아니라 모든 여성의 보편적인 권리가 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