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특집
  • 2018/09 제44호

문재인 경제정책, 우향우!?

: 소득주도성장론의 예정된 실패

  • 김태훈
‘고용 참사’에 이어 ‘분배 참사’까지. 악재의 연속이다. 7월 취업자 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00명 증가 하는 데에 그쳤다.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취업자가 감소했던 2010년 이후 최저다. 또한 소득불평등도 지난 1분기에 이어 2분기에 더욱 심해졌다. 가구 소득 5분위(상위 20퍼센트)의 월평균 소득은 913만 4900원으로 10.3퍼센트 증가한 반면 하위 20퍼센트인 소득 1분위 가구는 소득이 7.6퍼센트 줄어 132만 4900원에 그쳤다.

야당과 보수언론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패라 맹공을 퍼붓고 있다. 정부 내에서 장하성 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간 갈등도 계속 이슈가 되고 있다. 8월 초에 ‘삼성 투자 구걸’ 논란을 시작으로 부총리 사퇴설이 돌았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팀워크를 주문했다. 문재인 정부의 입장에서는 악화하는 경제지표로 인해 궁지에 몰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핵심 정책인 소득주도성장론을 폐기할 수도 없다. 장하성 실장은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 ‘최저임금만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아니다’는 식의 면피성 발언으로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비판을 무마하려고 하고 있다. 
 

우경화 

소득주도성장론은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부터 정쟁의 대상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선거 때부터 강조했던 공약이 바로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과 최저임금 인상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중앙·동아일보와 같은 보수언론은 출범 때부터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대립시켜왔다. 주류 경제학을 근거로 때로는 소득주도성장은 경제적 근거가 없다고 비판하기도 하고, 때로는 소득주도성장은 수요측면의 개입 정책으로 경제성장의 마중물일 뿐이고, 공급 측면의 개입인 혁신성장으로 펌프를 가동해야 한다고 달래기도 했다.

실제 정부는 올해 들어 혁신성장을 보다 강조했다. 이것은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비판 여론을 무마하려는 의도이면서 동시에 지방선거 대책이기도 했다. 지방선거 이후 보다 노골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을 답습하고 있다. 특히 의료기기 규제 완화, 병원의 의료기술지주회사 허용, 원격의료 허용 등 야당 시절의 당론을 뒤집으면서 박근혜 정부 의료민영화 정책을 추진하려고 한다. 급기야 여·야·정 상설협의체를 발족하는 과정에서 정의당의 명시적 반대의사에도 불구하고 8월 중 규제개혁 법안을 통과시킬 것을 합의한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규제프리존특별법 등은 재벌 청탁법,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 적폐라고 비판받는 쟁점 법안이다.
 

잘못된 이분법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중단되어선 안 되고, 규제 완화는 반대한다는 식으로 논리를 전개한다. 다시 말해 “‘소득 주도 성장’ 포기하지 말라”(참여연대 산하 참여사회연구소의 시평 제목이다)는 식이다. 소득주도성장은 진보고, 혁신성장-규제 완화는 보수라는 이분법을 만든다.

이런 대응 방식은 한계적이다. 첫째, 문재인 정부의 사람 중심 경제(이른바 제이노믹스)는 애초에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로 이뤄져 있었다. 그 내부의 모순이 현재의 허구적 대립(소득주도성장 대 혁신성장)을 낳는 것일 뿐이다. 둘째, 소득주도성장 자체가 경제학적 비판에 취약하고 계급적 기반도 약하다. 소득주도성장론은 신고전파-케인스주의를 종합하는 현대 주류 경제학의 근본적 대안도 아니고, 착취에 맞선 노동자 계급의 단결에 착목하는 마르크스주의도 아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세계 경제는 생산성 혁신의 곤란 속에서 장기 침체 국면에 있다. 소득주도성장론은 단기적 경기부양에 효과적일 수 있어도 장기적 해법은 아니다. 최근 한국의 제조업 위기가 이런 파국을 예고하고 있다.
 

 

예정된 실패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비판 여론에 직면해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를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각각의 정책이 모두 애초 기대에 못 미치고 있거나 위기를 맞고 있다. 이미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개악되고, 고용·소득 사정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소득주도성장론은 지지를 잃고 있다. 

대신 보수의 반대 여론이 강해지고 있다. 혁신성장은 의료민영화, 은산분리 규제 완화 등 실효성이 모호한 정책만 내놓으면서 변죽만 울리고 있는 사이 재벌의 이해관계에 끌려가고 있다. 최근에 발표된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은 지주회사 지분율, 기존순환출자 해소 등 재벌 총수의 경영권 세습 문제 자체는 건드리지 않고, 일감몰아주기 등 이른바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행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뿐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개혁의 후퇴를 오히려 진보진영의 근본주의가 문제라는 식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 각각도 문제지만 정책 간의 모순도 문제다. 문재인 정부가 혁신성장의 전면에 내세우는 4차 산업혁명은 소득주도성장과 모순된다. 디지털 경제를 주축으로 한 신산업들은 노동자들의 소득 증가에 별 효과가 없다. 특허와 네트워크 독점을 통한 지대를 바탕으로 고수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고용효과도 적고, 설비투자 효과도 적다. 또한 문재인 정부는 정작 임금노동자 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는 가장 기본적 제도인 노동조합의 교섭력 강화, 노조 할 권리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다. 오히려 기업들은 혁신성장을 위해 노동규제를 완화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고 이것은 노조 할 권리를 파괴한다.
 

지지적 비판이 아닌 대안적 비판을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애초에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해법도 아니었고, 실현 능력도 부족했다. 결국 현 상황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이전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과 수렴해가면서 그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라 보아야 한다. 포장만 달랐지, 알맹이는 큰 차이가 없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등 노동자들의 요구를 일부 선별적으로 포섭하면서 강조점을 달리했으나 이마저도 사라지고 있다.

따라서 사회운동은 소득주도성장으로 대표되는 문재인 정부의 개혁을 온전하게 실현하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 개혁 자체에 대한 평가와 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동안 노동조합과 사회운동은 정부의 개혁의 세부적인 각론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전반적인 개혁 방향에는 힘을 실어주는 ‘비판적 지지’를 보여 왔다. 정부의 최근 우경화를 계기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나, 다른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정부의 초기 개혁을 중단 없이 진행하라는 식의 ‘지지성 비판’에 가깝다.

이것은 의지의 문제라기보다 현실적인 사회운동의 역량에서 비롯한다. 현 정부의 개혁정책보다 더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그런 대안을 추진할 힘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대로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우선은 정부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사회운동의 연대와 자율성을 회복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한계적 개혁과 뚜렷이 구분되는 공동의 전략적 목표를 만들어가야 한다. 노동조합의 역할이 중요하다. 경제정책과 일자리 문제에 있어서 정부 정책에 끌려다니며 수세적 요구에 머무르지 말고, 당장 근본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더라도 공동의 요구를 바탕으로 주도권을 획득하기 위해 더욱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
 
 

 

※ 알립니다
이 글에서 사용되었던 문재인 대통령 캐릭터는 사회적 기업 '네오누리콤'에서 개발하였습니다. 표지 및 잡지 디자인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고, 해당 업체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의 같은 이미지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이 글을 비롯한 홈페이지에서 해당 이미지는 전량 삭제 조치하였습니다. 의도치 않게 네오누리콤 측에 심려를 끼쳐드리게 되어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향후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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