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보다
- 2018/08 제43호
삼성의 노조 파괴를 파헤치다
4월 초 검찰이 삼성그룹 노조 파괴 수사에 착수했다. 4개월이 흘렀다. 노조 와해 범죄를 계획하고 보고한 문건은 그 양이 무척 방대하다고 알려졌다. 범죄에 가담한 자는 삼성그룹 내부 뿐 아니라 주요 공권력 기관에 고구마 줄기처럼 뻗어있다. 노동자들은 삼성공화국의 실체를 낱낱이 확인하고 있다.
삼성그룹 ‘윗선’ 지시, 어디까지 밝힐 수 있을까
2013년 5월 경 삼성전자서비스 동래센터에서 노동조합 설립 분위기가 고조되자 이를 감지한 삼성은 그룹 차원의 대응에 나선다. 삼성전자서비스 인사팀 직원들로 구성된 ‘종합상황실’이 설치되었고 삼성전자 직원들이 파견되었다. 삼성전자는 별도의 ‘신속대응팀’도 꾸렸다. 종합상황실과 신속대응팀은 노동조합 정보를 수집하고 대응 전략을 수립했다.
2013년 7월 신속대응팀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서비스 안정화 마스터플랜>에는 노동조합 설립시 경총을 통한 교섭 지연, 조합원 징계, 파업 돌입 시 지역 반납, 직장 폐쇄와 비상 인력수급 등으로 자연스러운 노동조합 동력 약화를 도모, 불법파업 유도와 센터 폐쇄(기획 폐업)를 포함하는 종합적 노조파괴 전략이 담겨있다.
이 마스터플랜은 그대로 실행되었다. 노동조합 설립 직후부터 조합원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각종 협박과 회유로 탈퇴를 유도한 후 노동조합 탈퇴 실적을 정기적으로 보고하는 이른바 ‘그린(Green)화’ 작업도 이뤄졌다. 이 중 삼성에 ‘실적’으로 보고된 807명은 탈퇴와 퇴사로 우리가 잃은 조합원들의 숫자다.
삼성전자서비스 박상범 대표이사에 대한 구속영장이 두 차례나 기각되면서 윗선 수사의 길목이 막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으나, ‘노조파괴 자문위원’ 송아무개(6월 27일 구속)의 존재는 삼성전자로 올라가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낸 송씨는 2014년 초부터 삼성전자와 자문 계약을 맺고 매주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지원실 목아무개 상무와 삼성전자서비스 종합상황실장 최아무개 전무(5월 15일 구속)를 대상으로 ‘노조 와해 과외’를 열었다고 한다.
검찰이 지난 7월 10일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의 집무실을 압수수색한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이상훈 의장은 앞서 언급한 삼성전자 서초사옥 정기 회의가 열렸던 당시 경영지원실장(사장급)이었다. 경영지원실은 ‘신속대응팀’에 인력을 파견한 부서다. 이상훈은 정현호 사장과 함께 이재용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이기도 하다.
노조 와해는 삼성그룹 차원의 조직적 범죄였다는 것이 상식적 시각이다. 그룹의 무노조 경영 전략을 고수하기 위해 공격적 노조 와해 전략을 펼친 것이다. 그렇다면 무노조 전략을 작동시키며 그룹 전체를 통제해온 부위는 어디인가. 말할 필요도 없이 미래전략실이다.
노동조합은 노조파괴의 피해당사자로서 검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왔다. 그러나 정작 윗선 수사에 있어서는 뚜렷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다. 엄정한 수사를 기대하며 지켜보는 것은 실은 무척 답답하고 무기력한 일이기도 하다. 평범한 노동자들이 접근할 수 없는 정보와 수사력을 가진 검찰이 무거운 책무를 느껴야 하는 이유다.
불법파견 감독 결과 뒤집은 고용노동부
고용노동부 행정개혁위원회는 지난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수시근로감독 결과가 뒤집어진 과정을 조사하여 최근 공개했다. 이 사건은 삼성과 정부의 노골적 정경유착의 표본이다. 주요 등장인물은 정현옥 전 고용노동부 차관을 비롯한 다수의 고위공무원들과 인천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 출신으로 삼성전자에 입사한 황아무개 전무(당시 상무)다.
당초 예정된 감독 기간 마무리 단계에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수시감독총괄팀이 작성한 보고서는 “원청에서 최초 작업지시부터 최종평가에 이르기까지 하청근로자들을 실질적으로 지휘명령하고 있다”고 결론내렸다. 현장 근로감독관들이 조사한 결과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었다. 고용노동부 실무자들은 명분 없는 근로감독기간 연장에 반대하는 의견을 냈다. 그러자 삼성과 고용노동부 고위급 관료들은 짬짜미를 시작한다.
7월 23일 문제의 회의가 열린다. 권영순 당시 노동정책실장 주재로 개최된 이 회의는 수시감독과 별로 관련도 없는 당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이 강력하게 요청했다고 한다. 이 회의에서 고위 공무원들은 감독 기간을 연장하고 감독 방향을 전환하라고 요구했다. 회의 개최를 강하게 주장한 당시 서울청장은 삼성전자 황아무개 전무와 행정고시 동기다.
연장된 감독 기간 동안 정현옥 차관은 “원만한 수습을 위해 삼성 측의 개선안 제시가 필요”하다며 권영순 실장이 고용노동부 출신 삼성전자 핵심인사를 접촉하도록 지시했다. 이 핵심인사가 황아무개 전무다. 고용노동부는 이 기간 동안 삼성과 접촉하여 “출구전략”을 놓고 협상을 벌인다. 공무상 비밀인 감독결과의 핵심내용들을 감독 대상인 삼성에게 넘겨줬다.
그리하여 9월 16일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불법파견은 아니”라는 결과가 발표되었고 그 시점부터 삼성의 표적감사, 지역 쪼개기 등 노조파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고용노동부가 삼성의 노조파괴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다. 수시감독 결과와 삼성의 노조파괴에 위축된 노동자 400여 명이 이 시기에 노동조합을 탈퇴했다. 그리고 최종범 열사가 자결했다.
더 황당한 사실은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가 애초에 공개하기로 의결한 조사결과의 핵심 자료들을 고용노동부가 공개하지 못하도록 막았다는 점이다. 김영주 장관과 현 정부에 ‘왜 감추려 하는지’ 의혹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삼성의 사설경비 노릇을 한 경찰
염호석 열사의 시신 탈취는 누가 봐도 상식 밖의 일이었다. 장례식장에서 구속된 나두식 현 대표지회장의 장례방해죄, 특수공무집행방해죄를 다투는 재판에 제출된 유족 측근의 112 신고 시간대와 내용, 경찰들의 준비 상황과 진술들은 노동조합이 유족의 장례를 방해했다기보다 오히려 삼성과 경찰이 사전에 공모하여 노동조합의 장례를 방해하고 폭력적으로 시신을 탈취해갔음을 보여주고 있다.
경찰청 정보국 간부 김아무개 경정이 삼성으로부터 돈을 받고 노조와해 전략에 개입한 혐의로 구속되면서 이러한 의혹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염호석 열사의 시신이 삼성과 부친의 돈거래 대상이 된 과정에도 이 경찰 간부가 개입되어 있었다.
언론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도 있다. 염호석 열사 투쟁 당시 상경한 조합원들이 30여 명씩 조를 짜서 다닐 때, 정보국 경찰 20여 명이 따라다녔다. 흉기를 들고 다니는 폭력배 집단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경찰의 조직적 개입 또한 그 규모와 윗선이 정확히 밝혀져야 한다.
거대한 권력과 싸우는 노동조합
삼성과 투쟁하는 것은 물론 이 나라를 지배하는 권력의 공고한 카르텔에 도전하는 일이다. 우리가 싸워온 진짜 대상이 누구였는지 그 실체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나날이다.
삼성이 국가권력을 주무른다. 공권력은 이 나라의 평범한 시민을 외면하고 삼성을 호위한다. 노동자들이 제기했던 의혹들은 모두 ‘과장된 음모’가 아니었다.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에서 보듯 가진 자들은 법질서와 국가권력을 사유화하고 합리적인 것처럼 포장된 논리와 언어로 노동자들의 자유와 권리를 박탈했다.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이용해 노동자들이 틀렸고 자본이 맞다고 노골적으로 편을 들었다.
아직도 숨겨진 진실이 얼마나 더 많을지 알 수 없다. 경찰간부와 고용노동부 전·현직 고위공무원 등 범죄에 연루된 인사들의 범위가 방대해 이번 수사에서 어디까지 진실을 밝히고 처벌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광범위한 정경유착이 드러났지만 청와대는 침묵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인도에서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 웃는 얼굴로 악수하며 삼성전자의 인도 공장 투자를 치하했다.
한편 삼성그룹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직접고용, 반올림과의 직업병 문제 합의를 결단한 ‘뉴(NEW) 삼성’의 리더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복귀를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범죄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청산이 먼저다. 노동조합과 사회운동, 그리고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시민들은 ‘원래 삼성이 그렇지’라는 무기력한 태도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며 하나하나의 구체적 진실을 무기로 부여잡고 싸워야 한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앞으로도 고용과 임금, 근로조건 개선을 목표로 하는 노동조합을 넘어 삼성에 맞서는 사회적 세력으로 우뚝 서서 시민들과 함께할 것이다. 민주노조를 건설한 모든 삼성 노동자들은 앞으로도 삼성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싸울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 모두의 삶도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