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18/09 제44호
문바라기는 민주노총의 길이 아니다
민주노총 상반기 운동 평가와 하반기 전망
민주노총 활동의 핵심은 사회적 대화?
지난해 말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노총의 관계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적극적인 ‘사회적 대화’를 내세운 김명환 위원장 후보가 당선되었고, 취임 직후 노사정 대표자회의와 대통령 면담이 추진되었다. 기존 노사정위를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개편하기로 합의하고 관련법도 개정되었다.
2018년 상반기는 민주노총의 기대와 달랐다. 정부·여당의 최저임금법 개악, 전교조 법외노조 유지로 노정 관계는 크게 악화되었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법 개악 저지를 위해 정부·여당을 상대로 전조직적 투쟁을 조직했다. 법안 통과를 막아내지는 못했다. 민주노총이 최저임금위원회 참가를 거부한 가운데, 최저임금 인상률이 결정됐다. ‘두 자릿수긴 하지만 내년까지 1만 원에 이르기는 불가능한’ 인상률이었다.
이에 따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 추진 등 사회적 대화는 중단된 상태였다. 지난 8월 민주노총 중집위원회는 ‘노사정대표자회의 복귀와 함께 정부에 신뢰회복 조치를 위한 노-정 교섭을 병행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민주노총은 오는 10월 중순 ‘정책대의원대회’를 통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복귀를 포함한 사회적 대화 계획을 결정할 예정이다.
새 집행부 출범 후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를 중심으로 쟁점이 되었다. 올해 일련의 흐름을 보면 정책대의원대회와 11월 총파업 등 하반기 계획 역시, 사회적 대화가 핵심에 있다. 민주노총의 대부분 활동이 사회적 대화를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는 모양새다.
사회적 대화 중단에서 민주노총 사업추진 중단으로
연초, 민주노총 집행부는 사회적 대화 추진 의지를 밝히면서도 객관적인 경제정세나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 동향을 고려할 때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2018년 정기대의원회). 그러나 실제는 사회적 대화가 추진된 지난 4월까지, 노사정대표자회의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재구성이 매우 신속하게 진행됐다. 민주노총 산하조직들의 내부 논의가 사회적 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였다.
5월 들어 최저임금법 개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이러한 논의는 모두 중단된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정부·여당이 최저임금법 개악을 끝까지 강행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론의 대표 정책으로 ‘최저임금 1만 원’을 과도하게 제시한 바 있고, 민주노총도 임금인상과 격차축소의 대표적인 정책수단으로 같은 방향을 강조해왔다. 그 결과 이 핵심 쟁점에서의 충돌은 노정관계 전반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민주노총은 7월 초 최저임금 결정 시기까지 개악 안 반대, 재개정을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한다. 개악 안이 추인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최저임금위원회에는 복귀하지 않았다. 이후 양대 노총 위원장의 대통령 면담과 노동부 장관과 협의도 진행되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 민주노총 내에서 수용이 가능할 만큼 최저임금법 개악에 대한 대책이 제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정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애초 구상한 사회적 대화 프로세스의 중단은, 전반적인 사업추진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를 통해 산별교섭 등 ‘중층적 교섭구조’를 조기에 구성하고, 총연맹과 산별노조가 각각 자신이 담당한 의제별로 사회적 협의를 진행할 것을 구상했으나, 이것이 수개월 간 중단된 것이기 때문이다.
대화를 위한 사회적 대화 재개
이 때문에 민주노총 안에서도 사회적 대화 재개가 계속 제기되었다. 최근 보건의료노조와 공공운수노조 등 일부 산별이 사회적 대화 재개를 민주노총에 요구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결국 민주노총은 8월 중집위원회를 통해 노사정대표자회의를 먼저 개시하기로 했다. 여기서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복귀를 위한 조건을 협의하게 될 것이다. 이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측이 나서서 10월에는 위원회가 정상화될 것이라고 언론에 밝히기도 했다.
7월 초 대통령 면담에 이어, 노동부장관 협의 역시 실패했다.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그 이상의 방안이 도출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특히 고용 악화로 최저임금 인상이 뭇매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여당이 최저임금법 개악을 되돌리기는 더욱 힘든 상황이 되었다. 민주노총은 10월 정책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대표자회의 복귀를 결정하는 데 더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여기서 돌아볼 문제가 있다. 최저임금 쟁점이 중요하긴 하지만, 민주노총의 요구 전체를 포괄한다거나, 다른 쟁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핵심고리로 보기도 어렵다. 민주노총이 최저임금법 개악 대응과 사회적 대화 참여로 혼란스러운 사이, 사회적 대화를 통해 무엇을 실현하려고 하는지는 준비되지 않았다. 그 준비가 없다면 ‘대화를 위한 대화’를 하자는 것인가.
민주노총은 <2018 정책대의원대회 현장 토론(안)>(부제: ‘세상을 바꾸는 사회적 총파업’ 및 200만 조직화를 위한 사회연대운동 전략)에서 2018~19년 총파업 투쟁요구와 사회적 대화 의제를 연계하여 제시하고 있다. 제시된 내용을 보면 핵심적으로 △비정규직 철폐 및 차별 없는 일터 쟁취 △노조 할 권리 전면 보장 △사회 양극화 전면 해소 △적폐청산 및 재벌개혁 쟁취를 요구하고, 이와 함께 사회적·중층적 교섭(노정·산별교섭, 사회적 대화)이 지속할 수 있도록 제도화를 병행 추진한다는 것이다. 각각의 요구안 안에는 세부 사항들이 포함되어 있으나, 병렬적으로 제시되어 있어 상호 연관성이나 우선순위, 요구안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수단 등은 제시되어 있지 않다. 다만 각 요구안의 세부 내용은 이후 정책대의원회까지 토론을 통해 구성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급하게 제시된 하반기 투쟁계획 역시, 전조직적인 힘을 모으는 투쟁이 조직될 수 있을지 우려된다. 11월 초까지는 의제를 부각하고, 사회적·조직적 쟁점을 형성하기 어려워 보인다. 투쟁일정을 잡아두었으나 실질적인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내내 문제가 되었던 점이기도 하다. 상반기 투쟁 역시 최저임금법 개악과 같은 ‘돌발 변수’에 투쟁 계획이 끌려갔다. 정부·여당이 던진 일정과 쟁점에 끌려가다가, 뒤늦게 잡은 투쟁계획은 힘 있게 추진되기 어렵다.
민주노총의 전략적 과제가 무엇인가
투쟁요구와 투쟁계획 양 측면에서 나타나는 이런 문제는 서로 깊은 연관이 있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 혹은 이를 병행하는 ‘사회연대투쟁’을 통해 실현하려고 하는 핵심적인 요구가 무엇인지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대 요구안”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노사관계, 노동시장, 국민경제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한 전략적 과제를 도출하고, 여러 요구의 상호관계와 우선순위를 판별하는 과정, 그리고 이를 현장까지 대중적인 토론을 통해 결정하는 과정이 대부분 생략되었다는 점이 문제다. 여러 외부 전문가들이 제시한 정책 목록을 나열해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정부·여당이 던진 쟁점(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법)에 수동적으로 대응하고 사회적 대화 일정에 끌려가는 결과를 낳았다.
여러 요구안 중 민주노총은 실제로는 사회적·중층적 교섭(노정·산별교섭, 사회적 대화) 실현을 가장 우선 과제로 두는 것으로 보인다. 이 역시 중요한 과제일 수는 있으나 ‘대화를 위한 대화’에 빠질 우려가 상당하다. 올해초부터 사회적 대화 여부만으로 모든 쟁점이 맴돌고 능동적인 투쟁은 조직하지 못한 민주노총 상황이 그런 우려를 더 키우고 있다. 각 산별노조도 총노동 관점에서 접근하기보다 각 산별의 실리적인 요구를 실현할 노정·노사정 협의 틀에 주로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산별교섭 요구는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 확대에 도움을 줄 것이라 주장할 수도 있다. 물론 특정한 조건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 그 ‘특정한 조건’이란 기존 산별노조의 교섭이 미조직 노동자까지 총노동을 대변하는 투쟁 및 이와 연계된 조직화를 진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기존 산별노조 조합원에 한정된 것이 되고 말 것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경기후퇴 대응을 이유로 자본에 대한 규제완화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소득주도성장론’을 유지하겠다는 수사를 구사하면서도 동시에 경제정책을 전환한다. 물론 ‘혁신성장’으로 규제완화정책을 포장하지만, 은산분리 완화, 규제프리존법 등 정책은 생산성 향상를 위한 혁신과는 거리가 멀고 재벌의 지대를 보장해줄 뿐이다. 문재인 정부는 최근 심화되는 고용위기와 이후 예상되는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자본의 요구를 더욱 많이 수용할 것이다. 탄력적 근무시간제 확대, 공공기관 직무급제 등 고용·임금·노동시간 신축화가 차츰 다시 두드러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 정책 의존에서 벗어나야
민주노총이 자신의 전략적 요구를 분명히 토론하고 제시하지 못하는 데에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혼란, 혹은 정책기조의 변화라는 정세적 조건이 있다. 민주노총이 제시하는 세부적인 요구안들은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노동존중’ 정책의 여러 정책패키지를 최대한 밀어붙이는 내용이다. 혹여 문재인 정부가 이들 정책을 공약대로 추진할 생각이 있다면 그런 전술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전환되고 있고, 거시경제 침체 상황에서 충분히 예상된 결과다. 한국경제의 구조적 위기를 해결하기 어려운 소득주도성장론 등 경제정책의 결함과 함께 단기적 성과를 위해 재벌(에 대한 호소)에 의존한 결과, 경제 정책전환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단지 “초기 개혁 성향이 시간이 흐르면서 약화되고 있다”고 진단하기는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정책 변화는 사회적 대화, 정부 정책 반영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노총의 계획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따라서 사회적 대화를 개시하면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노동존중’ 정책을 사회적 합의라는 방식으로 신속하게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민주노총의 기대는 너무 과도하고, 비현실적이다. 정부 내 일부 사회적 대화 추진론자들은 그런 장밋빛 전망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협의를 시작한다면 ‘노동존중’ 정책 실현의 성과가 이어지리라는 기대는 과도하다.
오히려 정부의 태도는 올해 상반기에 노동시간 단축 입법과 최저임금법 개악 과정, 전교조 법외노조 유지 등에서 이미 수차례 확인되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참가한다고 해도, 문재인 정부가 공약한 ‘노동존중’ 정책이 그대로 추진되기 힘들 것으로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경기침체라는 조건에서 자본 측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요구를 제기할 텐데, 이에 대해 정부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도 냉정하게 예상해 보아야 한다. 민주노총이 문재인 정부의 ‘선의’와 사회적 대화에 대해 갖는 과도한 기대(혹은 신뢰)는 실제 결과와 충돌하면서, 올해 상반기에 드러난 것처럼 다양한 조직 내외적 갈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민주노총은 필요에 따라 투쟁과 함께 전술적으로 여러 형태의 사회적 대화에도 참여할 수 있지만, 자신의 전략은 가진 상태여야 한다. 이 때문에 정부가 제시한 ‘노동존중’이라는 정책 프레임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책과 시간표를 가질 필요가 있다.
경제위기, 노동자운동은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최근 정부 정책 기조가 변화하자 민주노총은 심지어 “소득주도성장론 후퇴 말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노동자계급 입장에서 국민경제를 개혁하기 위한 주체적인 정책이 부재한 상황에서 정부·여당의 소득주도성장론을 노동자계급을 위한 경제정책으로 오해한다. 결국 정부·여당이 제시하는 수준을 뛰어넘는 노사관계, 노동시장, 그리고 국민경제 개혁 요구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 예정된 경기침체는 일시적일 수도 있지만, 한국과 세계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 장기불황 속에서 반복되고 더 심화되는 국면 중 하나일 것임이 분명하다. 올해 하반기부터 상황은, 경기침체 혹은 경제위기에 노동자운동이 어떤 경제정책, 노동정책을 요구하고, 그것을 통해 노동자계급을 단결시킬 것인가의 전략을 시급히 발전시킬 것을 요구한다. ‘진보’를 자처하는 자유주의 정권 시기이기 때문에 더욱 어려울 수 있지만, 오히려 더욱 근본적으로 구조적 위기에 대한 대안을 논의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정부가 제시한 정책 프레임, 시간표 안에서 움직이기보다는 오히려 ‘민주노총의 정책 프레임, 시간표’를 제시하고 이를 기준으로 투쟁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소득주도성장론·혁신성장론을 보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 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