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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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7 제42호

잠들지 않는 인천공항에는 꼼수가 판을 친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앞둔 혼란

  • 이준혁
지난 2월 28일 국회는 법정 최대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개정안에 따라 1주 근로시간은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고, 연장근로는 12시간으로 제한된다. 상시 300인 이상의 사업장은 올해 7월 1일부터 개정된 근로기준법을 시행해야 한다.

그 7월 1일이 눈앞에 다가왔다. 벌써부터 사장님들의 온갖 꼼수가 판을 친다. 300인 이상 사업장에는 임금은 줄이고 노동 강도는 올리는 등의 일이 비일비재하다. 실제로는 일을 하고 있지만 대기·휴게로 계산되는 시간을 늘리기도 한다. 해당 조항이 300인 이하 사업장에서는 2020년부터 적용된다는 점을 악용해 멀쩡한 회사를 쪼개 사업장 규모를 억지로 축소하기도 한다. 법 개정이 발표된 때부터 이미 예고된 수법이었지만, 이제는 현실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관문, 인천국제공항에서도 비슷한 꼼수가 연출되고 있다.
 
 

인천공항의 장시간노동, 원래부터 불법이었다

공항은 업무 특성상 24시간 운영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교대근무로 밤을 새며 일하고 있다. 보안검색 노동자들을 포함, 상당수가 3조 2교대제로 일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인천공항에서 일하는 간접고용 노동자는 모두 6486명이다. 이 중 3542명(54.6퍼센트)이 3조 2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

3조 2교대는 이틀마다 주간, 야간, 비번이 반복된다. 주간일 때는 9시 출근 6시 퇴근으로 8시간, 야간일 때는 6시 출근 다음 날 아침 9시 퇴근으로 11시간을 일하도록 되어있다. 여기서 계산이 복잡해진다. 어떤 주는 38시간을 일하다가 어떤 주는 49시간을 일하기도 한다. 한 주는 7일인데 근무 테이블은 6일 단위이기 때문에, 46시간, 49시간, 38시간이라는 3주의 사이클이 나온다.

들쭉날쭉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주 52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연장근무를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짧게는 4시간, 길게는 7시간 연장근무를 하게 되면 가볍게 주 52시간을 넘기게 된다. 연장근무는 대부분 휴가, 병가 등으로 급작스레 인원이 부족한 곳에 대체근무로 투입되는 경우다. 예비인력이 없어 휴무자들이 대체근무에 들어간다. 공항 운영상 필수인력을 뺄 수가 없기에 대체근무는 거의 상시적이다. 때문에 주 52시간을 초과해서 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쉬운 길 놔두고 꼼수를 택한 인천공항

이대로 가면 개정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게 될 위험성이 높다. 대안은 있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인원을 충원하면 된다. 공공운수노조가 2017년 10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인천공항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근무형태를 인천공항공사 정규직과 같은 4조 2교대로 개편할 경우, 1181~1323명 정도를 추가로 채용해야 한다. 여기에는 연간 377~436억 원 정도의 예산이 소요된다. 억 소리 나는가? 하지만 인천공항공사는 연 1조 원이 넘는 수익을 거두는 회사다. 위에서 제시한 인원충원비용은 2016년 당기순이익의 3~4퍼센트에 불과하다. 생각보다 손쉬운 해법이다.

하지만 인천공항은 이 쉬운 길을 내버리고 ‘꼼수’를 선택했다. 안 그래도 복잡한 근무형태를 더 복잡하게 꼬아 노동 강도를 강화했다. 노동조합이 없는 곳에서는 더 악질적인 방안이 시행되고 있다. 출국할 때 우리 모두가 한 번씩 들르는 그곳, 승객 보안검색 분야이다. 보안검색 하청업체에는 12조 8교대제가 도입되었다. 표만 들여다봐도 눈이 복잡해진다. 핵심은 한 조당 인원을 줄이고 줄어든 인원으로 다른 조를 편성, 예비인력으로 돌리는 것이다. 이 제도는 이미 5월 1일부터 시행되어 1900명의 보안검색 노동자들에게 적용되고 있다.
 
 

바뀐 교대제의 문제점

인천공항지역지부가 나섰다.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부터 알아야했다. 노동자들에게 설문조사를 시작했다. 예상보다 문제는 더 심각했다. 대부분이 개편 이전보다 노동 강도가 훨씬 강해졌다고 호소했다. 원치 않는 야간 근무도 문제가 되었다. 이전 제도 하에서는 희망자에 한해 야간근무를 했는데, 이제는 의무가 되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하는 올데이(All-day) 근무도 생겨나 하루 노동시간이 너무 길어지는 일도 빈번해졌다. 근무일 8일 중 4일 정도가 올데이 근무다.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이 매일 달라지는 문제도 발생했다.

더 심각한 일도 있었다. 노동자들의 동의 없이 교대제 개편을 강행한 것이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취업규칙이 불이익 변경되면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그것도 비밀투표 같은 집단적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하청업체 관리자들이 개별 노동자들의 서명만 받았을 뿐이다.

인천공항지역지부는 즉각 해당 하청업체들을 고발했다. 또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원래 취지인 노동시간 단축을 실제로 이루기 위해서는 부족한 인원을 충원해야 한다는 요구안을 제시했다. 임금이 깎이지 않으면서도 공항공사 정규직과 동일한 교대제도 요구했다. 노조는 이를 기반으로 보안검색 노동자들의 고충을 함께 해결하고 노동조합 가입을 독려하고 있다. 
 
 

노동조합과 함께 바꾸자

인천공항 보안검색 노동자들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300인 이상 사업장에 주 52시간 제도가 적용되는 7월에 앞서 ‘선빵’을 날린 것이기 때문이다. 주 52시간이 중소기업에까지 단계적으로 시행되는 2020년, 2021년에는 전국적으로 큰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 인천공항 보안검색에서 그랬던 것처럼, 노동조합이 없는 곳에서는 더욱 심각할 수 있다. 

문재인이 다 해결해줄 거라고? 300인 이상 사업장이 주 52시간을 위반해도 처벌을 6개월이나 유예해준 문재인 정부가? 6개월이면 기발한 꼼수 하나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다. 월급봉투도 지키면서 노동시간을 줄이는 일, 노동조합과 함께 얘기하고 내 권리를 지키는 것이 가장 가깝고 확실한 길이다. 인천공항의 노동자들에게도, 전국의 노동자들에게도. ●
 
필자 소개

<오늘보다> 디자인편집국장. 게임, 만화, 술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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