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세계
- 2018/09 제44호
너무도 조급한 후쿠시마 부흥 정책
2011년 3월 11일, 거대한 지진해일이 동일본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 자체로도 피해가 컸지만,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일은 더 충격적이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방사능 때문에 주민들은 평생을 살던 고향을 등져야만 했다.
7년이 지났다. 일본 사회는 상처를 회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겉으로는. 2020년에 열릴 도쿄 올림픽 홍보 영상에는 어김없이 후쿠시마 주민들이 등장하여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성화 봉송도 후쿠시마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전 세계인의 이목이 쏠리는 스포츠 이벤트다. 정부로서는 그 자리에서 멋지게 ‘후쿠시마 사고는 완전히 해결됐다’고 선언하고 싶으리라. 그러나 일본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전혀 다르다.
후쿠시마 주민 차별, 대책이 필요하다
2017년 12월, 일본 부흥청은 <소문 불식·리스크 커뮤니케이션 강화 전략>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발표한다. 부흥청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피해 지역 지원과 복구를 위해 설치된 정부 부처다. 문건 서두에는 “국민 일반에 대해, 방사선에 관한 올바른 지식이나 식료품에 포함된 방사성 물질에 관한 검사 결과 등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는 반성” 때문에 작성되었다고 밝히고 있다.[1] ‘방사선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라니. 시민들이 잘못 알고 있다는 건가. 벌써 이상한 냄새가 난다.
물론 ‘소문을 불식’시킬 필요는 있다. 후쿠시마 출신 주민, 특히 피난민에 대한 일본 국내의 차별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아사히신문의 조사에 따르면 피난민의 3분의 2 이상이 ‘후쿠시마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 또는 따돌림을 당했다’고 답했다. 후쿠시마 출신 학생들이 교실에서 “너는 곧 백혈병 걸려 죽을 거야”라든지 “방사선 옮으니까 가까이 하지 마”라는 따돌림을 겪은 사례도 수차례 보고되고 있다. 사고 당시만 해도 강제 피난민 8만 명, 자주 피난민(피난 지시 구역 바깥에서 살았으나 자발적으로 피난한 주민) 8만 명, 모두 16만 명이 정든 고향을 등졌다. 먹고 살아갈 길도 막막한 이들에게 쏟아지는 일본 사회의 눈총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정부로서도 무언가 조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사선의 진실>의 거짓말
하지만 정책의 방향이 잘못되었다. 문제 자체를 덮어버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문건은 후쿠시마 부흥을 위해 국민들이 할 수 있는 3가지 방안을 관계부처가 적극적으로 홍보할 것을 주문한다. 그 3가지 방안은 ‘똑바로 알자, 먹어서 돕자, 후쿠시마를 방문하자’다. ‘먹어서 돕자’는 후쿠시마 산 농수산물의 매력을 홍보하고 전국 각지에 판매를 장려하자든가, 외국이나 다른 지역의 후쿠시마 산 농수산물 수입 규제를 완화·철폐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후쿠시마를 방문하자’는 후쿠시마 해외 관광객 유치, 안전성 홍보 등이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후쿠시마현민들, 그리고 피난민들을 가장 분노하게 하는 대목은 따로 있다. ‘똑바로 알자’다. 여기에는 온갖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일방적으로 나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건은 ‘방사선의 기본적 사항이나 건강 영향, 식품 및 음료수의 안전성’을 구체적으로 홍보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3월 부흥청은 팸플릿 하나를 발간한다. <방사선의 진실>이다. 총 예산 730만 엔이 투입되어 제작된 팸플릿은 정부 부처 및 인터넷을 통해 곳곳에 유포되었다.
팸플릿은 처음부터 “평소에도 주변에 방사선 은 존재하기 때문에 그 영향을 0으로 만들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일상적으로 2.1밀리시버트[2] 정도의 자연 피폭은 당하고 산다는 이야기를 곁들였다. 물론 우주에서도 방사능이 오고, 심지어 몸 내부에서도 방사능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에서도 연간 평균 2~3밀리시버트 내외의 방사능 피폭은 자연적으로 허용되는 범위다. 그러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인한 방사능 누출은 허용 범위를 훌쩍 넘어섰다. 게다가 자연적으로 발생한 사고도 아니다. 도쿄전력의 ‘30시간’ 이야기는 이미 유명하다. 지진해일이 원전을 휩쓴 직후 빠르게 해수를 주입했다면 더 큰 사고가 되지 않고 수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원자로를 버리기 아까워 30시간을 망설이다 이 지경이 된 것이다. 원폭 피해자와 후쿠시마 피난민들을 지원하는 단체인 피폭반대캠페인은 후쿠시마 사고의 피폭은 ‘부당한 피폭’이며 팸플릿의 내용은 도쿄전력과 정부의 책임을 감추려는 전형적인 물타기라며 맹비난을 가한 바 있다.
후쿠시마 현 내 주요 도시의 방사능이 많이 감소했다는 내용도 빈축을 사고 있다. 그린피스의 2018년 조사(그린피스, <후쿠시마를 돌아보며: 7년간 지속되고 있는 재난>, 2018-05-25)에 따르면 후쿠시마 핵발전소 인근의 이타테, 나미에 지역의 방사선 수치가 시간당 1.3에서 5.8마이크로시버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는 일본 정부가 장기적인 제염(방사능 오염 물질 제거 또는 저감) 목표치로 설정한 시간당 0.23마이크로시버트를 훨씬 초과하는 수치다. 이마저도 그나마 제염 작업이 이뤄진 주민들의 옛 거주지에서의 조사 결과다. 이 지역 토지의 70~80퍼센트는 제염 자체가 불가능한 산림이다.
팸플릿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건강에 영향이 미쳤다는 것도 증명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체르노빌 사고 때처럼 갑상선 암 환자가 그리 늘지 않았다는 근거를 덧붙인다.
그러나 후쿠시마 현 소속의 ‘현민건강조사검토위원회’의 주장은 다르다. 2011년 이후 올해까지 소아 갑상선 암 환자가 197명이 발생했다고 한다. 18세 미만 인구 1500~2000명당 한 명의 환자가 발생한 꼴인데 전 세계 평균보다 100배 이상 높은 수치다. 성인 갑상선암 확진자 역시 2010년에서 2013년 사이 남성이 34에서 69명으로, 여성이 100에서 190명으로 늘었다. 성인의 갑상선암 잠복기가 2년임을 고려할 때 2011년의 사고가 원인임을 생각해볼 수 있다.
정부와 의료계는 피해가 없을 거라며 주민들에 대한 갑상선 암을 포함한 피폭 피해 검사 요구를 거절하기 일쑤였다. 후쿠시마 내에서 관련 검사를 할 시설 자체가 없었기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후쿠시마공동진료소’를 설립했다. 최소한의 검사도 거부한 정부가 태평하게 ‘후쿠시마 사고가 주민 건강에 영향이 없었다’고 주장해서는 곤란하다. (뉴스타파, <‘후쿠시마 원전사고 7년’ 검은 눈의 공포, 우리의 주민보호대책은>, 2018-04-02)
대책 없이 종료한 피난민 지원정책
2017년 들어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귀향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의 방사능 수치가 여전히 높은 가운데 일방적으로 지원만 중단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17년 4월 이타테, 나미에 등 마을에 대한 피난 지시를 해제했다. 하지만 사고 당시 거주하던 주민 2만 7000여 명 중 3.5퍼센트의 주민만이 고향에 돌아왔을 뿐이다. 피난 주민들에게 무료로 제공되던 피난처 주거 시설도 2019년 3월부터 지원이 중단된다. 주거 지원금은 애초 올해 3월에 중단될 예정이었으나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히자 부랴부랴 지급 기간을 연장하는 사태도 있었다. 2만 6000명의 피난민은 여전히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자주 피난민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이들에 대한 주거 지원금은 이미 작년 3월에 중단되었다. 이들은 공식 기록에도 피난민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2만 9000명의 사람이 통계상으로 잡히지도 않고 있다.
조급증이 사태를 악화시킨다
앞서 언급한 <방사선의 진실> 팸플릿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자신의 힘으로 생각하고, 그리고 행동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이미 2013년 통과된 ‘특정비밀보호법[3]’으로 인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와 관련한 정보 상당수가 통제되고 있다. 팸플릿 내용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항의에도 정부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며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자신의 힘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어렵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일본 정부다.
있는 문제를 없는 척 덮어서는 상처만 더 곪을 뿐이다. 오히려 후쿠시마 주민들에 대한 차별만 가중시킬 따름이다. 올림픽에 눈이 먼 일본 정부의 조급증이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