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오늘여성
  • 2018/08 제43호

통제와 의무에서 선택과 권리로

낙태죄폐지퍼레이드 참가 후기 #2.

  • 허현재
햇빛이 쨍쨍하던 7월 7일 광화문 광장, ‘모두를위한 낙태죄폐지공동행동’에서 주최한 낙태죄폐지퍼레이드에 모인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낙태죄는 위헌이다! 낙태죄를 폐지하라!”, “여성은 출산의 도구가 아니다!”,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다!”

힘찬 구호와 발언, 공연들이 이어지고 곧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광화문 광장에서 광화문 앞을 지나 인사동으로, 인사동에서 종로를 돌아 다시 광화문 광장까지 걸어가면서 참가자들은 쉴 새 없이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다. 손으로 써 온 피켓을 두 손 높이 들고 인사동과 종로 일대를 지나는 시민들을 향해 펼쳐 보이기도 했다. ‘낙태죄 폐지’라는 구호에 어리둥절해 하거나 대놓고 불만을 표출하는 시민들도 있었지만, 멀리서 고개를 끄덕이거나 박수를 보내는 시민들도 여럿 있었다. 
 

퍼레이드에 참여한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더없는 해방감과 흥분이 서려 있었다. 동요와 찬송가(!)를 개사한 노래를 부르면서 서울 한복판을 행진하는 것은 마치 축제의 한순간처럼 짜릿했다. 이윽고 다시 광장으로 돌아와, 낙태죄 폐지를 위해 앞으로도 계속해서 싸울 것을 약속하며 퍼레이드는 마무리되었다. 이제껏 갇혀 있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서울 한복판에 울려 퍼졌다는 성취감 때문이었을까? 퍼레이드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참가자들은 아쉬워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상쾌한 표정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생물학적 남성이자 사회학적 남성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공임신중절이 여성의 몸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전혀 알지 못했고, 알아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지식은 고등학교 성교육 시간에 ‘낙태 방지 비디오’를 본 정도가 유일했고, 결코 나와 나의 파트너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일어난다고 해도 ‘책임지면 되지’라는 식으로 가볍게 생각하는 게 전부였다.

그런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은 대학에서 페미니즘을 배우면서부터였다. 페미니즘을 학습하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내가 여성의 삶과 몸에 대해, 임신과 출산, 피임과 인공임신중절에 대해 너무나도 무관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치 않는 임신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여성들은 임신에 대한 공포와 죄책감, 범죄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 사이에서 언제나 줄타기하듯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과 남성을 생물학적으로 구분하는 특성이며 오직 여성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 그러나 동시에 여성의 건강과 경제적 조건, 삶의 방향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치는 일이기도 하다. 때문에, 여성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임신과 출산을 ‘하지 않을’ 권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낙태죄는 여성의 ‘하지 않을’ 권리를 박탈함으로써, 임신과 출산을 여성의 의무로 한정하고, 여성의 몸을 통제의 대상으로 환원한다. 
 
낙태죄 폐지는 여성-시민의 행복과 주체적인 삶을 실현하기 위한 커다란 한 걸음이 될 것이다. 나아가 인간의 몸, 생명과 건강을 통제할 권리가 국가가 아닌 시민에게 있다는 것을 밝히는 싸움이 될 것이다. 앞으로도 낙태죄 폐지를 위해, 행복하고 주체적인 삶을 꾸려나갈 권리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싸워나가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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