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사회운동
- 2018/06 제41호
바로 선 세월호처럼 진실도 바로 설 수 있을까
<사회적참사특조위에 보내는 제언>
지난 5월 10일, 옆으로 누워있던 세월호가 바로섰다. 이제 그 동안 진입이 어려웠던 구역에서 미수습자 수습과 조사가 이뤄진다. 선체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는 8월에 발표될 예정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및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종합대책 등을 다루는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도 3월 말 출범했다. 조사관 채용 후 8월경부터 선체조사위원회가 미처 밝히지 못한 과제를 포함하여 구조구난의 문제점 등도 다시 조사를 시작할 것이다. 세월호가 바로 서고, 사회적 참사 특조위가 본격적인 활동을 앞두고 있는 지금, 4년 여에 걸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과정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운동의 시작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한 달 후, 세월호 특별법을 위한 서명이 시작되었다. 검찰 조사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유가족뿐 아니라 시민들 대부분은 재판 과정을 지켜보며 검찰 수사가 미흡하다고 생각했다. 풀리지 않는 의문은 제대로 밝혀주지 않고, 권력자를 향한 수사는 회피했기 때문이다.
사고 조사 이후 사법 처벌이 이뤄지거나, 사고 조사와 사법 처벌이 아예 분리된 국제적 기준과 달리, 한국은 재난이 발생하면 검찰 수사가 가장 먼저 시작된다. 검찰이 실질적으로 사고 조사의 대부분을 담당하면서 사고 조사의 내용도 개인 처벌에 초점을 맞춰지게 되었다. 검찰은 처벌할 개인에 대한 증거가 확보되면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수사하지 않는다. 또한 처벌하기 어려운 개인들에 대한 수사는 당연히 저어하게 된다.
유가족과 시민들의 특별법 제정 요구는 검찰 조사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즉,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는 두 가지 바람이 투영되었다. 첫 번째는 검찰이 조사하지 못한 사실을 발견하고 추가로 책임자를 기소하는 것(추가적인 개인 처벌)이며, 두 번째는 검찰 조사방식의 한계를 넘어 처벌여부와 관련 없이 구조적 문제를 조사하는 것(구조적인 원인 규명)이다.
‘국가책임’ 문제와 과거사 진상규명 경험의 소환
세월호 참사의 가장 큰 화두는 ‘재난에서의 국가책임’ 문제였다. 이는 구할 수 있었음에도 구하지 못했던 ‘구조 실패’에서 비롯되었다. 선장과 선원이 배를 버리고 가장 먼저 구조되고, 해경은 완전침몰 1시간여 전에 도착했는데도 소극적으로 구조에 임하면서 승객을 구조하지 못했다. 국가는 단지 구조할 능력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구조할 생각이나 의지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 사건에 책임을 지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한국의 많은 학자들과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국가폭력으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가 소환되었다. 한국에서는 5.18을 비롯,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수많은 의문사 등 국가폭력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검찰이 폭력에 동참하거나 은폐하는데 복무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이 이에 맞서는 핵심적인 구호였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과거사 진상규명 경험의 소환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첫째, 세월호 특별법이 과거사 위원회의 법 체계를 따라 분절된 사건으로 다뤄지게 하는데 영향을 줬다. 둘째, 재난에서의 국가책임과 5.18이나 의문사 사건 등에서 국가책임을 묻는 방식을 혼동하게 만들었다. 구조실패를 국가폭력으로 규정하기 위해 국가의 ‘의도적 행위’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대두되었고,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대한 탄압은 이 생각을 더욱 강화했다.
‘사건’ 해결식 조사의 한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김ㅇㅇ의문사’, ‘이ㅇㅇ의문사’ 등 각각 독립적인 사건을 담당 조사관에게 배분하여 조사를 진행했다. 의문사 위원회 법을 본 따 만든 세월호 특조위 역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세월호 특조위는 신청사건 외에도 직권사건을 통해 스스로의 조사 계획을 명확히 할 수 있었으나, 이를 하지 않고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신청한 사건 조사를 통해 총체적인 진실을 규명하려 했다. 특조위의 조사 계획이 명확히 나오지 않자 불안해진 유가족들은 다수의 사건을 신청했다. 세월호 특조위의 조사권한이 종료되는 2015년 6월 말 경 최종적으로 조사 사건은 211건에 이르렀다. 문제는 각 사건의 연결고리를 제대로 논의하지 못하면서 조사관들이 각자 자신의 관점에 맞춰 각자 조사를 진행했다는 점이다.
분명 세월호 특조위는 독자적인 조사계획을 만들어 이를 직권으로 조사할 수도 있었다. 왜 ‘직권’으로 조사 계획을 만들기를 포기해버렸을까?
세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대형 참사의 사고 조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사나 공부가 부족했다. 한국에서는 이런 경우의 경험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성과가 전혀 쌓여있지 않았다. 둘째, 정치지형에 따른 위원 배당 (여야 정당 각 5명, 대법원 2명, 대한변호사협회 2명, 유가족 추천 3명)으로 인해 바깥의 정치적 대결 구도가 특조위 회의실에서도 관철되었다. 특히 당시 새누리당의 강한 방해 의지로 의사쟁점에 낭비하는 시간이 길었는데, 이는 과거사 위원회에서도 반복되어온, 오래된 문제다. 셋째, 정치적 대결 구도가 강화되자 조사 의지가 있는 위원들도 객관성의 덫에 빠져 모든 프레임에 대한 경계가 강력하게 작동하였다. 조사계획을 세우려면 관점이 필요한데, 관점 자체를 배제하려는 경향이 생기면서 ‘우리가 이 조사를 왜 하는가’, ‘국가가 답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논의하지 못했다.
사회적 참사 특조위가 성공하려면
사회적 참사 특조위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첫째, 재난 조사의 경계와 범위를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초기에 기술적인 원인이나 잘못한 사람만을 지목하던 조사는 점차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원인, 피해자의 회복 문제까지 그 범위를 넓혀왔다. 세월호 참사는 이 경계를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게 확장해, 세월호 특조위는 너무 많은 과제 속에 갈피를 못 잡고 허덕였다. 한정된 기간과 인력을 가진 조사위원회가 일정한 성과를 내고, 이를 바탕으로 또 다른 과제를 던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왜, 어디까지 조사할 것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둘째, 조사 과제는 책임자들을 처벌하는 등 사법적 정의를 구하는 방법과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를 염두에 두며 설정되어야 한다. 이 두 목표의 조화는 특히 ‘안전한 사회’라는 요구와 긴밀히 연관된다.
[참고]구조적 원인의 특성과 유형
- 명문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조직과 개인의 행동을 인도하는 방침.
- 개인을 처벌하는 것으로 없어지지 않거나 애초에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 관행.
- 모두가 관련되어 있으나 특별히 담당자가 정해지지는 않은 정책의 방향.
- 평소에는 시스템의 효율적 작동에 도움이 되는 듯 보이지만 결국 큰 사고나 실패의 원인이 되는 관계.
<재난에서 배우지 않기: 서해 훼리호에서 세월호까지 재난 이후 사회적 학습 실패의 역사>, 《세월호 특조위 안전사회소위원회 보고서》 중
기술적인 원인이나 잘못한 사람만을 지목하던 재난 조사가 점차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원인까지 다루게 된 배경에는 ‘재발방지’, 즉 ‘안전’의 문제의식이 있었다. 기술적 원인을 해결하고 잘못한 사람을 처벌해도 참사는 계속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넘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 한국 사회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알기 위한 조사가 필요하다. 세월호 특별법에도 존재했으며 사회적 참사 특별법 5조(위원회의 업무)에도 있는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참사의 원인을 제공한 법령, 제도, 정책, 관행 등에 대한 개혁 및 대책 수립에 관한 사항”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담긴 조항임을 기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가폭력’(책임자가 명확)과 국가의 무능과 부작위(많은 사람들이 연루된 사회적 선택의 결과)로 인해 국가가 제 역할을 못했던 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 방식은 다르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세월호참사가 준 충격은 5.18과 비슷하지만 5.18의 발포명령자를 특정하듯이 세월호 참사의 원인 제공자를 특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최대한 높은 직위에 있는 개인을 처벌하면 곧 참사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는 것이 될까? 그것이 아니라면 ‘사회적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회적 참사 특조위가 이를 숙고하고 권고하는 것을 자기 과제로 삼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