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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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 제43호

장시간 노동 근절, 그냥 없었던 일로 합시다?

일일 노동시간을 제한하고 유연근무제 도입을 저지해야

  • 박준도
7월 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의 법정 최대 노동 시간은 주 52시간으로 제한된다. 《오늘보다》 2018-4월호 ‘과로사 없는 사회, 우리는 3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가’에서 강조했다시피, 이번 연장근로 제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법정 최대 노동 시간을 3년간 유예하는 개정안이고, 사업장 규모별로 1년 6개월 간격을 두고 단계적으로 시행된다는 점에서 노동 시간 격차가 확대되는 개정안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마저도 현장의 어려움을 들먹이며 6개월 계도 기간을 주었다. 연장근로 위반으로 처벌한 사례가 거의 없는데도 6개월 계도 기간을 준 것은, 사실상 법 시행을 2018년 1월 1일로 연기한 셈이다.

개정근로기준법은 민간기업의 공휴일 유급 휴일 제도를 도입했다. 이 역시 제도 도입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직접 “근무일 중 하루가 공휴일이어서 쉰 경우, 토요일을 무급으로 일 시킬 수 있다”는 잘 알려지지 않는 판례와 행정해석을 배포하고 나선 것이다. (고용노동부, 〈개정 근로기준법 설명자료〉, 2018)
 
토요일은 통상 알려진 것과 달리 휴일이 아니고 휴무일(‘일을 해야 할 의무가 없는 날’)이다. 그래서 토요일 근무를 하면 휴일 수당이 아니라 연장 수당을 받는다. 그런데 근무일 중 하루를 유급 휴일로 쉬면 소정근로시간을 못 채운 것이 되기 때문에 토요일 근무는 연장 근무가 아니라 소정근로시간인 주 40시간 안에 포함된다. 즉, 주중에 공휴일 하루를 쉬었다면 그 주의 토요일 근무엔 연장 수당이 지급되지 않고 임금을 평일 급여와 동일하게 지급받는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나서서 사업주들에게 이 방법을 홍보하고 있다. 
 
(뉴시스)
 

최대 52시간에서 평균 52시간으로 :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산

노동 시간 단축이 제도화되면 사업주들은 ‘노동 강도(=사용가치생산량/노동시간, 빡세게 일시키기)’와 ‘노동 밀도(=투입노동시간/공장가동시간, 빈틈없이 일시키기)’를 증대시켜 노동력 사용 시간의 손실분을 만회하려 한다. 이번 52시간 법정 최대 노동 시간 제한 역시 마찬가지 효과를 발휘한다. 사업주들은 선택적 근로시간제, 탄력적 근로시간제, 간주근로제, 재량근로제 같은 유연근무제를 도입해 노동 밀도를 높인다. 오랜 기간 유연근무제 확산을 위해 노력해온 정부는, 장시간 노동 제한을 계기로 이걸 제대로 도입하려고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유연근로시간제 가이드〉, 2018)

예를 들어 대형마트에서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이용해 비수기 몇 주 동안은 노동 시간을 줄이고 명절을 낀 성수기 몇 주 동안은 노동 시간을 늘릴 수 있다. 공장의 경우 물량이 적은 시기에는 노동 시간을 줄이고 물량이 많은 시기에는 노동 시간을 늘릴 수 있다. 원래대로라면 손님이나 물량이 적은 시기엔 숨을 돌리며 일할 수 있었겠지만, 이렇게 되면 총 노동시간이 같으면서도 더 쉴 틈 없이 일을 해야 한다.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노동 밀도를 증대시키는 방식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경우 노동 밀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법정 최대 노동 시간도 늘린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하면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주의 경우 최대 64시간(소정근로시간 52시간+연장 12시간)까지 일을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소정근로시간 평균 주 40시간을 맞추려면 단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주가 있어야 하는데, 그 주 역시 12시간 연장근무를 하면 최대 40시간(소정근로시간 28시간+연장 12시간)까지 일을 시킬 수 있다. 3개월 단위로 평균 주 52시간씩 일을 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 기간을 최대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노동자 대표와 서면 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절차의 번거로움을 제외하면, 특별한 저항 없이 제도를 도입할 수도 있다. 장시간 노동 제한에 따른 임금 삭감을 우려하는 노동자에게 ‘임금 삭감 없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제안하면, 대체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교대제 근무가 많은 제조업 현장 일부에서 ‘임금 삭감 없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은 실제로 시도되고 있다.
 
 

빈틈없는 노동, 압축노동의 위험

장시간 노동 제한은 노동 시간의 양적 유연성(장시간 노동)에서 질적 유연성(빈틈없는 노동)으로의 이행을 촉구한다. 연장근로 제한에 따른 휴식시간 증가 효과가 일부 있을 수 있지만, 불규칙한 노동과 업무 시간, 휴식 시간의 모호한 경계로 인해 노동과 삶에 대한 노동자의 통제권은 약화할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노동자의 삶이 질적으로 개선될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선택적 근로시간제와 같은 유연근무제는 노동자에게 압축 노동(Compressed Workweek)을 종용한다. 선택적 근로제, 간주·재량근로제는 개별근로시간을 규제하는 제도여서, 노동자 개개인이 7일 중 3~4일 압축적으로 일하는 것을 장려한다. 이 같은 압축노동은 노동자의 건강(노동력 재생산)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하루 12시간 이상 노동은 주 60시간 이상 노동과 유사한 수준의 피로와 산재 위험을 초래한다고 한다.

한국은 일일 노동 시간의 제한이 없다. 하루 20시간(8시간+12시간) 노동을 시켜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심지어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하면 하루 소정근로시간을 12시간으로 늘릴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 연장 12시간을 더하면 하루 24시간을 풀타임으로 돌리는 것도 가능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이번 주까지 끝내라’는 업무명령이 일상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유연근무제 확산은 압축 노동의 양상을 극단화 할 수 있다.

일일 노동 시간의 제한이 없는 상태에서 유연근무제의 확대는 빈틈없는 노동, 압축노동의 위험성을 증폭시키고 말 것이다. 일일 노동 시간을 제한하는 방안, 예컨대 하루 연장근무를 3시간으로 제한하는 방안에 대해 노동자운동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래야 노동 시간 통제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를 불붙일 수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 기간 확대를 저지하고, 제도 도입 자체를 엄격히 제한하는 것, 노동 시간에 대한 개별적 운영보다는 집단적 운영이 노동자 전체에게 유리하다는 사실을 환기하며 유연근무제 도입에 저항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지금 우리는 기로에 서 있다. 유연근무제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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