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2018/05 제40호
휘청거리는 제이노믹스
외유성 해외 출장 등 각종 비리 의혹으로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보름 만에 불명예 사퇴했다. 앞서 최흥식 전 금감원장 또한 하나금융 사장 시절 대학 동기의 아들을 추천한 사실이 드러나 6개월 만에 낙마한 바 있다. 김기식 금감원장의 비리 문제는 드루킹 사건과 함께 문재인 정부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있고, 정책 추진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 4월 5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이른바 ‘청년 일자리 추경’도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저조한 고용 실적
여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러한 정치 이슈도 문제지만, 최근의 경제 실적을 보면 한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더 커진다. 문재인 정부가 가장 강조하고 있는 일자리, 고용문제가 대표적이다. 지난 2월과 3월 취업자 수 증가폭은 각각 10.4만 명, 11.2만 명에 그쳤다. 통상 20~30만 명 수준에 비해 낮은 편이다.
여러 요인이 지적된다. 작년의 이례적인 고용 증가(2017년 3월 46.3만 명)로 인한 기저효과, 생산가능인구 감소의 본격화, 제조업 구조조정과 건설업 경기둔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 중국 관광객 감소 등으로 인한 서비스업 고용 증가 둔화 등이다. 최근 다시 늘어나고 있는 중국 관광객을 봤을 때 서비스업 고용 증가 둔화는 일시적일 수 있으나, 나머지 문제는 쉽게 해결되기 어렵다. 4월 12일 한국은행은 수정 경제전망 발표에서 올해 취업자 수 증가폭을 26만 명으로, 1월에 냈던 전망치 30만 명에 비해 크게 낮췄다.
자영업자 감소가 확연해지면서 최저임금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종사상 지위별 취업자 추이에서 자영업자가 지난 2월에 이어 3월도 전년 대비 4만여 명 감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는 10만 3000명 감소했지만,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6만 3000명 증가해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최저임금 논쟁
최저임금에 대한 논쟁은 세계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다. 특히 미국 시애틀의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경제학계 논의가 대표적이다. 시애틀은 최저임금을 2015년 1월 9.47달러에서 2015년 4월 11달러, 2016년 13달러, 2017년 15달러로 인상했다. 워싱턴대학교 연구팀은 전체 업종 저임금 노동자를 조사한 결과,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시간당 임금은 증가했으나 일자리 수가 감소하고, 그에 조응하여 총 노동시간 및 노동자당 월 소득도 감소하였으므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역효과를 발휘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버클리대학교 연구팀은 외식업 전체 노동자를 조사한 결과, 일자리 수나 총 노동시간에 큰 변화가 없고 월 소득이 증가하여 최저임금 인상이 효과적인 재분배 정책이라는 결론을 제시한다.
앞으로도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와 소득에 끼치는 효과를 경험적으로 조사·해석하는 논쟁이 전개될 것이다. 그러나 이 논쟁이 쉽게 결론나기는 어렵다. 일자리와 소득의 증감에는 최저임금의 정책효과 뿐만 아니라 생산성이나 산업구조 등 전반적인 경기침체·회복이 더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식별할지에 대한 기술·계량적 문제가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최저임금 인상과 경제성장의 인과관계 설정에 대한 이론적 문제도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의 착취과정에서 노동자간 경쟁과 그로 인한 저임금·장시간 노동 경향을 제한하기 위해 노동조합의 임금인상을 옹호했다. 그러나 임금인상 요구의 정당성과 임금인상이 경제성장을 견인한다는 이론의 타당성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소득주도성장론은 임금분배율 증가로 인해 소비가 증가하면, 기업이 투자를 늘려 경제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자본생산성 하락으로 이윤율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기업이 투자를 늘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
혁신성장을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
문재인 정부의 ‘2018년 경제정책방향’은 3대 전략과 2대 기반을 제시한다. 즉 일자리·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라는 3대 전략과 거시경제안정, 중장기도전 대응이라는 2대 기반이다. 대체로 정부 출범 당시의 국정과제, 기존 정책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으로 제시된 정책은 “최저임금제도의 합리적 개편”, “근로시간 단축의 단계적 실현”이라는 표현처럼 조정(축소) 국면에 들어가고, 대기업 규제완화나 벤처기업 육성을 골자로 하는 ‘혁신성장’ 정책이 상대적으로 부각되는 양상이다. 경제관계장관회의 안건을 보면 혁신성장 관련 안건 비중이 확실히 높다. 최근 5차 경제관계장관회의 논의안건은 ▲혁신성장 추진성과 및 확산방안 ▲스마트팜 확산방안 ▲중소기업 알앤디(R&D) 혁신방안 ▲마포 청년혁신타운 조성방안 ▲지자체 투자 프로젝트 지원방안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론은 혁신의 ‘아이콘’으로 벤처기업을 상정하고,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견인하는 핵심주체로 부각시킨다.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은 특히 벤처기업에 대한 자금투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연기금부터 은행권에 이르기까지 금융기관의 벤처기업에 대한 자금투입을 크게 늘리도록 유도한다. 가장 파급력이 큰 정책은 연기금의 코스닥 투자 확대다. 또한 정부재정을 모태로 벤처자본 공급(벤처펀드 1.4조 원, 혁신모험펀드 2.7조 원 규모 조성 등)을 확충한다.
그런데 본질적인 문제는 연기금부터 정부재정에 이르는 자금투입이 ‘혁신성장’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벤처기업은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R&D) 비율이 2013년 3.2퍼센트를 정점으로 하락하는 추세다. 기술력이 ‘국내유일수준’이라는 응답은 2012년 11.1퍼센트에서 매년 감소했으며, ‘세계유일수준’이라는 응답은 2퍼센트를 유지하다가 2016년에는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벤처업체는 성장성(매출액 증가율)이 약화하는 가운데, 수익성(영업이익률)이 하락하고, 부채비율 역시 나빠져 한계기업이 늘어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한편으로는 실체가 모호한 4차 산업혁명 담론을 적극 확산시키며, 또 한편으로는 벤처기업에 대한 자금 투입을 선도함으로써 앞장서서 벤처기업의 ‘미래가치’를 부풀리고 있는 셈이다. 이는 2000년대 초반, 김대중 정부의 ‘신경제’ 거품을 연상케 한다.
대안은 없다?
고용사정도 작년보다 더 좋은 상황을 기대하기 어렵고, 계속되는 가계부채 증가 속에 내수 소비 진작도 만만치 않다. 문재인 정부의 ‘사람 중심 경제’는 출범 초기에는 마치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 경제의 대안인 것처럼 포장되었지만, 집권 1년이 지난 지금 그 본질은 신자유주의 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표현은 정부 보도자료에만 쓰이는 수사에 불과하다. 홍장표 경제수석은 최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아베노믹스에도 임금인상이 포함된다면서 제이노믹스를 ‘정책전환’ 정도로 봐달라고 말했다.
결국 기댈 곳은 수출밖에 없는 것일까. 한미FTA 협상을 조기 종결하면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신통상전략을 발표했다. 신통상전략은 2022년 일본을 제치고 ‘글로벌 수출 4강’ 달성을 목표로 한다. 그러려면 2010년 이후 연평균 5.9퍼센트인 수출 증가율을 6.6퍼센트로 끌어올려야 한다. 미국의 재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미국과 함께 가입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이 경우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이 쟁점이 된다. 이번에 발표된 미 재무부의 환율보고서에서 한국은 ‘환율조작국’ 지정을 피했으나 중국, 일본 등과 함께 ‘관찰대상국’으로 5번 연속 분류됐다. 또한 한국에 대해 “외환시장 개입 내용을 신속히 공개하라”고 처음으로 명시했다. 2015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체결되면서 작성된 ‘TPP 회원국 거시정책당국의 공동선언’에는 회원국들이 외환시장 개입 상황에 대해 분기별(3개월) 매수·매도 총액을 공개해야 한다는 합의가 포함돼 있다. 다만 베트남,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는 예외로 6개월 시차를 두고 순매수 내역만 공표하고 있다. 정부는 순매수 내역만 공표하는 식의 예외 조항을 적용받으려고 노력할 계획이나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많다.
한국 경제는 금융시장 개방, 무역 개방 등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재벌 수출 중심의 성장 일변도를 지속했다. 이러한 경제성장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동시에 한국 경제를 구조적으로 취약하게 만들었다. 한편으로는 대외 금융, 무역 위험에 취약해졌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적 지배력을 통한 특권 추구에만 몰두하는 재벌로 인해 생산성 향상, 기술 혁신도 한계에 도달해있다.
문재인 정부의 최근 행보를 보면 신자유주의 금융화에 한국 경제가 더 철저히 통합되는 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을 조금 완화하고 사회적 갈등을 일정 봉합하려는 노력도 있지만, 임기응변적이다. 노동자운동은 현 상황을 노동조합을 더 크고 강하게 만드는 데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정부의 임기응변식 경제정책, 재벌의 경제적 지배를 여전히 용인하는 ‘쇼윈도우’식 쟁점에 대항하기 위한 중층적인 대정부·대재벌 투쟁·교섭 구조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