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노동보다
  • 2018/06 제41호

노동자가 더 많은 사회를

특수고용노동자 투쟁의 방향과 의미

  • 소영호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에 발표한 《주간 문재인》 6회의 제목은 〈이상한 사장님_특수고용노동자〉였다.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고 각종 보호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노동기본권을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지 1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어떠할까?
 
 

특수고용노동자란?

‘특수고용’이란 사용자가 근로계약이 아닌 위탁, 도급, 임대 등의 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하여 일을 시키는 고용형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15 인권상황 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특수고용노동자의 규모는 23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다양한 직종에서 다양한 형태의 노무제공 방식이 존재하기에 그 규모가 더욱 클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정책은 기존에 정규직이었던 이들을 개인사업자로 전환하였다. 사용자들의 책임회피와 각종 비용절감이 주된 목적이었다. 예를 들어 레미콘기사들은 본래 레미콘 공장의 정규직 기사였다. 1990년대 이후 회사 소유의 차량을 개인에게 불하하고, 기사들은 개인사업자로 레미콘을 운행하게 되었다. 회사에 소속되어 회사의 이름이 적힌 차량을 운전하지만, 이들은 근로계약이 아닌 운송계약, 임대차계약, 도급계약 등을 맺고 있다. 차량관리비용,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 등을 레미콘 기사가 져야하고, 레미콘 회사는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학습지, 화물·건설운송, 건설기계, 보험모집, 애니메이션, 에이에스(A/S)기사, 퀵서비스, 골프경기보조, 간병, 방과후강사, 대리운전, 방송작가, 장례지도, 여행가이드, 택배기사 등. 수없이 다양한 직종의 노동자들이 노동3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근로기준법을 모법으로 한 보호대책에서 제외된다. 노동법의 사각지대다.
 

투쟁의 방향: 노조 할 권리

1999년 학습지교사들의 투쟁으로 특수고용노동자 문제가 이슈가 된 이후, 현재까지 조직화와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초중반 골프장경기보조원, 매점판매, 화물, 건설운송, 건설기계 등의 싸움이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2002년에는 특수고용대책회의가 결성되었다. 공동의 실천과 사회적 의제 만들기, 법제도 개선 활동, 정책 생산 등이 주된 임무였다.

투쟁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된 것은 사법부의 판단이었다. 노동자성과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이 잇따랐고, 법적 싸움 과정에서 조직력이 약해지기도 하였다.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입법 시도들이 있었지만 모두 무산되었다. 이에 특수고용대책회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2조’ 개정을 공동요구로 건다. 즉 노조법 상 근로자의 범위를 확대하여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조 할 권리를 쟁취하자는 것이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2016년 10월,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2017년 2월 노조법 2조 개정안을 발의했다.
 

노조법 2조 개정안

제2조(정의) 1. “근로자”라 함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를 말한다. <기존 조항>

 

<이하 단서조항 신설>
다만,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근로자로 본다.
가. 자신이 아닌 다른 자의 업무를 위하여 노무를 제공하고 해당 사업주 또는 노무수령자로부터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자
나. 실업상태에 있거나 구직 중인 자
다. 그 밖에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서 이 법에 따른 보호의 필요성이 있는 자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

 

 
노조 할 권리를 위해 국제노동기구(ILO)핵심협약 비준이 중요하다. 한국은 ILO핵심협약 8개 중 4개를 비준하지 않았고, 그 중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87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적용에 관한 협약(98호)이 단결의 자유와 관련된다. ILO가 2009년 한국 특수고용노동자 탄압에 긴급개입을 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지탄의 목소리도 높다. 이에 지난 1월 문재인 정부는 ILO핵심협약을 비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하였다.

노조법 2조 개정 및 ILO핵심협약 비준으로 노동3권이 보장되는 노동자의 범위를 넓히는 것은 간절한 요구다. 문재인 정부가 무조건 해 줄 거라 보기는 어렵다. 2012년에는 노조법 2조 개정안이 통과직전까지 갔지만 무산되었다. 현재 발의된 노조법 2조 개정안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ILO핵심협약 또한 이전에 비준한다고 약속하고 이행을 하지 않은 경우가 수없이 많았다.

자본 또한 경제적인 부담을 내세우며 노동기본권 확대에 기를 쓰고 반대하고 있다. 정부는 개별적인 보호방안들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을 회피하고 있다. 더 많은 조직화와 투쟁의 확대가 필요하다.
 

 

투쟁의 방향: 보편적 보호 방안 마련

특수고용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에 따른 보호를 받을 수 없다. 때문에 직종이나 산업을 규율하는 법과 제도를 개정하여 보호방안을 마련해왔다. 근로계약서 대신 직종에 따른 표준계약서를 마련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약관에 따라 지급받는 금액, 일하는 시간, 지급방법 등을 표준계약서 형태로 작성하는 것이다.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기존의 법령에 근로기준법에 해당하는 내용을 추가하는 방식도 있다. 전국건설노동조합에 속해있는 건설기계노동자들은 임금채권보장법과 비슷한 일부 내용들을, 건설산업기본법상 체불방지 대책으로 포함시키기도 했다. 최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일종의 최저임금(최저운임)에 해당하는 화물자동차 안전(표준)운임제를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에 포함하기도 했다.

그런데 개별 보호법안들의 시행 여부는 노동조합의 규모와 조직력에 따라 달라진다. 건설노조나 화물연대 같이 조직력과 투쟁력이 있는 노조들은 자체적인 투쟁과 법제도 개선 사업들을 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조직들은 일상 사업을 하기도 버겁다. 전체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처지가 향상되기 위해서는 좀 더 보편적인 보호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보편적 보호 방안의 일례로 특수고용노동자 산재보험 전면 적용이 있다. 2008년 산재보상보험법이 일부 개정되며 제125조(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특례)를 신설하였다. 그런데 대통령령으로 학습지, 레미콘, 보험, 골프장 경기보조원 등 4개 직군만이 사용자와 노동자 절반 부담의 방식으로 산재보험이 적용된다.(현재는 9개 직군) 특수고용 대책회의는 특수고용노동자 산재보험 전면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에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과 같은 보호 방안을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도 적용하는 방안들이 논의되고 있다. 그런데 정부의 보호 방안은 전면 적용이 아닌, 대통령령에 일부 직군들을 추가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공동 투쟁을 해왔던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단결을 해치고, 갈등을 만들 여지도 있다. 또한 현재 본인 절반 부담 방식에서, 산재보험법의 취지대로 사용자가 전액 부담하는 방식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고용보험 적용 방식 역시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이 갈리고 있는 상황인데, 실질적으로 특수고용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법’(가칭)을 제정하여 특수고용노동자를 일종의 ‘유사 근로자’로 만들려는 시도도 있다. 이는 노동권의 보편적인 보장이 아닌, 특수고용노동자라는 특수신분 규정에 불과하다. 비용과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자본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개개의 보호 방안이 아닌, 보편적인 노동권을 보호하는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
 

투쟁의 의미: 노동자가 더욱 많아지는 사회

지난 5월 9일 문재인 정부 취임 1주년을 맞이하여, 민주노총 특수고용노동자 결의대회가 열렸다. 후보시절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겠다는 공약을 지키라 요구하고, 다시금 투쟁을 모아보자는 의미였다. 처지가 어려운 이들의 생활을 개선하는 것을 넘어, 특수고용노동자 투쟁은 더 큰 의미를 갖는다.
 

2017년 8월 기준 경제활동인구는 2790만 3000명이고 취업자는 2690만 4000명이다. 이중 2000만 6000명이 임금근로자이고, 이를 뺀 나머지 689만 8000명이 자영업자이다. 약 4분의 1이 자영업자인데 다른 나라에 비해 그 비중이 매우 높다. 또 520조 원에 달하는 자영업자 대출규모는 심각한 사회 문제 중 하나이다.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특수고용노동자들이다.

자영업자 대출 중에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일을 하기 위해 구입한 생산수단비용과 영업비용 등이 상당수 포함된다. 자본이 비용을 절감하고, 책임을 회피하고자 만들어낸  것이다.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로 인한 지독한 양극화, 취약한 사회적 안전망을 해결하는데에 특수고용노동자 투쟁은 큰 의미를 차지한다.

이 직종은 노동자다, 아니다 하는 논란도 있다. 종속된 사업장이 없이 그날그날 다른 현장에 가는 이들이 노동자인가? 억대의 장비를 가지고 일을 하는 이들이 노동자인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투쟁은 20년 넘게 지속되었고, 본인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단결하고 투쟁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노동자성을 깨닫기도 한다. 선험적으로 계급을 규정하지 않고, 투쟁하는 과정에서 계급의식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한 주체가 만들어지고 활동하는데 특수고용노동자 투쟁의 역사가 있었다.

노동자로 인정받고, 노동자라는 의식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한국사회를 좀 더 나아지게 하는 길이 될 수 있다. 노조 할 권리와 보호방안 마련을 위한 법제도 개선 투쟁을 넘어, 노동자로서의 자각을 가질 수 있도록 조직하고 투쟁하는 과정이 계속되어야 한다. 정부의 대책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운동으로 대안을 만들어 가자. ●
 
필자 소개

전국건설노동조합 조직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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