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여는글
  • 2018/09 제44호

사랑니, 그리고 ≪오늘보다≫

  • 이준혁
사랑니를 뽑으면 그렇게나 아프다면서요? 요즘 주변에 사랑니 뽑는 사람들이 많은데, 무지막지하게 아프답니다. 아니, 그놈의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사랑니가 날 때는 왜 그렇게 아프답니까?

사랑니는 인류가 지나온 길을 알려줍니다. 아득한 조상님들께서 불도 없이 날고기를 으적으적 씹어 드실 때의 흔적인 거죠. 그때는 날카로운 송곳니도 필요했고 턱도 지금보다는 훨씬 크고 강했겠죠. 사랑니가 날 자리도 충분했죠. 그러다 인류가 불을 발견했습니다. 불에 익힌 음식은 훨씬 부드러웠습니다. 날카로운 송곳니도 무뎌졌고 턱도 작아졌습니다. 사랑니가 자라날 공간도 사라졌습니다. 그렇지만 사랑니는 여전히 그 틈을 비집고 자라나게 되었죠. 조상님 시절에는 큰 문제가 없었던 사랑니가 식습관이라는 환경이 변하면서 문제의 존재가 되어버린 겁니다.

2014년 《오늘보다》가 태어났습니다. 《오늘보다》는 완성된 대안보다는 바로 지금, 사회운동이 가지고 있는 희망의 씨앗을 발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노동조합 운동, 사회운동의 긍정성을 조망하고자 했습니다. 한국 사회와 자본주의의 변화를 분석하고자 했습니다. 부족한 점이 있었어도 나름 꾸준했다고 칭찬해봅니다.

《오늘보다》가 5살을 맞이하는 사이 많은 것들이 변했습니다. 거대한 촛불이 일어났고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세계 경제위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배계급도, 운동세력도 마땅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문제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모든 어둠을 밝힐 것 같던 촛불의 힘도 우리의 앞길을 비춰주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보다》도 덩달아 고민에 빠졌습니다. 지금 필요한 대안은 무엇일까,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 그런 사회운동에 적합한 매체의 내용과 형식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

사랑니 얘기로 돌아가봅시다. 쓸모없어졌으면 진즉에 없애버리지 여전히 남아서 우리를 괴롭히는 사랑니는 우리가 진화의 ‘과정’에 있는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흔히 진화라고 하면 인간이라는 완벽한 존재를 향해 나아가는, 승리의 역사로 인식되곤 합니다. ‘만물의 영장’이니 뭐니 하면서요. 하지만 진짜 우리가 진화의 최종 승리자라면 사랑니 같은 불편한 기관은 애초에 없어졌겠죠. 진화는 승리의 역사가 아닙니다. 그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게 할 수 있는 과정일 따름입니다.

변화한 정세, 답보하는 사회운동의 현실을 직시하고 《오늘보다》와 사회진보연대를 진화시켜보고자 합니다. 그건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데서 출발하겠죠? 당분간 휴간 … 은 아니구요, 이번 호부터 몇 달간 페이지 수가 조금 줄어들 예정입니다.

줄어든 페이지 수만큼 더 치열한 고민으로 《오늘보다》의 미래를 고민하겠습니다. 《오늘보다》와 사회진보연대, 그리고 지금의 사회운동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그 끝이 무엇일지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완벽한 대안을 만들어 보이기보다는 함께 오늘을 보고 내일로 향해가는, ‘과정 중에 있는’ 잡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따가운 질타의 목소리, 따뜻한 칭찬의 목소리 많이 전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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