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노조 할 권리
  • 2018/08 제43호

자회사 전환 1년, 그저 투쟁의 조건이 바뀌었을 뿐이죠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정범채 지부장을 만나다.

  • 조유리
지난 6월 28일,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민주노총, 페미니즘을 외치다” 집담회에는 특별히 눈길을 끄는 주인공이 있었다. 두 딸을 키우기 위해 일을 해야 했지만, 두 딸 때문에 구직에 실패할까봐 이력서에 가족사항을 빼고 썼다는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였다.

곧이어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의 투쟁소식이 들려왔다. 자회사 전환 1년,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이들의 노동조합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1박2일 상경투쟁 후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서울 종로구 SK본사 앞에서 정범채 지부장을 만났다.
 

SK브로드밴드 자회사, 홈앤서비스의 직원으로 전환되다

작년 5월 말, 초고속인터넷 기업 SK브로드밴드가 중대한 결정을 했다. 서비스 전문 자회사를 만들어 인터넷 설치와 유지 보수를 담당하는 협력업체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한지 일주일만의 일이었다.

‘정규직 전환 과정’이 어땠냐는 질문에 정범채 지부장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히려 내게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되물었다. 

“우리는 항상 진짜 사장이 나오라고 이야기 해 왔어요. 이건 나의 진짜 사용자가 나를 고용하라는 말이잖아요. 자회사라는 건 또 다른 사장이 생겨나는 것일 뿐이에요. 나는 SK브로드밴드 상품을 취급하는데, 내 사장은 여전히 SK브로드밴드의 사장이 아니죠. 홈앤서비스는 말 그대로 SK브로드밴드의 자회사고, 노동자들이 요구해 온 원청의 사용자 책임과, 원청의 직접고용과는 큰 차이가 있어요.” 자회사는 자회사일 뿐이라며, 정범채 지부장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언론 발표 전부터 SK브로드밴드는 협력업체의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이야기를 흘렸다. 서비스 업무를 담당하는 자회사를 설립하고, 기존 협력업체 직원들을 고용하는 방식이었다. 협력업체 사장들이 반발할 수 있으니 노동조합에게는 조용히 있어 달라고 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노동조합은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무엇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노동자들은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토론하고 논의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언론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SK브로드밴드는 이미 이사회에서 홈앤서비스라는 자회사를 세우기로 결정했다. 노동자들에게는 이를 받아들일지 반대할지의 제한적인 선택지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자회사 전환 투표에서 조합원들의 찬성률이 높긴 했어요. 그래도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과정에서 주체적으로 토론하지 못한 부분에는 아쉬움이 많아요. 우리가 조금 더 실력 있게 대처했다면 좀 달랐을지도 몰라요. 전환 방식과 과정에 대해 노동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했겠지요.”
 
 

우리는 권한 없다~ 본사에 물어봐라~

불안정한 고용, 저임금, 열악한 노동조건만이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문제가 아니다. 가장 큰 곤란은 이 모든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는 사용자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자회사 방식의 정규직 전환은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예전에도 SK브로드밴드가 업무를 평가하는 지표를 내려 보내긴 했어요. 그걸 그대로 따르진 않았죠. 늘 업무가 바쁜 조합원들의 거부가 심했어요. 그러면 당시 협력업체 센터장이 ‘위에서 시키니까 하는 척만 하고,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원래 하던 대로만 해줘.’하면서 유야무야 넘어갔어요. 지금은 그런 게 불가능해요. 과거에는 이 사람들(센터장들)이 결정 권한이 있었는데, 지금은 있어도 없다고 하거든요. ‘아, 우리는 모르겠다. 본사에 물어봐라.’”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배제된 자회사 전환은 홈앤서비스 관리자들의 알리바이를 늘려줬을 뿐이다. 홈앤서비스의 월급쟁이가 된 관리자(다수는 과거의 협력업체 관리자거나 센터장이었다)들은 ‘권한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노동자들을 더 강하게 옥죄어왔다.

“보통 사람들은 자회사 되서 그래도 좀 좋아진 거 아냐? 월급 좀 올랐을 거 아냐? 복지 좀 좋아진 거 아냐? 이렇게 물어봐요. 회사는 더 많이 투자한다고 하지만 노동자들이 실제로 받는 건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과거에 협력업체별로 있었던 인센티브도 다 사라졌죠. 지역별로 나뉘어져 있는 고객센터의 재량이 약화되면서, 노동자들의 투쟁도 어려워졌죠.”
 

홈앤서비스를 대상으로 한판 붙다

눈앞에 보이는 교섭상대가 사라졌다고 묵묵히 있을 수는 없었다. 노동조합은 전국에 흩어져있는 노동자들이 함께할 수 있는, 조합원과 비조합원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투쟁을 고민했다. 

“많이 알려진 것처럼 설치, 수리하는 현장기사들은 위험한 산업재해에 노출돼요. 그런데 홈앤서비스가 산업안전교육을 온라인으로 하겠다는 거예요. 온라인 교육으로 진행하면, 그걸 쳐다보고 있는 사람이 없어요. 그저 틀어만 놓죠.

현행법으로는 산업안전교육을 온라인으로 진행해도 상관없어요. 그래도 노동조합은 온라인 교육을 전면 거부하기로 결정했어요. 온라인교육보다는 현장에서 강사 말 듣는 게 좋을테니까요. 혹시나 졸더라도 강사가 하는 말을 들리긴 하잖아요? 물론 귀찮아하는 조합원도 있었지만, 반대로 동의하는 비조합원도 많았죠. 형식적으로 할 바에야 우리도 거부해서 제대로 교육받자 해서 비조합원들도 참여를 많이 했어요.”

노동조합의 온라인교육 전면 거부에 홈앤서비스는 버텨낼 수 없었다.  여러 차례 요구 끝에 지금은 이 교육을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서 진행하고 있다.

진짜 싸움은 그 다음부터였다. 노동시간 단축을 시행을 앞두고 홈앤서비스는 유연근무제 도입을 시도했다. 사측의 유연근무제 안은 야간·주말 업무를 소정근로시간으로 포함시키고 있었다. 초과근무수당을 삭감하려는 꼼수가 눈에 뻔했다. 

“회사는 유연근무제를 강하게 밀어붙였어요. 일단 노동조합이랑 협상을 해보고, 안 되면 노사협의회에서 동의 받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전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찬반투표를 하겠다는 계획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노조에서 반발하고, 노사협의회에서 반발하고, 조합원 비조합원 할 것 없이 이건 너무하다고 했죠. 되게 극단적이잖아요. 9시까지 일하는 주를 고정해놓고. 노동조합 차원으로 반대 서명을 받았어요. 기자회견 하고 언론에 퍼뜨리기도 했죠.”
 
타입 요일 시간
A 월요일~금요일 09:00~18:00
B 화요일~토요일 09:00~18:00
C 월요일~금요일 12:00~21:00
D 화요일~토요일
12:00~21:00
(토요일은 15시 퇴근)

노동조합의 위력을 맛본 홈앤서비스는 기존의 유연근무제 안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들이 유연근무제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희망자에 한해서 아침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근무 조를 만들었다. 지금 노동조합은 이것도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보기에 회사의 작태는 노동시간 단축의 취지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다시 홈앤서비스를 대상으로 투쟁에 나서다

홈앤서비스가 극단적인 유연근무제를 밀어붙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유선 설치고객이 감소한 상황에서 서비스 제공시간을 늘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전략은 포인트제를 통해 야간·휴일 노동을 조장하는 홈앤서비스의 임금체계에서도 확실히 드러난다.

“우리가 인터넷 하나 설치하잖아요, 그러면 아파트는 1포인트, 주택은 1.2포인트예요. 아파트는 110개를 설치해야 110포인트를 채울 수 있는 거죠. 여기에 전화, TV 이런 게 추가 돼요. 전화는 0.3포인트, TV는 0.7포인트 이렇게.

개통기사들은 110포인트가 기준 포인트에요. 월요일부터 금요일 정해진 시간동안 일한 포인트 총 합이 110포인트가 넘으면, 넘는 부분에 대한 수당을 줘요. 예를 들어 8월 한 달 동안 130P를 했다, 그러면 20포인트가 나의 수당이거든요. 1포인트는 12500원이예요. 

그런데 회사가 꼼수를 썼어요. 야간이나 휴일에 처리한 업무는 기준 포인트에 합산하지 않고, 별도 포인트로 처리하는 거예요. 그리고 수당을 더 줘요. 법정 야간휴일수당보다 더 많이 주죠. 그러니까 노동자들도 자연스럽게 야간이나 휴일에 더 많은 일을 하죠.

지금 회사에서 제시하는 통계를 보면 110포인트를 못 넘는 노동자들이 50퍼센트 가까이 된다고 해요. 평일에 일 해봐야 기존 포인트를 넘기도 힘든데, 굳이 110포인트 채우는 것보다는 야간이나 휴일에 하는 게 훨씬 더 이득이 되죠. 욕을 하면서 하는 거죠. 자회사 되더라도 이런 식으로 우리를 쥐어짜는구나. 정상적으로 월~금에 적정 수준의 임금이 주어진다면 우리가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일하지는 않을 텐데... 하면서요.”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는 제대로 된 노동시간 단축, 안정된 월급을 위해 다시 한 번 파업·농성에 나섰다.

“안정적인 고정급은 필수에요. 우리는 근속수당과 감정수당을 요구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제대로 된 근속수당이 없었는데, 협력업체 시절까지 포함해서 근속 3년을 인정해달라고 하고 있죠. 거기에 감정수당도 12만원 있어요. 고객하고 전화로 시달리든, 현장에서 시달리든 우리는 모두 감정노동을 하는 노동자니까요.

야간, 휴일 업무 문제도 해결해야 해요. 우리는 표준역량에 따른 실적 급여를 주장하고 있어요. 표준역량이란 정해진 시간동안 처리할 수 있는 일의 양을 정하는 거죠. 장애는 1시간에 1건, 개통은 아파트는 1시간 15분에 1건, 주택은 1시간 30분에 1건. 이런 식으로요. 예를 들어 내 하루치 일이 6건 할당되잖아요. 우리는 이걸 꽂힌다고 하는데, 나한테 오늘 꽂힌 일을 다 처리하고 추가로 처리하는 일에 대해서는 실적 급여를 주는 거죠. 지금은 야간이나 휴일에 추가수당이 더 높게 되어 있으니까 우리가 그 쪽으로 일을 미루게 되어 있지만, 노동자라면 누구나 정시에 끝내고 가고 싶지 않겠어요? 퇴근시간 전에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거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 할 권리를 위하여

홈앤서비스로 전환된 이후,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의 조직범위는 조금 더 넓어졌다. 이전에는 고객센터에 속한 현장직, 내근직 노동자들만이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었다. 이제는 고객센터에 속해있진 않지만, 홈앤서비스에 고용되어 있는 마트 영업직, 무선 상품 담당, 기업회선 담당, 에이치에스(HS)스케줄러도 하나의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까지 노동조합은 현장기사들 중심이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 할 권리는 노동조합의 노력으로 조금씩 확장되고 있다.

홈앤서비스라는 이름으로 눈가림을 하고 있지만,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는 여전히 SK브로드밴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SK브로드밴드가 지속적으로 홈앤서비스 소속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침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릴 건 누리고 책임은 지기 싫은 이들의 속셈은 이번 파업과정에서 다시 한 번 드러났다.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을 단행하자, 원청인 SK브로드밴드가 즉시 대체인력 구인광고를 곳곳에 게재했던 것이다.

“우리가 파업을 시작하니, SK브로드밴드에서 대체인력을 투입하는 증거들이 포착됐어요. 무슨일인가 했더니 홈앤서비스에 SK브로드밴드에 자발적으로 업무를 반납했더라구요. 대체인력을 집어넣는 걸 보고 나니, 우리는 SK브로드밴드에겐 아무 것도 아니구나 싶었죠. 현행법은 원청이 직접 채용한 노동자나, 직접 계약한 회사가 다른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대체인력으로 들어오는 걸 인정하고 있어요. 노동부 지침인가 행정해석인가가 그렇대요. 어찌됐든 이건 정말 부당노동행위죠. 노동조합의 파업권을 가로막는 것으로 고소고발 했어요. 어떻게 될지는 몰라요.”

바로 이 순간도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는 여전히 진짜 사장의 책임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자회사 전환은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바라 왔던 그 어떤 것도 아니었다. 그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의 조건이 변했을 뿐이다. 변화한 조건에 대한 정확한 진단, 승리를 위한 완벽한 전략, 더 큰 노동자의 단결로 이제 승자의 자리에 서는 것만 남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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