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는글
- 2018/06 제41호
혜성은 갑작스레 나타나지 않았다
“혜성처럼 나타난 ○○○” 새로운 인물이나 물체가 눈에 띄었을 때 흔히 쓰는 표현이다. 너무 자주 쓰는 말이라 식상한 표현이 되어버렸지만, 혜성은 밤하늘에 그야말로 예고 없이 불쑥 등장하는 존재였다.
먼 옛날, 달력조차 없던 시절. 인류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시간과 계절을 가늠했다. 때에 따라 옮겨 다니는 별들을 보며 머물 때와 이동할 때를 가늠했다. 언제 추워지고 야생동물이 늘어날지 알아냈다. 그런 그들에게 아무런 예고 없이, 정해진 자리 없이, 시뻘건 꼬리를 늘어뜨리며 나타나는 혜성은 당혹 그 자체였다. 그래서였을까. 옛 사람들은 혜성이 나타나면 평소와 다른 일, 특히 불길한 일이 일어날 거라 여겼다. 왕이 죽는다든가 전염병이 돈다든가 하는.
지금 우리는 혜성의 정체를 잘 안다. 얼음과 가스 덩어리로 이뤄진 천체. 수성, 금성처럼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태양을 도는 천체. 다만 그 주기가 짧게는 몇 십 년, 길게는 몇 천 년이나 되어 인간의 경험으로 그 정체를 파악하기란 매우 어려웠을 뿐. 혜성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지금 이 순간도 머나먼 태양계 어딘가를 여행하고 있다.
5월 한 달,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일들이 혜성처럼 ‘슉’하고 지나갔다. 11년 만에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고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듯 했다. 트럼프의 트윗 하나에 정상회담이 취소되는 거 아니냐며 한반도가 뒤집히기도 했다. 갑자기 헌법재판소에서는 낙태죄를 폐지할지, 유지할지 변론을 한단다. 또 오늘자 신문은 ‘노동자에 불리한 최저임금법 통과’라며 난리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일상에 치여 신경 쓰지 못했던 일들이 불쑥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오늘보다》는 하루하루 달라지는 뉴스, 운동을 이해하기 위해 이면에 숨어있는 구조적 문제를 밝혀보고자 노력해왔다. 하룻밤 반짝하는 혜성을 알려면 그 뒤의 몇 천 년을 알아야하는 것처럼. 태양계의 전체 구조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알아야하는 것처럼. 잘 되어왔는지는 독자들의 평가에 따라야 하겠다.
이번 6월호는 5월의 혜성 같은 사건을 주로 다뤘다. 낙태죄 폐지 이슈, 남북 정상회담과 한반도 이슈, 최저임금법 개악을 둘러싼 문제들.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둘러싼 갈등, 한국경제의 제조업 위기에 관해서도 분석한다. 《오늘보다》가 꾸준히 다뤄온 주제들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이슈와 운동을 이해하기에 필요한 분석과 관점을 제공하고자 노력했다. 이 역시 독자들의 평가에 맡긴다.
월간 《오늘보다》에도 혜성처럼 등장한 이들이 있다. 여러모로 활력소가 되는 신입 편집진을 채용했다. 낙태죄 폐지 인포그래픽이 그의 첫 작업이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편집진으로 새로 들어왔다. 천 년 간 태양을 도는 혜성처럼 묵묵히 월간 《오늘보다》를 만들어 갈 것을 약속드린다. 독자들의 눈에 혜성처럼 눈에 번쩍 뜨이는 월간 《오늘보다》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