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특집
  • 2018/08 제43호

21세기 노다지 땅은 북한?

북한 체제 개혁·개방을 전망해보다

  • 이준혁
4월 27일.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USB 하나를 건넸다. USB에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이 담겨있었다. “끊어진 남북 경제의 맥을 다시 연결하여 하나의 시장을 이루”어 “사실상의 경제 통일을 실현”하자는 내용이다.
 
한 달이 지난 5월 31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뉴욕의 빌딩 숲을 보여주며 비핵화 준비가 된다면 북한에 안전과 번영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도 5월 17일 “북한은 체제를 지키면서 부자 나라가 될 수 있다. 한국과 견줄 만한 수준으로 번영하는 것을 지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말들이 국가 지도자들의 입에서 나오고 있다. 이제는 새로운 통일·교류라는 장밋빛 미래가 현실이 될 것처럼 보인다.
 
2015년 공개된 평양 미래과학자거리
 

북한의 시장화는 어디까지?

북한의 시장화는 어느 정도로 진척되었을까.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소유와 분배, 경제정책의 영역에서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와는 다른 특징을 가진다. 소유의 영역은 생산수단(토지, 기업)의 소유를 의미하는데, 사회주의 체제는 이를 국가가 소유하거나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분배의 영역은 우리가 흔히 아는 ‘배급체제’로 운영된다. 모든 재화, 심지어 노동력도 ‘가격’이 매겨지고 거래되는 자본주의 체제와는 다른 형태다. 경제정책의 영역 역시 익히 알려진 ‘계획경제’다.

최근 북한은 이 세 가지 영역에서 큰 변화를 겪고 있다. 1990년대 북한에서는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거대한 식량난이 있었다. 최대 40만 명이 굶어 죽었다는 통계도 있다. 고난의 행군을 거치며 북한의 공식 경제, 즉 배급체제나 국영기업에 의한 고용이 대부분 붕괴했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이 ‘장마당’으로 대표되는 비공식시장이다. 장마당은 자생적으로 생겨난 상품시장이다. 2017년 8월을 기준으로 북한 전역에 약 468개의 장마당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되는데, 2010년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북한 주민의 70퍼센트가 시장 활동을 통해 가계 수입을 확보하고 있다고도 한다.

장마당을 책임지는 것은 국가가 아닌 이른바 ‘돈주’다. 장마당 시대에 새로 태어난 신흥 부자인 이들은 주택건설, 부동산, 식당업 등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교통, 여객 운수, 유통사업 등으로 활동 분야가 확장되고 있다. 

장마당과 돈주는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전통에 비춰보면 아무리 좋게 봐줘도 ‘비공식경제’이며 ‘불법’이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는 이러한 경제활동을 오히려 장려한다. 2014년 기업소법이 개정되어 돈주 등 개인 기업투자가 합법화되었다. 김정은 자신도 “개인이 가지고 있는 돈의 출처를 따지지 말고 투자하게 하며, 이윤도 최대한 보장해주도록 하라”는 교시를 내렸다. 돈주들은 국가 규모 프로젝트에 외화, 건축자재, 연료, 식품의 충성 기부를 강요받는 대신, 사업 활동을 당국으로부터 보호받는다.

북한의 시장화 개혁은 장마당을 제외하고도 전 영역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개별 농업 경작자의 인센티브를 인정하는 2012년의 6.28 조치, 25개 이상 경제개발특구를 지정한 2013년 경제개발구법 등 농업, 산업경영, 외국인투자가 그것을 방증한다. ‘개방 없는 개혁’ 상태에 들어갔다고 봐도 무방하다.
 

중국·베트남의 길을 갈 수 있을까

북한의 시장화 개혁은 성공할 수 있을까. 북한이 과감한 시장 지향적 개혁·개방을 단행할 경우 가장 좋은 참고 사례는 중국과 베트남이다. 이들 나라는 공산당 정권을 유지하면서도 시장경제로 체제를 전환했다. 반면교사로는 소련과 동유럽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이들 나라는 체제 전환 과정에서 공산당 정권이 붕괴했다. 북한으로서는 아무래도 중국, 베트남의 길을 가고자 할 것이다.

중국과 베트남은 시장경제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공산당의 통치를 확고하게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공산당의 통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각급 기업, 기관, 지방정부, 일반 주민의 독자적인 경제활동 자유를 최대한 허용했다. 이를 통해 중앙정부의 개혁 방향에 대한 지지를 끌어낼 수 있었다. 국유기업도 급속하게 사유화하기보다는 상업성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점진적인 관리와 경영 개혁에 집중했다. 90년대 말 일부 사유화되었으나 주요 대형 국유기업, 국유은행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많은 부분에서 소련과 동유럽의 사례와 다르다. 소련, 동유럽은 공산당이 개혁에 미온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국유기업이 급속하게 사유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공산당이 대내적 리더십을 잃어버리고 사회의 혼란은 가중되었다.

중국, 베트남의 성공에는 공산당의 강력한 통치 역량이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최고지도자 등 지도부의 교체가 원활할 때 더욱 과감한 정책 전환이 쉬워진다. 전환된 정책에 대한 당의 지지도 확고해질 수 있다. 양국 모두 대표적인 최고 지도자인 마오쩌둥과 호찌민이 70년대에 사망하면서 둘 다 집단지도체제를 선택했다. 훨씬 유연한 선택과 정책 전환이 가능한 정치체제인 셈이다.

앞서 언급했듯 김정은 등장 이후 북한 당국은 시장화 개혁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부분은 1980~90년대 소련, 동유럽보다는 좋은 조건이라 볼 수 있다. 다만 중국, 베트남만큼 강력한 통치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최고 지도자 1인에 대한 개인숭배가 확고한 탓에 과감한 개혁조치가 실패할 경우 체제가 짊어질 부담이 크다. 이를 두려워하여 개혁조치가 소극적으로 되거나, 개혁이 이뤄지더라도 당 간부의 충성심이 상대적으로 낮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에는 풍부한 노동력이 있..나?

‘북한의 풍부한 저임금 노동력과 남한의 남아도는 자본이 만나 통일 대박으로 가자!’ 남북 경제협력에 대해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이다. 굳이 남한 자본의 장삿속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여러 국가의 사례에 비춰보면 풍부한 노동력은 경제 발전 초기 단계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하지만 북한의 노동력은 생각보다 큰 장점이 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농촌의 남아도는 인력, 즉 농촌 과잉인구가 생각보다 적은 것이 문제다. 1960~70년대 남한이 수출지향적 공업화를 진행할 때 농촌 과잉인구는 큰 역할을 했다. ‘이촌향도’ 현상으로 상징되는 농촌 출신 노동자들이 ‘과잉 공급’되어 초기 상태에 있던 수출 제조업의 저임금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중국의 경우도 개혁·개방 이후 ‘농민공’으로 불리는 농촌 출신 노동자들이 대거 도시로 쏟아졌다. 북한의 경우는 어떠할까. 공식 통계에 따르면 총인구의 61퍼센트가 도시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통일부 북한 정보포털, 2013) 개혁·개방 당시 중국의 18.7퍼센트(위의 논문)나 60년대 남한의 38퍼센트(국토연구원, 2010)에 비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이미 북한이 인구 증가가 둔화하는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는 점도 북한으로서는 불리한 조건이다. 노동가능인구가 줄어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전후 ‘베이비붐’은 197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당시 여성 1인 당 합계 출산율은 4~5명대를 유지했으나 이후 하락하여 2015년에는 1.97에 머물고 있다. 저소득 국가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지표다. 인구 고령화도 진행되어 2004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7퍼센트를 넘어서는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것으로 나타난다. 2030년부터는 인구증가가 멈출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
 

해외 투자와 제재라는 쟁점

북한의 산업 자체가 상당히 붕괴, 후퇴한 것도 불리한 조건이다. 북한은 사회주의 초기부터  급속한 도시화와 중화학 공업화를 추진했다. 대대적인 자본축적과 급격한 이농이 발생해 도시 국유부문의 비중이 많이 증가했다. 전체 산업에서 공업의 비중만 살펴보더라도 전쟁 직후 1953년 30퍼센트에 머물던 것이 1970년에는 65퍼센트까지 급상승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17) 문제는 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다. 90년대 이후 2차 산업 중심의 중진국적 산업구조에서 1차 산업 위주의 전형적인 저소득 개발도상국형 산업구조로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1990년 40퍼센트를 차지했던 공업의 비중이 2000년에는 25퍼센트로 하락했다. (2010년 36퍼센트로 일정 부분 회복하기는 했다.) 이렇게 산업화 수준이 하락한 상황에서 급속한 경제발전을 추구하려면 해외자본 유치에 크게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꾸준한 개혁·개방 조치가 긴 시간 동안 진행되어야 한다. 중국과 베트남의 개혁·개방도 초기에는 큰 의미가 없었다. 대체로 10년 정도 시간이 지나서야 경제적으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개방 이후 가격 및 무역 자유화, 무역제도 및 환율제도의 정비 등 대내외적으로 안정적인 시장경제 여건을 확립하는 것만도 긴 시간이 걸렸다. 이러한 조치를 일관성 있게 꾸준히 추진해야 외국기업들이 안심하고 무역과 투자를 본격화할 수 있다. 북한의 시장경제 여건 확립도 긴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크고, 그 동안 개혁·개방 조치가 꾸준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비핵화 협상이 삐걱댈 경우 해외투자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북한에서 거시경제적 불안정성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개혁·개방 초기 중국은 통화량과 환율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면서 별다른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았다. 반면 베트남은 통화가 과잉 발행되면서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암시장의 환율이 공식 환율의 4배 이상에 달했다. 북한의 경우는 지금도 공식 환율은 1달러당 105원이지만 암시장에서는 8400원에 거래된다. 거의 80배에 달한다. 대북 제재가 강화되면서 거시경제적 불안정성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북한 경협 = 남한의 신성장동력!?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신경제구상’으로 돌아가자. 이는 단순한 북한 개혁·개방 유도 정책은 아니다. 남북 경제협력을 발판으로 “우리 경제의 영토를 북한 및 동북아와 유라시아로 확장하여”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그랜드플랜”이자 또 다른 “국가발전전략”이다. 말로만 보면 ‘4차 산업혁명’에 비견될만한 새로운 경제발전 전략인 것 같다. 박근혜 시절의 ‘통일대박론’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그러나 북한과의 경제 협력이 침체된 한국 경제에 새로운 동력이 되기는 다소 어려워 보인다. 앞의 내용을 정리하면 북한의 개혁·개방이 실제 효과를 내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며, 그 결과도 대박일지 중박일지 확신하기 어렵다. 몇몇 산업에서는 발전이 있을 수 있다. 몇몇 남한의 자본들은 북한과의 경제 교류로 큰 이득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남한 경제 전체로 보면 그 효과는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 경제협력에 들어간 비용과 수익성까지 따진다면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북한 체제의 개혁·개방으로 북한 민중들의 살림살이는 더 나아질 수 있을까. 북한 체제의 미래는 밝은 청사진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일부 해외자본과 돈주만의 돈 잔치를 벌이다 끝날 수도 있다. 북한과의 경제협력에 섣부른 희망을 걸기보다는 신중하게 미래를 생각해봐야 하는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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