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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6 제41호
판문점 선언, 북미정상회담 … 평화운동은 어디로 가야하나
일촉즉발 군사대결에서 평화국면으로
2017년 내내 전쟁 위기는 한반도를 떠나지 않았다.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과 이에 대한 한미의 군사적 위협 때문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미국을 향해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 타격 사정권 안”, “괌 미군기지 주변 포위사격”을 언급했다. 이에 질세라 미국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을 향해 “화염과 분노”, “완전한 파괴”, “코피 작전”을 운운했다.
상황은 빠르게 변했다. 군사훈련 연기, 북한의 평창올림픽 대표단 파견 등으로 접촉과 대화가 오갔다. 3월 6일에는 대북특사단이 북측과 합의한 내용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4월 말 남북정상회담 개최 △북한은 미국과 비핵화 문제를 협의하고 북미 관계를 정상화할 것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북한은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할 것 등이었다. 평창올림픽 이후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되지 않겠냐는 우려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남북정상회담이 정점이었다. 4.27 판문점 선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북관계 개선(이미 채택된 남북합의 이행,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협력과 교류 활성화, 이산가족 상봉, 경협 및 철도연결), △군사 긴장 해소(적대행위 전면중지, 비무장지대 평화지대화, 서해 평화수역 조성, 장성급 군사회담 개최), △평화체제 구축(상호불가침합의 재확인과 준수, 군사적 신뢰 구축에 따른 단계적 군축, 종전선언,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 전환,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 실현) 과거의 남북 정상 간 합의를 종합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정세변화의 이유
어떻게 이런 극적인 전환이 가능했을까. 군사 긴장과 대결 고조에 대한 광범위한 우려 여론에 더해 남·북·미 각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평화와 번영’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한미동맹의 틀 속에서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 문제 해결을 시도한다. 대북 경제협력(자본투자)을 통한 경제적 이득도 노리고 있다.
미국 트럼프 정부도 북핵 문제 해결을 통한 여러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전임 대통령 오바마도 해결 못 한 북핵 문제를 자신의 성과로 만들려는 것이다. 11월 미국 중간선거와 2020년 대선에 대비하는 정치적 효과도 노리고 있다. ‘러시아 스캔들’ 등 발목을 잡고 있는 각종 국내정치 문제의 돌파구이기도 하다.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북한은 경제발전에 매진하는 전략적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90년대 북한은 현실사회주의권 몰락과 원조 중단, 자연재해가 겹쳐 ‘고난의 행군’을 지속해야 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북한도 계획·배급경제보다는 자생적인 ‘장마당’과 ‘돈주’로 상징되는 비공식경제의 비중이 상당히 높아졌다. 북한 당국도 때로 이를 활용한다. 경제 발전에 대한 북한 내부의 요구는 지난 4월 20일 노동당 중앙위의 ‘핵·경제 병진노선 종료와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 집중’이라는 노선으로 공식화되었다. 현재 북한의 여건에 비추어볼 때, 경제건설을 위한 대규모 자본을 확보하려면 외국자본을 유치하는 방법밖에 없다. 경제제재 해제와 북미 관계 정상화가 필요한 이유다.
엎치락뒤치락 북미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은 오는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북한은 4월 20일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중단 선언을 했고, 5월 24일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했다.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선제적 조치로 비핵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미국은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로 표현되는 일괄타결 방식을 요구해왔다. 일각에서는 ‘리비아식 핵 폐기’, ‘선 핵 포기, 후 보상’ 등이 언급되기도 했다. 북한도 참지만은 않았다. 5월 16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를 통해 일방적 핵 포기 강요를 규탄했다. 한미연합훈련 ‘맥스 썬더’를 비난하며 남북고위급회담도 연기했다.
22일 한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일괄타결이 바람직하나 물리적 여건상 불가능할 수 있으니 짧은 시간에 합의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직접 북한 체제에 대한 안전보장을 언급하는 한편 비핵화의 시한을 제시한 것이다.
합의는 좁혀지는 듯했다. 5월 24일 밤, 트럼프는 돌연 북미정상회담을 취소했다. 정상회담 개최 불과 20일 전이었다. 공개서한을 통해 그는 “지금은 회담의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고 말했다. 북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미국 펜스 부통령을 비난하며, “미국이 우리의 선의를 모독하고 계속 불법무도하게 나오는 경우 나는 조미(북미) 수뇌회담을 재고려할 데 대한 문제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할 것"이라고 밝힌 후였다. 하룻밤 사이 일어난 일들에 전 세계 여론은 경악했다.
직후 북한은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대화할 용의가 있다며 자세를 낮췄다. 트럼프도 다시금 “정상회담을 되살리는 것에 관해 북한과 매우 생산적인 대화를 하고 있다"며 6월 12일 예정대로 회담이 열릴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5월 26일 한 달 만의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미 정상회담과 비핵화의 의지가 재확인되었고, 북미 간의 실무접촉도 개시되었다. 대화의 불씨가 살아났다.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려, 합의가 이뤄진다면, 그 내용은 미국의 요구를 기초로 북의 요구가 일부 결합하는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 큰 틀에서 일괄타결을 하되, 단계적 조치가 어느 정도 추가될 것이다. 물론 회담이 열리기 직전까지 합의의 세부적 내용을 놓고 계속 다툼이 이어질 것이다. 회담 취소선언 같은 상황이 또 벌어지지 말란 법도 없다.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불가침, 북미수교,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등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그 자체로 역사적 의미가 클 것이다. 그러나 국가 간 협상과 합의가 민중의 기대를 그대로 반영하지는 않으며, 합의가 성사되더라도 평화정세를 지속시킨다는 보장은 없다. 북핵 문제 30년의 역사를 돌아봐야 한다. 북한의 핵 폐기와 에너지 지원을 교환한 94년 제네바 합의를 포함하여 여러 남북, 북미 간 합의가 있었으나 지금까지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오히려 정세가 악화되기도 했다.
평화운동을 더욱 강화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전보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더욱 진척된 상황에서 북미회담 이후에도 합의 이행과 검증 문제를 놓고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돌이킬 수 없는 지속적 평화체제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평화운동이 필요하다.
평화운동의 과제
남북정상회담 직후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80퍼센트를 넘어서기도 했다. 여기에는 분단과 남북대립, 한반도 전쟁위기, 북미 핵 대결을 해결하고 새로운 평화의 한반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대중의 열망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정부 간 협상에 박수 치는 구경꾼으로 있을 수만은 없다. 노동자 민중의 평화에 대한 요구를 바탕으로 평화운동을 펼쳐야 한다.
우선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 요구를 만들어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는 북핵 뿐만이 아니다. 남한에 제공되는 미국의 핵우산 정책, 한미연합훈련에 미국의 핵전략 자산 문제, 핵전쟁 무기체계인 사드까지 연관되어 있다. 특히 사드는 불법으로, 부당하게 임시배치되어 있다. 사드가 존재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정당성도 없다. 사드를 포함해 미국의 핵전략 자산의 한반도 반입은 중단되어야 한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문제도 있다. 지금까지 한미동맹, 주한미군은 북한의 위협을 존재의 근거로 삼아 왔다. 비록 북한이 주한미군을 용인했다고는 하지만 평화체제라면 한반도에서 전쟁을 재발시킬 수 있는 모든 군사적 요소를 제거 또는 축소하여야 한다. 외국군대의 영구주둔이 평화체제와 함께 갈 수는 없다.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실질적인 군축이다. 남북의 군사력 증강을 통제하고 본격적 군비축소로 나아가야 한다. 한미 군사동맹과 한일 군사협력은 해체되어야 한다. 전쟁을 할 수 없는 물질적 조건을 만들기 위해 남북이 반드시 군비를 대폭 축소하도록 해야 한다.
한편 앞으로 진행될 남북 경제협력에 대한 운동진영의 입장도 마련해야 한다. 북미 수교 이후 제재가 풀린다면 북은 적극적으로 자본투자 유치를 할 것이고, 중국, 남한, 일본의 자본이 북한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 저성장과 침체에 빠진 자본에 북은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매력적인 투자처이기도 하다. 문맹률도 낮고 노조도 없는 노동력이라서 좋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다른 현실 사회주의국가들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한의 외국자본유치와 시장개방은 필연적으로 여러 문제를 낳을 것이다. 남북 노동자 민중의 권리, 노동권을 증진할 수 있도록 운동진영이 대응해 나갈 필요가 있다.
6월 9일 토요일 오후 7시, 광화문에서 2차 평화촛불이 열린다. 3.24 평화촛불 이후 북미 정상회담 전에 평화운동의 요구를 제기하고 행동하기 위한 계획이다. 회담이 예정대로 열리든 연기되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병행, 북미수교와 불가침 보장, 핵무기와 사드 없는 한반도, 전쟁군비 DOWN 평화군축 UP”을 주요 요구로 하여 평화의 행동을 호소할 것이다. 대결을 종식하고 한반도 평화를 구축할 절호의 기회를 살리자. 역사적인 정세에서 평화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강화해 나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