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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 제42호

태평양을 건넌 공동투쟁, 그리고 인연

호주운수노동조합을 만나다, 첫번째 이야기

  • 임월산
지난 5월 22~25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김정한 본부장과 심동진 사무국장, 통역을 도와준 김진영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국장과 함께 호주운수노동조합(Transport Workers Union of Australia)의 정기 중앙위원회(National Council)에 참가했다. 호주운수노조는 9만 명의 도로 화물, 공항·항공과 버스 노동자가 속해 있는 호주 민간운수산업 대표 산별조직으로 공공운수노조 중 민간운수단위들과 유사한 부문을 조직대상으로 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특히 화물연대본부(이하 화물연대)와 교류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번 방문은 그 일환으로 진행됐다.  이번 글에서는 주로 화물연대와 호주운수노조의 교류와 연대의 의미를 다루고, 다음 호에 실릴 2부에서는 중앙위의 구체적인 내용과 시사점을 검토하고자 한다.
 
왼쪽에서 첫 번째가 필자.

 

호주운수노조와 화물연대의 첫 만남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지만 국제연대관계를 맺는 노동조합들을 주요 의결기구 회의에 초청하는 것이 국제노동운동에서는 일반적인 관행이다. 서로의 조직문화와 중점 사업을 더 깊이 이해하며 연대관계를 확인하고 강화하는 기회로 쓰인다. 그러나 이번 호주운수노조 중앙위원회 참석은 상징적인 수준에서 진행되는 일반적 연대방문을 넘어선 의미와 더 구체적인 목적이 있었다. 한국과 호주 양국 화물노동자들의 투쟁이 교차되는 지점에서의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화물연대와 호주운수노조는 5년의 짧은 인연이 있다. 2013년에 우리는 그 해에 호주 의회에서 통과된 ‘안전운임법’에 대해 알게 되었고, 구체적인 법 내용과 법안을 쟁취하기 위한 호주운수노조의 투쟁 과정을 배우기 위해 처음으로 호주를 방문했다. 그때 우리는 800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서로 모르는 채 같은 요구를 걸고 같은 투쟁을 매우 오래 전부터 병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주운수노조가 20년간의 노력으로 쟁취한 안전운임법과 화물연대가 2003년부터 요구해온 표준운임제는 화물시장 문제점에 대한 같은 인식에 기반하며, 기본적으로 같은 내용의 제도이기 때문이다. 
 

도로운송시간과 안전운임 

안전운임 제도(또는 표준운임제)와 투쟁은 신자유주의에 따른 도로운송 산업의 분절화와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에 대응하는 전략이다.
 
1970~80년대 신자유주의 경제개편의 일환으로 세계 화물운송산업이 재편되고 복잡한 공급사슬로 분절화되었다. 나라마다 구체적인 내용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기본 구조는 세계적으로 동일하다. 도로운송 공급사슬은 제품을 판매 또는 구매하는 대기업 화주, 화주의 물량을 관리하는 대형 물류회사나 주선업체, 이 업체와 계약하는 도로운송회사와 운송사의 하청을 받는 소규모 운송회사 또는 특수고용 화물노동자로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공급사슬 정점에 있는 화주는 운임과 배차, 노선을 통제하는 데 이 모든 것은 효율성과 비용 절감의 논리에 따라 결정한다. 낮은 운임과 비합리적인 스케줄의 결과로 화물노동자는 생계 위협에 처하게 되고 장시간 운행과 피로 운전, 과속, 과적을 비롯한 여러 위험한 운전 행위를 하도록 강요받는다. 이렇게 화물노동자와 모든 도로 이용자들은 심각한 위험에 노출되지만 시장의 다단계 하청 구조 때문에 화주나 대기업 물류 자본은 그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안전운임(또는 표준운임제)은 화물노동자가 받는 운임을 생계를 보장할 수 있는 수준으로 표준화하고 화주에게 지급 의무를 부여함으로써 화물노동자에게 강요되는 ‘바닥을 향한 경쟁’을 멈출 수 있는 제도다. 특히 호주에서는 운임을 결정하고, 공급사슬 내 위반 사례를 감시하는 데에 노동조합의 역할이 법적으로 보장된다는 점도 중요한 요소다. 
 

 

세계 어디에서도 없는 제도?  

호주운수노조는 1970년대 말부터 안전운임제의 주요 요소들을 주 차원에서 점진적으로 쟁취했고 1990~200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전국 차원의 법을 설계하고, 이를 도입하기 위한 장기 투쟁 계획을 수립했다. 한국의 경우 2008년 화물연대 파업의 성과로 이명박 정부가 표준운임제 도입을 약속했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주요 근거는 운임 표준화가 가격 담합이며, 세계 어떠한 다른 나라에서도 찾을 수 없는 제도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2012년 호주 안전운임법의 통과로 ‘안전운임심사위원회’라 불리던 운임결정기구가 설립되었고, 표준운임을 정하기 위한 사전조사에 착수했다. 한국 정부의 논리가 무너졌다.  
 

연대와 교류 과정 

2013년 호주운수노조를 처음 방문한 후에 호주 안전운임 사례는 한국에 꽤 많이 알려졌다. 우리는 호주 법안과 하위 규정, 호주 사용자단체가 제작한 설명 책자와 노조의 내부자료와 홍보물 등 꽤 많은 문서를 번역했다. 이 작업을 통해 우리는 표준운임제의 구체적인 설계를 위한 많은 시사점을 얻은 것은 물론이고 화물차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운임 인상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매해 1200명이 화물차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호주 방문 후에 화물연대는 ‘국민에게 안전을, 화물노동자에게 권리를’이라는 슬로건을 쓰기 시작했다. 국토부까지도 호주 제도를 공부하게 되었다. 물론 한국에서의 도입을 막는 것이 목표였겠지만. 
 
자료 조사 뿐 아니라 호주운수노조와의 교류를 지속했다. 사실 양방의 교류라기보다 일방적인 연대에 더 가까웠다. 호주운수노조는 안전운임 투쟁에 승리한 조직이었고, 우리는 아직 정부의 거센 반대와 탄압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2014~18년 사이에 호주운수노조 임원들이 최소 연 1회 한국을 방문해 화물연대 집회에서 연대연설을 하고, 국내 언론과 국회의원을 만나며, 화물연대 지도부와 전략논의를 진행했다. 한국 노동운동이 탄압에 처할 때마다 호주운수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이 시드니에 있는 한국 영사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화물연대 풀무원 투쟁과 2015년 총궐기의 여파로 화물연대와 공공운수노조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하던 2016년 한 해에만 4번이나 영사관을 찾아간 것이다. 
 
호주운수노조의 투쟁 사례로부터 우리는 장기적인 시야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고, 긴 투쟁으로 지친 조합원들에게 희망적인 비전을 제시할 수 있었다.   
 
 

한국의 안전운임법 통과 

2016년 촛불항쟁 직전에 화물연대가 또다시 파업에 나섰다. 직접적인 이유는 박근혜 정부의 화물운송시장 구조개악 저지였지만 표준운임제는 지난 15년간의 투쟁에서 변함없는 핵심 요구였다. 정부의 계획적인 탄압과 노조의 불충분한 준비로 2016년 파업은 과거 화물연대 파업만큼 파급력을 갖지 못했지만 화물운송시장의 구조적인 문제점과 규제의 필요성을 사회적으로 상기시키는 계기였다. 촛불집회가 이어지면서 정부와 여당은 구조개악 동력을 잃었고,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는 표준운임제 도입을 핵심 국정과제로 선정했다. 취임 후 화물연대와의 교섭을 통해 새로운 표준운임제 법안을 설계했고, 이 과정에서 표준운임제는 안전운임제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 정부가 운임과 사고발생률의 관련성을 인정한 것이다.  
 
지난 3월 30일, 제한적인 표준운임제도가 ‘화물자동차 안전운임법’이라는 이름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운임을 결정하는 안전운임위원회에 화물연대의 참가가 보장되고 운임을 위반한 화주는 처벌받도록 돼 있어 호주 안전운임모델의 중요한 요소들이 대부분 포함돼 있다. 법안의 통과는 15년 간 지속된 화물연대 투쟁의 성과다. 그 과정에 국제연대도 꽤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제한적인 안전운임 

아쉽게도 통과된 안전운임제는 매우 한계적이다. 보수세력의 거센 반대로 통과된 법안은 애초 화물연대가 제안한 제도에서 크게 후퇴했다. 먼저 표준운임제는 수출입 컨테이너를 운반하는 트레일러와 BCT 차량의 화물노동자들에게만 적용된다. 전체 화물차 약 45만 대 중 2만7천 대 정도로 약 6퍼센트에 불과하다. 둘째, 시행기간은 2020~22년 3년으로 한정된다. 제도가 실행되기 전부터 화물연대는 법개정을 위한 새로운 투쟁에 돌입해야 한다는 뜻이다.
 
법안 통과 직후 우리는 ‘이것이 승리냐 패배냐’ 헷갈리기도 했고 많이 실망했다. 그러나 호주운수노조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중앙위원회 내내 호주운수노조 지도부는 ‘한국의 승리’를 강조했다. 호주운수노조 사무부총장은 정부와 사회로부터 안전과 운임의 관계, 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인정을 얻은 것만으로도 발을 문에 들여놓은 상태(“You’ve got your foot in the door!”)라고 말했다. 한 주에서 시작하여 20년 동안 안전운임제도를 점진적으로 확대시킨 입장에서 단계적 성과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사례를 발표하고 있는 필자.

 

패배를 딛고 함께 전진하자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호주 동지들이 우리의 안전운임법 통과를 환영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2년 전에 우리보다 훨씬 더 큰 장애물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맬컴 턴불 총리가 주도하는 자유당-국민당 연정은 2013년 집권 이후 안전운임법 폐기를 위한 공세에 나섰다. 2012년에 도입된 제도의 효과는 물론이고 운임과 안전의 관련성과 화물운송시장 규제 필요성의 근거를 부정하는 연구를 두 차례 발주했고, 운송자본과 함께 특수고용 화물노동자를 위한 안전운임은 운송계약 체결을 어렵게 만들어서 파산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대대적인 홍보 사업을 전개했다. 정부와 자본의 논리에 속은 일부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반대 캠페인에 적극 참가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2016년 4월 16일 많은 사회적 논란 속에 ‘안전운임법 철회 법안’이 기습 통과되었고, 20년 투쟁의 성과인 안전운임심사위원회는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이제 우리 차례였다. 호주를 방문해 그동안 호주운수노조로부터 받은 연대를 돌려주는 것이다. ‘불필요한 시장 개입’ 운운하는 호주 정부에 안전을 위해 규제할 필요성을 인정한 한국 정부의 사례를 확실히 말해주고, 2016년의 패배를 극복하고 2019년의 안전운임제 재쟁취 투쟁을 결의하는 호주운수노조 간부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주어야 했다. 중앙위원회에서 진행한 화물연대의 투쟁 사례 발표에서 우리가 받은 기립박수만으로 판단하면 이 역할에 성공한 것 같다. 
 

공동의 목표, 세계적인 투쟁

앞으로 1~2년 동안 안전운임제의 안착과 확대를 위한 투쟁 과정에서 호주운수노조와 화물연대의 교류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호의를 교환하는 수준이 아니라 서로에게 실제 이득이 되는, 공동 목표로 향하는 공동의 투쟁을 만들어가는 일이 되어야 한다. 호주와 한국은 물론, 세계 화물운송 공급사슬의 맨 아래 단계에서 낮은 운임과 위험한 근로조건에 시달리고 있는 모든 화물노동자에게 의미 있는 투쟁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호주에서 귀국한 후 불과 몇 주 사이에 브라질과 이란, 중국에서 낮은 운임에 반발해 물류를 마비시키는 화물노동자의 자발적인 파업 투쟁이 발생했다. 브라질에서는 표준운임제 도입이 파업 사태에 대한 대책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화물연대와 호주운수노조의 연대가 이러한 투쟁들을 모아내는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이런 목표로 중앙위원회 마지막 날 두 조직은 안전운임 투쟁, 화주의 책임을 위한 세계적 투쟁 강화에 협력할 것에 합의했다. 그 구체적인 계획과 운수노동자의 단결을 위한 함의는 2부에 담도록 하겠다. ●
 
 
덧붙이는 말

다음 호에 2부 연재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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