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보다
- 2018/06 제41호
‘최저임금 1만원’의 자중지란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비판한다
2018년 5월 28일,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포함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2018년 최저임금이 결정된 지 한 달도 안 되어(2017년 8월) 고용노동부 장관이 직접 나서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운운하더니 2019년 최저임금 논의를 앞두고, 빠르게 확정한 것이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문재인 정부는 당장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건 아니며, 상여금은 최저임금액의 25퍼센트, 복리후생수당은 7퍼센트 초과분만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시켜, 연 2400만 원이하의 저임금 노동자는 보호하는 안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 그런지 의문이다.
2019년 최저임금이 올해처럼 똑같이 올라 최저임금이 183만 원(시급 8673원)이라고 가정해도 식대·교통비로 15만 원을 받는 노동자부터 당장 영향을 받는다. 최저임금 7퍼센트에 해당하는 금액은 12.8만 원인데 이 금액을 초과하는 2.2만 원이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사업주는 2.2만 원을 인상하지 않아도 된다. 이 노동자의 연봉은 2378만 원으로 2400만 원 이하다. 최저임금 인상 폭이 낮으면 산입범위에 포함되는 금액은 더 커져, 여기에 영향 받는 저임금 노동자는 더 늘어난다.
2019년부터 적용될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는 2024년엔 상여금 및 복리후생수당 전액을 포함하게 된다. 언뜻 5년의 유예기간을 둔 것처럼 보이지만, 2019년 첫 해의 산입범위 제외 비중 자체가 25퍼센트(상여금 300퍼센트), 7퍼센트로 낮은데다, 2021년부터는 각각 15퍼센트(상여금 180퍼센트), 3퍼센트만 제외되어 상여금 200퍼센트, 복리후생수당 4~5만 원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들도 영향을 받게 된다. 2~3년 내 전면 적용되는 안인 셈이다.
산입범위 확대는 명백한 임금인상 억제안이다
이번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는 사실상 임금인상 억제안이다.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 시절 최저임금 인상률은 평균 7.4퍼센트였다. 2019년 최저임금부터 7.4퍼센트씩 인상된다고 가정했을 때, 2024년까지 임금인상 총액은 84만 원이다. 그런데 복리후생수당 10만 원, 20만 원이 산입범위에 포함될 경우, 2024년까지 임금인상액은 10~20만 원씩 줄어든다. 이렇게 줄어든 임금인상 삭감분을 만회하려면, 6년 동안 최저임금은 평균 8.2~9.0퍼센트씩 인상되어야 한다. 바꿔 말하면 최저임금이 연평균 8.2~9.0퍼센트씩 인상되지 않으면, 복리후생수당 10만 원, 20만 원을 받던 이들은 박근혜 정권 시절보다 임금인상이 억제된다.
상여금을 산입범위에 포함시킨 경우 임금인상 삭감액은 더 많다. 상여금 200퍼센트를 산입범위에 포함시켰을 경우, 삭감액은 33.8만 원이나 된다. 상여금 400퍼센트의 경우는 59.4만 원이 줄어든다.
이 금액이 회복되려면 6년 동안 최저임금이 각각 10.1퍼센트씩, 12.4퍼센트씩 인상되어야 한다. 이만큼 최저임금이 오르지 못하면 정기상여금 200~400퍼센트를 받는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인상액은 크게 줄어든다. 이들로서는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을 아니 한만 못한 상황이 된다.[1]
‘최저임금 1만원’의 자중지란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1만원을 약속하고도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인상 억제를 초래하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밀어붙이게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의 모순 탓이다. [2]
문재인 정부는 노동자의 소득을 올려 소비를 늘리고 소비를 늘려 투자와 고용을 늘리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선순환은 기술과 제도가 혁신되는 자본주의 성장기에나 관찰되지, 지금처럼 성장의 동인을 찾지도 못한 채 자본생산성이 하락하는 국면에서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다. 더구나 수출재벌 중심의 원하청 수직구조 하에서, 기술혁신보다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의존하는 한국자본주의 체계 하에서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재벌로의 이익집중만 있을 뿐 소득의 낙수효과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1만원’이 자영업자들과 아르바이트, 중소사업장 사업주와 노동자들 사이의 갈등으로 치닫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벌 및 정부투자기관의 직접고용 확대, 은폐된 실업에 불과한 자영업 시장을 줄이려는 적극적인 구조개혁 방안 등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돌려막는 행태만 반복하게 될 것이다.
최저임금 ‘1만원’을 특권화하고 이에 매몰되면 민주노총의 최저임금 투쟁 역시 같은 곤란에 빠질 수 있다. 재벌의 직접 고용 확대, 적극적인 실업대책 등을 함께 요구해야 한다. 최저임금 투쟁을 가맹산하조직의 임단투와 연계하면서, 민주노총의 연대임금·연대고용 활로를 개척해야 한다. 임금삭감에 직면한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의 조직화, 특수고용 노동자에 다름없는 프랜차이즈 자영업자에 대한 조직화 및 연대 역시 적극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그래야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1만원’ 덫에서 헤어 나올 수 있다. ●
Footnotes
- ^ 노동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복리후생수당을 받는 노동자 비중은 2016년 기준 전체 83.4퍼센트나 되고, 고정상여를 받는 노동자 비중은 25.2퍼센트에 이른다(어수봉 외, 2017). 임금구간별로 수당 및 고정상여를 받는 노동자 비중을 봐야 그 영향 범위를 알 수 있지만, 사업체노동력조사 RAW데이터가 공개되지 않는 상태에서 이를 추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할 때,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소득분위는 최저임금 군에 속하는 1/5 소득 분위가 아니라 약간의 수당과 상여금을 받는 2/5 소득 분위임은 확인해 둔다(박준도, 2018). 이들의 임금을, 문재인 정부는 적게는 1퍼센트 포인트씩, 많게는 2.7~5.0퍼센트 포인트씩 삭감시켰다.
- ^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지 않았다면, 사업주들은 각종 수당을 기본급에 포함하든, 상여금을 정액수당화하든 했을 것이고, 그러면 임금체계는 일정하게나마 단순화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산입범위가 확대되면 수당을 기본급에 포함시킬 이유가 없다. 임금체계 단순화의 동인이 사라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