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필름X정치
  • 2018/06 제41호

과학적 사회주의자 마르크스, 스크린에 소환되다

영화 <청년 마르크스>

  • 김주현

마르크스의 생애를 직접 다룬 첫 영화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마르크스의 생애를 직접 다룬 영화가 단 한 편도 없었다는 사실은 새삼 우리를 놀라게 한다. 단순히 마르크스가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사상이 영화의 역사에 끼친 영향이 심대하기 때문이다. 영화라는 매체가 탄생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1920년대, 러시아는 문맹률을 고려해 공산주의 혁명의 선동 매체로서 영화를 활용했다. 1960년대 유럽에서는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을 계승한 영화이론가들이 이데올로기적 장치로서의 영화 매체를 분석하며 영화이론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발전시켰다. 비슷한 시기 유럽의 영화감독들, 그 중 장 뤽 고다르는 마르크스주의적으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지가 베르토프’라는 제작 집단을 결성하고 당대 영화 문법에 반하는 실험적인 영화를 여럿 제작했다. 하지만 마르크스적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에 몰두한 탓일까. 아니면 마르크스라는 이름이 너무 무겁고 부담스러워서였을까. 정작 마르크스의 생애를 직접 재현한 영화는 이번에 개봉한 라울 펙 감독의 <청년 마르크스>가 처음이다.

영화 <청년 마르크스>는 흑인 인권 운동을 다룬 라울 펙 감독의 전작 <아임 낫 유어 니그로>에서 보여줬던 형식적 신선함보다는, 제목처럼 마르크스의 청년 시절을 극영화를 통해 충실하게 다루는 방식을 선택했다. 영화는 1843년 마르크스가 당시 프로이센 정부의 라인 신문 폐간 조치로 거처를 파리로 옮긴 때부터, 1848년 엥겔스와 함께 <공산주의 선언>을 집필하기까지의 약 5년을 담고 있다. 마르크스가 엥겔스를 만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책을 집필하던 시기다. 마르크스는 경제적 곤궁과 정치적 탄압을, 엥겔스는 공장장의 아들이라는 지향과 현실의 괴리를 각각 헤쳐 나가며 당대 공산주의 운동을 이끌어나간다.
 
(네이버 영화)
 

삶과 이론 양자를 보여주려는 시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삶을 담는 영화를 구상하면서 감독은 시대적 배경과 행적을 다룰지, 그의 이론도 함께 다룰지, 혹은 얼마나 담을지 고민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자에 치중했을 때는 관객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반면 이들의 사상적 특수성을 상투적인 영웅 서사로 만들어버릴 위험이 있을 것이다. 반대로 후자에 집중한다면 복잡한 이론을 스크린을 통해서 설명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그것이 성공한다고 해도 지금의 극장 관객에게 어떻게 접근할지 난망했을 수 있다.

라울 펙 감독은 둘을 적절히 조화시키는 선택을 했다. 다행인 점은 감독이 손쉽기는 하지만 함정인 길을 선택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두 가지의 길과 다르게 사상보다는 당대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에 분노하며 투쟁하는 휴머니즘적 마르크스의 영웅적 서사도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마르크스를 다루는 것은 마르크스를 기만하는 일이다. 이 영화에서는 재봉사 출신 사회주의자였던 바이틀링이 휴머니즘적 활동가의 역할을 차지하고 있고, 마르크스는 그를 비판한다. 영화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사상적 쟁점은 프루동, 바쿠닌, 바이틀링 등에 대한 비판과 마르크스 자신의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을 전개하는 과정이다. 영화에는 마르크스와 당대 사회주의자로서 유명했던 프루동과의 첫 만남 장면이 등장한다. 여기서 프루동의 연설을 꽤 긴 시간 보여주고, 마르크스가 그에 대해 비판적인 질문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행적 중심의 생애를 다루는 영화에서는 표면적인 갈등 만을 보여주고 그 내용은 다루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장면을 예로 들자면 연설 장면을 훨씬 줄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꽤 긴 시간을 할애하며 대사를 통해 논쟁의 상황뿐만 아니라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즉 영화는 마르크스가 당대 활동했던 사상가들과 달랐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어떻게’ 달랐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후에도 영화 내에는 몇 번의 논쟁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마다 마르크스와 상대가 주고받는 논쟁을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 동안 주요하게 보여준다.

논쟁의 내용을 보여주려는 영화의 의도적 노력과 달리 결과가 성공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매끄럽지 못한 한글 자막 번역의 문제일 수도, 아니면 책 몇 권 분량을 할애해서 치열하게 논쟁했던 내용을 몇 마디 대화로 축약한다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한 시도였을 수도 있다. 마르크스 평전이나 당대 사상사를 미리 공부하고 영화를 보지 않으면 영화 내 논쟁들의 쟁점을 정확하게 따라가기 쉽지 않다. 프루동과의 사유재산논쟁, 바이틀링과의 투쟁노선과 이론 논쟁들은 각각의 복잡한 쟁점이 있기 때문에 영화 내에서 맥락으로 파악될 뿐 명확하게 설명되지는 않는다.
 

꼼꼼한 고증과 여성들에 대한 주목 

그럼에도 이 영화가 지루하지 않은 것은 당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활동했던 배경을 굉장히 꼼꼼하게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엥겔스 아버지의 공장 노동자들의 시위 장면에서는 당대 태동한 산업자본주의 상징이었던 방직 공장의 노동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1844년 여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두 번째 만났을 때 열흘 동안 포도주를 마시며 함께 책을 구상했다는 이야기는 꽤 유명한 일화인데 영화에서도 재치 있게 담겨 있다. 마르크스와 프루동이 만나는 장면에서 리얼리즘 화가로 유명했던 쿠르베가 나온다거나, 생활고에 시달리던 마르크스가 우체국에 일자리를 알아보러 갔다가 그 유명한 악필로 인해 일자리를 구하지 못 하는 장면은 영화가 사소한 고증부터 시대적 배경까지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심지어 배우들도 당대 사상가들을 꽤 닮았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들에 주목한 것도 이 영화의 미덕이다. 귀족 출신으로 특권을 마다한 마르크스의 부인 예니. 방직공장 노동자 출신으로서 노동자들과의 교류를 위해 힘썼던 엥겔스의 연인 메리. 두 여성을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주체로 드러낸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영화의 후반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주의자 선언>을 함께 집필하는 장면에서도 두 여성이 함께 원고를 검토하고 의견을 내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인상적이었던 한 부분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영화의 후반부, 각지의 의인동맹 활동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마르크스는 바이틀링에게 노동자들에게 이론적 기초나 건설적 방향 없이 감동적인 말로 노동자들을 선동하는 것은 기만이라고 비판한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의인동맹의 이름을 공산주의자 동맹으로 바꾸고, 그들의 원칙으로서의 <공산주의자 선언>을 집필한다. 오늘날 노동자 운동에는 어떤 원칙과 이론이 있는지 마르크스를 다시 읽으며 함께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 전에 이 영화를 함께 보고, 당시의 분위기를 느껴봐도 좋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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