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건강과 사회
  • 2018/05 제40호

건강보험을 바로 세우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 채수용
‘문재인케어’(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를 둘러싸고 팽팽한 긴장감이 돌고 있다. 보수진영은 문재인케어로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날 것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의사협회(의협)는 문재인케어 폐기를 위해 집단휴진을 거론하며 강경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국민들이 저질 의료로 내몰리고 병원들은 줄줄이 파산할 것이라는 이들의 주장은 사실일까. 이 글에서는 문재인케어의 숨은 승리자가 누구인지 살펴보며 향후 사회운동의 대응 원칙을 제시하고자 한다.
 

문재인케어, 웃는 자는 누구인가

문재인케어는 민중의 의료비 부담의 가장 큰 원인인 비급여 문제(건강보험 미적용)에 대한 하나의 해법을 제시했다. 문재인케어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의 핵심 전략은 비급여 진료 3800여 항목을 급여화(건강보험 적용)하는 것이다. 건강보험으로 적용하기에 의학적 타당성이나 비용효과성이 부족한 항목은 예비급여로 분리해 기존보다 높은 본인부담률(50~90퍼센트)로 일단 급여화한 후, 3~5년 후 평가를 통해 지속 여부를 결정한다.

의협이 문재인케어에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렇다면 이득을 보는 자는 누구일까. 정부는 문재인케어를 통해 건강보험 보장율을 현재 63퍼센트에서 2022년 70퍼센트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한다. 정부는 이 정책을 위해 2022년까지 31조원을 들이겠다고 발표했다. 보장성이 높아지는 데 국민들이 마다할 리 없다. 그런데 이 돈은 누가 마련하며 어떻게 쓰이는 것일까. 건강보험 재정 문제는 수입과 지출을 조절하는 기술적 문제로만 바라볼 수 없으며, 첨예한 경제적·사회적 쟁점이 숨겨져 있는 한국 의료체계의 문제다. 문재인케어의 실상을 파헤쳐보면 그 이면에는 의료부문 자본들이 웃고 있다. 대형병원, 제약·의료기기 자본, 민간의료보험 자본의 이해관계가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의료비가 증가하는 이유

의료비는 꾸준히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고령화와 경제성장 등의 요인이 있다. 이 사실은 건강보험 재정적자 위기담론으로 이어진다. 증가하는 의료비에 맞춰 보장성을 한없이 높이다 보면 건강보험은 결국 파산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료비 지출에 더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의료의 공급부문과 연관된 요인이다. 의료기관의 특성(진료 제공 행태 등), 제공되는 의료의 내용(신의료기술 유입 등)과 같은 보건의료 제공 체계가 이에 해당된다. 한국은 전체 의료기관 대비 공공의료 비중이 병상 수 기준 9.1퍼센트, 기관수 기준 5.4퍼센트(2016년 기준)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공공의료기관이 턱없이 부족한 가운데 한국의 주요 지불제도인 행위별수가제는 의료기관들의 과잉진료를 유도한다.

특히 안전성·유효성이 확립되지 않은 고비용의 의약품·의료기술이 무분별하게 늘어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정부는 보건의료부문을 수익창출의 수단으로 여기며 규제 완화를 가속화했고, 이에 따라 신약·신의료기술이 쉽게 허가되도록 평가 기준도 약화시켰다. 보장성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과정에서 의학적 필요성이 불분명한 신약·신의료기술이 급여화되면 결국 불필요한 건강보험 재정이 지출되게 된다. 기존 치료보다 효과는 낫지 않으면서 비용은 더 높거나, 심지어 효과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도 이를 건강보험의 재정으로 보장해주는 것이다.

건강보험을 둘러싼 문제에는 첨예한 계급적 이해관계가 내재한다. 환자들의 병원 이용이 증가하면 병원 자본이, 신약·신의료기술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제약·의료기기 자본이 이익을 본다. 심지어 병원에서 고비용의 신약·신의료기술을 권함으로써 서로의 이해를 더욱 충족시킨다. 그리고 그간 제자리걸음이었던 낮은 보장성으로 꾸준히 덕을 봐온 민간의료보험 자본도 있다. 2017년 말 기준으로 무려 국민의 66퍼센트가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있다(금융감독원).
 

문재인케어, 자본을 위한 정책

이렇게 건강보험 정책에는 자본의 이해가 강하게 연관된다. 그러나 건강보험을 둘러싼 논쟁에서 계급적 이해관계는 줄곧 은폐된다. 예비급여는 비용효과성이 입증되지 않은 신의료기술을 급여대상으로 편입해주겠다는 것이다. 3~5년 시행 뒤에 평가 후 퇴출한다고 하지만 모든 제도에는 경로의존성이 있다. 한번 편입된 항목들은 퇴출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설령 퇴출하더라도 3~5년의 기간 동안 불필요한 건강보험 재정을 지출하는 셈이다. 심지어 보건복지부는 퇴출시킨다고 선언만 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전혀 내놓지 않고 있다. 이는 결국 건강보험 재정으로 제약·의료기기 자본을 지원해주는 꼴이다.

지난 4월 18일 보건복지부는 개발 이력이 짧아 임상적 문헌근거가 부족하더라도 사회적 요구도가 높은 유망 의료기술에 대해 사전 진입장벽을 더욱 낮추어 신속하게 의료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제약·의료기기 자본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이 강화되면 의료비 부담이 줄어들어 민간의료보험 시장은 축소되어야 맞다. 그러나 현재 민간의료보험은 오히려 문재인케어를 환영하고 있다. 예비급여는 본인부담이 50~90퍼센트가 되어 환자들에겐 여전히 부담이 높기 때문이다. 본인부담이 여전히 높아 실손보험시장은 축소되지 않으면서도, 국가가 행위량과 가격을 관리해주기 때문에 보험료 지출을 관리할 수 있다.

이렇게 보건의료산업 내 다양한 자본들이 더 많은 이득을 차지하기 위해 건강보험을 둘러싸고 각축을 벌이고 있으며 문재인케어는 이들의 요구를 충실히 들어주고 있다. 이러한 정책방향은 의료를 수익을 창출할 산업으로 바라보는 문재인 정부의 관점과 궤를 같이 하고 있으며 지난 박근혜 정부 정책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예비급여는 박근혜 정부가 4대 중증질환을 대상으로 이미 시행한 바 있다.
 

국가와 기업의 침묵

의료자본의 주머니로 들어갈 건강보험 재정은 어디서 올 것인가. 문재인케어로 건강보험 보장성은 일부 강화될 수 있겠으나, 결국 불필요하게 의료자본이 챙기는 만큼 노동자 민중에게 더 높은 부담이 전가될 것이다.

건강보험의 부담 주체는 노동자 외에 국가와 기업이 있다. 국가는 국민건강보험법 및 국민건강 증진법에 따라 해당 연도 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퍼센트를 건강보험에 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정부지원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0퍼센트 초반에 불과하다. 2007~2015년 동안 누적된 정부의 미지급 금액은 12조 3000억 원에 이른다. 해외의 국고지원률은 일본 38.4퍼센트, 대만 37.8퍼센트, 프랑스 52퍼센트 등으로 한국보다 국가 책임성이 매우 높다.

기업 부담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기업과 직장가입자는 5대5의 비율로 건강보험료를 내는데, 프랑스의 경우 기업과 직장인의 부담 비율이 7대3이다. 대만의 경우는 기업주가 60퍼센트, 노동자는 30퍼센트, 나머지 10퍼센트는 정부가 부담한다.

한국의 정부와 기업은 건강보험 재정을 너무 적게 부담하고 있다. 보장성을 강화하려면 당연히 재정도 늘려야 하는 게 맞지만 정작 ‘누가’ 더 부담할 것이냐는 문제는 논의되지 않는다. 심지어 문재인케어를 시행한다는 여당은 작년 12월 2018년 건강보험 국고지원액을 2조 원이나 더 낮게 편성해 통과시켰다. 문재인케어에는 건강보험 재정에서 국가와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 부담이 온전히 누구에게 돌아올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노동자 배제하는 정책 결정

건강보험 정책 결정과정에서 건강보험 가입자인 노동자민중의 목소리는 빠져 있다. 건강보험 정책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는 국민건강보험의 수입(보험료)과 지출(급여 범위 및 수가) 전반을 모두 결정한다. 하지만 건정심은 최소한의 민주성과 투명성마저 갖추지 못하고 있다. 회의 자체가 모두 비공개로 열리는 가운데 건정심위원 25명 중 실제 근로자단체(노동조합)가 추천하는 가입자 대표는 2명에 불과하다. 게다가 의료수가를 평가하는 전문평가위원회는 의료공급자가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결국 재정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의료공급자가 스스로 받게 될 수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해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지난 12월 의사들이 문재인케어를 반대하며 집회를 하자 문재인 정부는 곧바로 의정협의체를 꾸려 문재인케어를 두고 의사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건강보험료를 내고 혜택을 받는 가입자인 국민은 이 대화의 어디에도 초대받지 못했다. 
 

의료전달체계에 눈을 돌려야한다

의협은 문재인 케어로 비급여가 급여화되면 수입이 낮아져 의료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고, 의사들의 생존권을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병원협회는 조용하다. 의협은 의원급 의료기관, 즉 동네의원 개원의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반면, 병원협회는 주로 대형병원의 이해를 대변한다. 이 둘의 입장은 왜 다른 것일까.

현재 한국은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대형병원으로 환자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의협의 주장은 동네 의원이 대형병원과의 경쟁 속에 환자를 빼앗기는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의협은 잘못된 해결책을 쫓고 있다. 지금 동네 의원에게 중요한 것은 동네 의원, 중소병원, 대형병원으로 이뤄진 의료기관 간의 역할 정립이다. 하지만 2년 동안  계속된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는 올해 2월 의협 비대위의 거부로 무산되고 말았다. 일차의료를 강화할 기회를 스스로 박차버린 셈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김용익 이사장은 의사들에게 문재인케어로 인한 비급여 손실분만큼 저수가 영역에서 적정수가를 보상하겠다고 했다. 안그래도 건강보험 재정 상당액이 대형병원으로 쏠릴 상황이다. 그런데 그에 따른 의원의 불만을 덜어주기 위해 수가도 전부 올려준다는 것이다. 결국 국민들의 건강보험 재정 부담만 늘어나게 된다.
 

건강보험 정책의 원칙

‘문재인케어’는 국가와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기는커녕 제약·의료기기·민간의료보험 자본과 대형병원에 수혜를 주는 정책에 불과하다. 건강보험 정책은 공급부문을 통제하고 재정에 대한 국가와 기업의 부담을 확대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신약·신의료기술 평가가 강화되지 않으면 불필요한 의료행위에 낭비되는 재정만 늘어날 뿐이다. 게다가 보험료 인상분을 국가와 기업에 부과하지 않는다면 낭비되는 재원도 노동자의 호주머니로 채우는 꼴이 된다. 정부지원금이 법적 기준을 지켜야 함은 물론이다. 나아가 정부와 기업의 지원금 규모를 확대하는 논의가 필요하다. 의료공급자들이 수가와 건강보험 재정의 규모, 즉 보험료까지 결정하는 현재의 운영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 ●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향한 우리의 전망, 오늘보다
정기구독
태그
건강보험 민간의료보험 보장성 대형병원 의료체계 의료기기 비급여 의사협회 제약 의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