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칼럼
  • 2018/07 제42호

지금 여기 난민이 살고 있다

보다 평등한 한국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 박진우
며칠 전, 밤늦게 제주도에 있는 활동가로부터 연락이 왔다. 제주도에 예멘 난민들이 대거 들어왔는데 제대로 된 숙소나 일자리 없이 거의 방치되어 있다는 이야기였다. 중동국가인 예멘은 지난 2013년부터 계속된 내전으로 인해서 전체 인구의 3분의 1인 약 25만 명의 사람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한다. 그 중 500여 명의 난민들이 이역만리 제주도까지 찾아온 것이다. 
 

당국의 대응은 허둥지둥 …

이렇게 갑자기 많은 수의 예멘 난민들이 제주도로 찾아오자 법무부는 부랴부랴 “무사증을 이용하여 입국할 개연성이 상존”한다는 이유로 지난 6월 1일 예멘을 무사증 입국불허 국가로 추가하였다. 그 뒤 “난민 심사기간 동안의 생계·주거 문제에 대해 국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라”라는 국가인권위 요구를 반영하여, 예외적으로 6개월 유예를 적용하지 않고 바로 취업이 가능하도록 했다.

현재 제주출입국에서는 1차 어업 분야, 2차 요식업 분야로 취업설명회를 열고 일자리가 부족한 양식업 등에 일부 난민들이 취업하여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언어 소통이 어려운 문제, 취업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은 문제, 노동시간에 대한 문제 등 현장에서 여러 문제점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어서 당분간은 혼선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난민에 대한 몇가지 오해

이런 상황에서 일부 혐오세력들은 “난민법은 신청과 동시에 과도한 혜택을 제공해 불법난민사태를 조장하고 있다.”, “지금 막지 않으면 제주도는 테러에 시달리게 된다.”, “무사증제도가 불법난민에 악용되고 있다.”, “예멘이 전쟁의 상황이 아님에도 난민신청 한 것은 국제난민법의 뜻을 무시한 ‘탈법’이다.” 등 난민에 대한 왜곡되고 과장된 사실을 유포하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과 국민청원 등을 진행하여 4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참여하기도 하였다. ‘난민=이슬람=테러=범죄’라는 논리를 계속해서 확산하면서 난민신청자들에 대한 혐오를 계속 드러내고 있다. 급기야 6월 30일 시청 앞 광장에서 예맨난민반대집회를 열겠다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과연 한국 사회에서 난민들이 과도한 혜택을 받고 있을까? 법무부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까지 누적 3만 8169건의 난민신청이 접수되었지만 이중 최종적으로 난민 인정을 받은 숫자는 단 2퍼센트인 825명에 불과하다. 그리고 난민신청자의 전체 3퍼센트에만 생계비를 겨우 지급하고 있다. 120억을 들여 만든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조차도 적정인원이 82명에 불과하고 머물 수 있는 기간도 6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이주노동자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인천공항이나 외국인보호소등에서 난민 신청을 하는 이주노동자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전 세계가 알고 있는 시리아 출신의 난민들도 8개월 동안 난민인정을 받지 못해서 인천공항에서 입국도 하지 못한 채 송환 대기실에 구금되어 있었다. 매일 치킨버거와 콜라만으로 식사를 대체했고 24시간 방에 불이 켜져있어 제대로 된 수면도 취할 수 없었다. 외국인보호소 안에 구금되어 있는 이주노동자가 난민 신청을 할 경우 난민 인정 절차 종료 시까지 강제퇴거가 되지는 않지만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장기구금을 견뎌야만 한다. 실제로 어떤 이주노동자는 3년 9개월 동안 화성외국인보호소 안에 수용되어 끝내 난민 인정을 받았지만 장기구금의 스트레스로 치아가 거의 손상되고 자살 충동을 숱하게 겪는 등 신체적, 정신적 손해는 전혀 보상을 받을 수가 없었다. 2017년에는 정권 교체 시기에 난민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며 3년 이상 장기 구금되어 있던 난민 신청자들을 오래된 순서대로 강제 송환하기도 했다. 이렇듯 한국사회에서 난민들은 그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환영받지 못하고 오히려 강제 송환과 인권 탄압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난민들과 함께 하는 사람들

생존과 안전을 찾아온 난민에 대한 탄압과 혐오를 멈춰야 한다며 여러 운동 세력들이 입장과 카드뉴스 등을 발표하였다. 민주노총에서는 지난 6월 20일 세계 난민의 날을 맞이하여 예멘에서 왜 난민들이 도망칠 수밖에 없었는지, 한국사회의 난민문제에 대한 통계 등을 알기 쉽게 카드뉴스로 만들었다. 같은 날 전국의 194개 단체와 8개의 연대체가 공동으로 <난민제도 운영하며 차별 양산하고 혐오에 동조하는 정부 규탄한다!>는 제목으로 성명과 청와대 앞 기자회견을 진행하였다. 특히 이 기자회견에는 아랍권 출신 국가에서 온 이주민들도 직접 참여하여 모든 무슬림이 테러리스트가 아니고 오히려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며 난민에 대한 혐오를 멈춰달라는 발언을 하였다. 이 밖에도 제주 현지에서 본인의 집을 난민쉼터로 내놓거나 제주교구 이주사목센터를 통해 필수품을 지원하는 등 난민을 우리의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함께하고자 하는 움직임들도 만들어지고 있다. 제주지역 단체들과 난민지원 단체들이 함께 “제주 예멘난민대책위”를 꾸려 상담, 의료지원, 한국어교실 운영등을 시작하고 있다. 
 
 

쿠르디를, 한국전쟁 난민을 기억하자

 2015년 터키 해변으로 밀려온 3살짜리 시리아 꼬마의 시신 사진이 SNS를 통해 전 세계로 급속하게 퍼져나간 적이 있다. 시리아 북부 출신의 에이란 쿠르디라는 소년이 내전을 피해 온 가족과 함께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바다를 건넜지만 보트가 뒤집히는 바람에 다섯 살 형과 어머니와 함께 세상을 떠난 것이다. 당시 한국에도 소식이 전해지며 많은 사람들이 애도를 표했다. 그 이후 3년이 흘렀다. 제주도에 전쟁을 피해 500여 명의 예멘난민들이 들어왔다. 3년 전에 먼 나라에서 일어난 슬픈 사건이라고 생각했던 난민 문제를 이제는 우리 일자리를 빼앗고,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위험요소라고 받아들이게 된 것은 아이러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달리해보면 난민은 아주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반세기만 거슬러 올라가보면 한국전쟁으로 인한 난민들이 넘쳐났었다.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서 일제강점기 때 상해에 임시정부를 세우고 일본의 박해를 피해 망명했던 모든 조선인들 역시 ‘정치 난민’이었다. 올해 70주년을 맞는 제주 4.3사건 당시에 만 명에 달하는 제주인들이 목숨을 구하기 위해 현해탄을 건너 일본 땅에 도달했는데 이들 역시 난민이었다. 시리아(1200만), 아프가니스탄(470만), 이라크(420만), 소말리아(260만) 등 전쟁의 피해자로 도망쳐온 난민들에게 오히려 테러리스트라는 혐의를 덧씌우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인 것인가? 이주민 200만 시대, 난민의 인권 보장과 함께 평등한 한국사회로 나아가자는 정당한 목소리에 힘을 함께 실어주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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