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18/08 제43호
불안불안 한반도 비핵화
될 듯 말 듯 오락가락한다.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비핵화 협상 이야기다. 7월 6일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이 평양을 방문했다. 북미 정상회담 후속 조치를 위해서였다. 비핵화를 위한 북미 실행 그룹을 구성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폼페이오는 “거의 모든 핵심 이슈에서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면담할 것으로 예상했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때맞춰 백두산 인근 감자가루 공장을 시찰하러 떠났다. 미국 언론은 “김정은이 폼페이오 대신 감자를 선택했다”며 조롱했다. 심상치 않았던 기류는 폼페이오가 북한을 떠난 직후 폭발했다. 북한 외무성의 담화문은 원색적 비난으로 가득했다. “싱가포르 수뇌 회담의 정신에 배치되게 CVID요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 나왔다.”
CVID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를 말하는 것으로서 예전부터 미국의 요구였다. 북한은 꾸준히 반발해왔다. 그 때문에 폼페이오는 방북 전부터 CVID보다 FFVD, 즉 최종적이고 완전하며 검증된 비핵화(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를 추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FFVD는 ‘되돌릴 수 없다’는 표현이 빠진 점에서 CVID보다 완화된 요구였다.
결국 미국은 핵사찰 리스트와 비핵화 시간표를 요구했고, 북한은 종전 선언을 우선적으로 요구해서 평행선을 그렸다고 한다. 북미 협상의 험로가 전개되고 있는 양상이다.
미국의 불안
북한이 지적하는 북미 정상회담의 ‘정신’이란 게 대체 무엇일까. 정상회담 결과를 다시 곱씹을 필요가 있다. 비핵화와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단지 ‘상호 신뢰 형성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추진’하고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북한이 노력’한다는 문구가 담겨있을 뿐이다. 정상회담 이전까지 수차례 고위급 회담이 있었으나 결국 비핵화 조치와 방식을 둘러싼 이견이 조율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정상회담을 한 것 자체는 미국으로서 놀라운 일은 아니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기도 전인 2016년 9월, 미국 외교협회의 정책 권고가 있었다. 미국 외교협회는 공화당, 민주당을 모두 아우르는 초당파적 싱크탱크다. 미국 외교협회의 정책 권고는 대체로 미국 정계에서 합의된 내용이라 볼 수 있다. 그 정책 권고가 북한과 협상을 재개하려면 세 가지 초기조건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첫째, 모든 참가국은 2005년 9.19 공동성명의 원칙을 재확인해야 한다. 2005년 6자회담에서 발표된 9.19 공동성명은 북한이 모든 핵무기를 파기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 국제원자력기구(IAEA)로 복귀하여 국제 핵 사찰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반대급부로는 북한에 대한 핵무기 공격 금지, 한국의 에너지 지원 등이 거론되었다. 둘째, 협상 각 단계에서 핵 이슈에 관해 일정한 진전을 달성해야 한다. 셋째, 북한의 핵 실험과 (미국을 타격할 수 있을 만큼 사거리와 탑재 능력이 큰) 미사일 실험이 유예되어야 한다. 협상이 진행되는 한, 미국과 한국의 대북 식량 지원 및 한미 군사훈련 축소를 고려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지금 상황을 보자.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을 유예했다.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했고 미사일 엔진 및 발사 실험장을 철거했다. 미국은 8월 예정되었던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을 중단했다. 북한의 실험 유예와 군사훈련의 축소라는 현재 상황은 이 정책 권고의 세 번째 조건을 어느 정도 만족시키고 있다.
문제는 미국의 처지에서 볼 때, 지금의 협상은 ‘각 단계에서 핵 이슈에 관해 일관된 진전을 달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미국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미국 내의 불안 섞인 목소리는 여기에서 기인한다. 이들이 보기에 북한은 비핵화와 관련해서는 검증을 거부한 채 명시적인 비핵화 일정도 잡지 않으려 한다. 북미 정상회담은 단지 김정은이 국제무대로 나서기 위해 트럼프를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난도 거세다. 이미 북한과의 협상 자체가 쓸모없어졌다는 회의적 시각도 커지고 있다.
트럼프의 불안
트럼프는 미국 내 비판적인 시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애당초 트럼프는 본인의 첫 임기 내인 2020년까지 비핵화를 완성하거나 적어도 이전 수준으로 되돌릴 수 없을 때까지 진전시키길 원했다. 자신의 정치적 성과로 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부의 비판이 거세지자 “북한의 비핵화는 긴 과정”이며 “(비핵화를) 서두르면 스토브에서 칠면조를 서둘러 꺼내는 것과 같다. 서두르면 안 된다”며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쳤다.
트럼프로서도 쉽게 성과를 내기 어려운 문제임은 분명하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10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고도화되었기 때문이다. 보유 핵탄두 수만 해도 10~20개에서 많게는 60개까지 예측된다. 핵·미사일 관련 건물과 시설물이 북한 전역에 수천 개에 달할 것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는 지금까지 핵을 개발하다가 비핵화 절차를 밟은 어떠한 나라들(리비아, 시리아, 이라크, 이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비교해보아도 개발 정도와 규모 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정치적, 기술적으로 매우 어려운 문제다.
미국 민주당 등이 주도하는 트럼프의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한 비판이 단순한 정치적 공세가 아니라는 점은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2008년 이후 경제위기가 계속되자 미국 민주당은 미국 주도의 아시아·태평양 경제와 이를 뒷받침하는 군사체제를 확고히 하고자 했다. 오바마가 제창한 ‘아시아로의 회귀’다. 이를 위해 오바마는 아시아에서 미군과 동맹국의 군사 능력을 확대하는 것에 주력했다. 북한과의 협상은 ‘전략적 인내’를 표방하며 거의 무시로 일관했다.
트럼프는 이 전략을 ‘미국 우선주의’로 전면 수정했다. 군사동맹도 비용문제를 앞세우면서 타 국가에 부담을 전가하려 한다. 한미 방위비 협상에서 전략자산(폭격기, 항공모함 등) 전개 비용이나 사드 기지 비용을 청구하고, 주한 미군을 축소할 수 있다고 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국에게도 국방비를 올리라고 다그치고 있다. 군사동맹 강화 논리보다 비용 최소화가 앞서는 모양새다. 북미협상을 둘러싼 미국 내의 갈등은 동북아시아, 나아가 세계에서 미국의 안보전략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상황은 최근 갈수록 거세지는 ‘러시아 스캔들’(대선 당시 트럼프 후보 진영이 러시아 당국과 공모했다는 혐의) 의혹 등이 맞물려 트럼프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북한의 불안
1994년 북핵 문제는 전쟁 위기로 치달았다. 꼭 2년 전인 1992년 가을, 북한의 핵 시설 사찰을 두고 북미 간의 충돌이 거세졌다. 당시 북한은 핵사찰에 협조적이었으나 미국과 IAEA가 영변에 미신고 시설 2개가 있다며 특별 사찰을 요구했다. 결국 1994년 10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중재 아래 ‘제네바 합의’가 체결되었다. 북한의 핵 시설 사찰과 관계 정상화, 에너지 지원 등을 교환하는 것이 골자였다.
북핵 협상의 기본적인 틀은 이때 만들어졌다. 비핵화 조치와 일정한 보상의 교환. 틀이 깨지는 양상도 비슷했다. 지금과 다르게 합의를 반대한 이들이 공화당이라는 점만 다르다. 공화당은 정권을 잡자마자 제네바 합의를 깨트리려는 속내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 부시 정부는 2002년 북한이 비밀 핵 프로그램을 숨기고 있다며 제네바 합의 이행을 거부했다.
2003년부터 6자회담이 개시되었다. 다시 대화 국면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6자회담은 북미 양자 간 협상이었던 제네바 합의에 규정된 미국의 부담을 분산시키는 성격이 강했다. 앞서 언급한 9.19 공동성명에서 에너지 지원의 책임이 남한으로 넘어간 것이 대표적이다.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해야 한다는 외교적 부담도 중국을 참여시킴으로써 일정 덜어내고자 했다. 미국으로서는 부담을 던 것이지만 약속 이행의 책임성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9.19 공동성명의 운명도 제네바 합의와 비슷했다. 2008년 6월 북한은 핵 신고서를 제출하고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했다. 역사에 남을만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 6자회담에서 검증의정서 채택이 실패하면서 모든 것이 어그러졌다. 이때도 북한이 신고하지 않은 시설이 있다며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미국이다. 2009년 5월, 이에 반발하며 북한이 2차 핵실험을 단행하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화는 중단됐다.
다시 지금으로 돌아와 보자. 북한의 시각에서 보면 한미 군사훈련이 중단된 것 외에 어떠한 ‘보상’도 주어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북한은 미국과 남한을 비난한다. 종전 선언과 같은 북한의 안보 불안 해소 방안이나 제재 해제가 제시되지 않는 가운데 급속한 비핵화 방안만 요구하지 말라는 불편한 심기의 표현이다.
김정은 정권은 지난 4월 노동당 중앙위에서 기존의 핵·경제 병진노선을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집중하는 노선으로 변경했다. 핵·미사일 능력을 지렛대로 한 비핵화 협상을 통해 체제의 안전 보장과 경제적 이득을 최대한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2천년대 이후 북한 내부에서 아래로부터의 시장화가 진전됨에 따라 경제발전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북제재로 인해 작년 북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년보다 3.5퍼센트 감소했고, 이는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7년 이래 최저치였다는 한국은행의 보고도 있었다. 물론 세 차례에 걸친 북중 정상회담을 거치며 중국의 제재가 느슨해지기도 했지만, 한미 당국은 제재 하의 협상을 고수하고 있고 유엔안보리의 제재는 변한 것이 없다.
4.27 판문점회담, 6.12 북미 정상회담, 북중 정상회담 등을 통해 북한은 체제 안전 보장과 비핵화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고, 북한 정권 수립 70년을 맞은 만큼 올해 안에 성과를 내고자 할 것이다. 그래서 협상 교착상태를 풀기 위해 미사일 엔진시험장과 발사장을 폐기하며, 이에 상응하는 조치(종전선언 요구 등)를 강요하고 있다.
불안정한 협상 장기화
북미 정상회담까지만 해도 다수가 북한의 선제적 비핵화 조치와 이에 대한 미국의 후속 조치, 남북관계 개선이 선순환 하는 장밋빛 전망을 그렸다. 그러나 과거 북핵을 둘러싼 협상이 미국의 트집잡기와 이에 대한 북한의 반발이란 악순환을 그려왔고, 북의 핵·미사일 능력이 고도화되어 있어 해결에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이며, 북이 요구하는 단계적 비핵화 조치에 따른 동시적 보상과 미국의 신속하고 완전한 비핵화 요구가 지속해서 갈등을 빚으리라는 것 역시 우려로 제기되었다.
미국 내 강경파들은 8월 말까지 비핵화 시간표, 구체적 비핵화 조치에 관한 진전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미 연합훈련을 재개하는 등 강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미국 정부를 대신해, 언제든 대북 강경노선으로 회귀할 수 있다며 북한을 압박하는 것이다. 협상이 불안정하게 장기화되는 것에 대해서도 다양한 불만이 나올 것이다.
엎치락뒤치락하는 협상의 추이를 중심에 두고 평화운동을 모색할 수는 없다. 당국 간 협상의 주고받기식 샅바싸움에 평화운동 전체가 매몰될 수 있다. 이런 때일수록 평화운동의 일관된 원칙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