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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8 제43호

과로 자살, 산업재해 인정을 향해

에스티유니타스 사과 이후 대책위의 과제

  • 박준도
지난 7월 12일, 에스티유니타스 윤성혁 대표이사가 웹디자이너 과로 자살 유족에게 공식 사과를 했다. 고인의 고통이 ‘잘못된 기업문화’에서 비롯됐음을 인정하고 고인의 죽음에 책임 있게 사과한 것이다. 그리고 잘못된 기업문화와 관련된 모든 이들에 대해 ‘응분의 조치’를 취할 것이며, 고인의 산재 신청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에스티유니타스의 사과

공인단기·스콜레 디자이너 과로자살 대책위(약칭 ‘에스티 대책위’)와 협의해 마련한 재발 방지 대책도 함께 내놓았다. 근로 환경 및 업무 소통 개선을 위해 법정근로시간을 준수하고 야근을 근절하겠다고 했다. 근무환경혁신위원회가 자율적이고 민주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해서 업무 환경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이들의 합의권을 인정하겠다고 했고, 또 다른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도록 심리 상담, 인권 교육을 실시하고, 고충 처리 센터도 운영하겠다고 했다. 

과중한 업무, 직상 상사의 괴롭힘으로 힘겨워하던 고인이 세상을 떠난 지 191일 만이다. 언니에게 “일이 너무 많다”며 서럽게 통곡하다 잠이 든 12월 2일부터 따지면 223일 만이다.
 
 

‘직장 내 괴롭힘’ 근절 대책

7월 18일, 정부는 국정현안 점검회의를 열어 <직장 등에서의 괴롭힘 근절대책>을 확정했다. 직장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들이 업무상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을 이용하여 업무의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 등에게 신체적·정신적·정서적 고통을 주거나 업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예시)”로 정의하고, 2018년 10월까지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12월에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이를 근절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회사 취업규칙에 직장 괴롭힘 신고 및 해결 절차를 명시하고,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사건 신고가 접수되면 사용자는 물론 고용노동부 관할지청 역시 직권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정신적 괴롭힘 등으로 노동자의 건강장해가 발생하면, 관할지청장이 임시건강진단 명령 등 추가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했다. 관할지청의 직권조사나 임시건강진단 명령은 당장 7월부터 실시하겠다고 한다. 근로감독관 집무 규정을 개정해 특별 근로감독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건 8월부터다. 

아울러 직장 괴롭힘 금지 의무 규정을 마련해, 가해자에 대한 형사 처분도 가능하도록 할 방침이다.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 처우를 금지하고, 심리 상담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직장 괴롭힘으로 인한 사망, 자살, 우울증 등 질병에 대해서도 산재보상 할 수 있도록 업무상 질병인정기준을 구체화하기로 했다. 이 역시 12월까지다.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하기 위해, 취업규칙 표준안을 마련해 배포하고, 관련 근기법 개정 때 예방 교육도 의무화하기로 했다. 

이번 대책이 고인의 사망사건에서 직접적으로 비롯되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대책은 대책위가 고용노동부 강남지청을 상대로 요구했던 내용이 고스란히 포함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고용노동부 강남지청은 여론화 이후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에스티유니타스에 특별근로감독은 물론 압수수색까지 진행했다. 또 산업안전관리감독도 진행해 직무스트레스 조사 등을 실시하고, 심리 상담 등 후속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산재로 인정되지 않는 과로 자살 

최근 연구(김인아, 2018)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7년 사이의 자살 사건의 산재 승인율은 28.9퍼센트에 불과하다. 이 수치마저도 2017년 승인율이 47.3퍼센트로 상당히 개선된 탓이다. 2015년에는 15.2퍼센트에 불과했다. 

그런데 승인율을 따지는 것부터가 부질없는 것이, 신청 건수 자체가 3년 동안 149건에 불과하다. 연평균 1만 3천 명 정도가 자살하고 이중 절반이 직장인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 경찰 초동 조사에서 자살 원인이 ‘업무상 문제’로 기록된 것만도 2015년 한 해 500명이 넘는 상황에 비춰 보면, 3년 간 신청 건수는 터무니없이 적다. 이것은 과중한 업무와 괴롭힘으로 사람이 ‘자살’할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 자체가 낮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3년간 과로 자살로 산재인정을 받은 인원은 43명에 불과하다.

자살하는 사람에 비해 과로 자살에 대한 산재 인정 비율이 낮은 건, 산재보험보상법(37조 2항)과 시행령(36조)에 규정된 산재 인정 요건이 협소한 탓이기도 하다. 자살이 산재로 인정되려면, ①업무상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 때문에 치료를 받은 적이 있거나 업무상 재해로 산재 요양 중이던 노동자가, ②정신적 이상 상태로 자해를 했을 때다. 일단 대상자가 한정되어 있다. 업무상 사유로 인해 정신적 질환이나 산재요양 치료 중이던 노동자로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자해행위도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했을 때만 인정된다. 정신적 이상 상태로 온전히 평가받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닌데 자살하면 산재로 인정되지 않는다. 정신질환이 없던 사람은 더 까다롭다. ①과로나 스트레스 등으로 급작스럽게, ②정신적 이상으로 자해를 했다는 것이 ③의학적으로 인정될 경우에만 과로자살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의학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전제마저 붙는다. 요컨대 정신질환이 없던 노동자나 다른 기저 원인으로 정신질환을 앓던 노동자는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과중한 업무와 ‘심리적 부담’

보건복지부의 <2016년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한국사회에서 정신질환을 한번이라도 앓았던 사람의 비율은 25.4퍼센트나 된다고 한다. 약 470만 명이다. 우울증과 정신질환은 단지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는 없다. 만성적인 스트레스 자체가 우울증 증상을 발현시키는 위험인자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울증 재발은 반복적이면서도 만성화되는 스트레스가 더 주요한 요인이 된다. 정신질환은 누구든 겪을 수 있는 질병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던 노동자도 업무 때문에 정신 건강이 악화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정신질환을 발생시키거나 악화시킬 수 있는 업무 환경은 이것이 위험인자로 작동하지 않도록 관리되어야 한다.(최민, 2018)

과로사와 과로 자살에 대한 예방에 적극적인 일본에서는 과로사보다 과로 자살에 대한 산재 인정 건이 더 많다. 2007년을 기점으로 과로사보다 과로 자살 산재 인정 건이 늘어나게 되었는데, 자살한 사람이 늘어나서라기보다는 과로 자살에 대한 산재인정이 현실화되어서다. 이는 일본사회가 더 적극적으로 과로 자살을 예방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는 장시간·고강도 노동에서 비롯하는 신체적 부담뿐만이 아니라 업무 스트레스, 직장 내 괴롭힘과 같은 심리적 부담에도 주목하면서 가능했다. 

과로사와 달리 과로 자살은 심리적 부담이라는 ‘질적인 측면’을 봐야한다. 이 ‘질적인 측면’은 사업장에서 권력 관계,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살펴야 규명할 수 있다. 현장에서 관계의 재구성은 노동시간에 대한 양적인 규제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노동자들(나아가 노동조합)이 노동시간과 업무에 대한 통제력을 얼마만큼 가질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한겨레, 김성광)

 

에스티 대책위, 이젠 산재 인정을 위한 활동으로

에스티유니타스의 야근은 그 자체로 과중했고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근로기준법만 지켰어도 제 동생은 살아있었을 것입니다.” 대책위가 처음 내건 이 주장은 에스티유니타스가 근로기준법조차 안 지켰다는 의미지, 사업장 내에서 심리적 부담 요인을 부차적으로 본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실은 그 반대다. 

대책위는 에스티유니타스에서 벌어진 직장 내 괴롭힘 유형을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항목으로 정리했다. 첫째, 업무 과중: 4명의 일감 몰아주기. 둘째, 체계없는 업무 프로세스: 컨펌 대기, 컨펌 까기, 기획 엎기. 셋째, 가학적 노무관리: 업무일지 상 반성문 강요. 넷째, 인격모독, 비인간적 처우: 채식주의자에게 육식 강요, 주말 독후감 써오기 등. (김미현, 2018) 나아가 책임자 처벌과 일하는 사람들이 존엄한 일터 실현을 위한 인권교육을 요구했다. 

유족과 대책위는 회사로부터 사과를 받으면 그 이후에 산재 신청을 들어가자고 했다. 이제 산재인정을 위한 활동이 대책위 활동의 중요한 축이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책위는 조금 다른 목표를 설정하게 될 것이다. 과중한 노동과 심리적 부담이 어떻게 우울증을 악화시키는지를 입증하고 이를 산업재해로 인정받음으로써, 한국사회 전체가 과로 자살에 인식을 제고하도록 촉구하는 활동이 핵심 활동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일하다가 팔다리가 부러지면 산재로 인정이 되지만 회사 때문에 정신이 망가져서 죽음에 이르는 것은 왜 산재로 인정되지 않습니까? … 과로사와 과로 자살의 산재 인정 기준이 현실에 맞게 완화되어야 합니다. 또한 트라우마와 우울증 위험에 노출된 피해 유족을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근로감독기관 또한 연장근로 위반에 대한 근로감독 신청을 ‘위험 신호’로 인지하고 즉각 근로감독에 나설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하고, 과로사, 과로 자살이 발생한 사업장에 대해 처벌을 강화해야 합니다.” (문송면 30주년 토론회, 에스티유니타스 과로자살 유족인 언니 장향미씨의 발언 중에서)

‘과로 자살’에 대한 진단과 예방은 ‘과로사’에 대한 진단 및 예방과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 노동시간에 대한 양적 규제가 아니라 관계에 대한 질적 규제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 다른 지난한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한 사업장이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과로 자살 피해를 막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유족들이 연대해야 하고, 유관 단체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변화를 만들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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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해 과로자살 에스티유니타스 직장 내 괴롭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