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보다
- 2018/05 제40호
사회적대화기구 개편방안 합의에 부쳐
4월 23일 노사정대표자회의는 새로운 사회적대화기구 개편 방안에 최종 합의했다. 핵심 내용은 △명칭 변경(노사정위원회→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주체 확대(10명→18명, 비정규직·청년·여성·중견기업·중소기업·소상공인 대표자 추가) △운영위원회는 노·사·정 위원으로만 구성(14명→7명, 상임위원+노2+사2+정2) △사회 각 계층 관련 위원회 설치(비정규직위원회, 여성위원회, 청년위원회 우선 설치) △의사정족수 강화(과반수 참석·2/3 찬성 → 2/3 참석·2/3 찬성) △의제별 위원회 5월 발족(경제의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위원회, 안전한 일터를 위한 산업안전위원회, 사회안전망 개선위원회, 노사관계발전 법·제도·관행 개선위원회) △업종별 위원회 설치 추후 결정 △구조조정 관련 역할 모색 등이다. 실무협의를 거쳐 4월 내 의원입법 형식으로 노사정위원회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될 것이다.
민주노총은 중앙집행위원회를 통해 △기존 노사정위 한계를 철저히 극복하는 완전한 ‘협의기구’ 위상 확립 △‘노동’이 들어가는 기구 명칭 △노사 중심성과 대표성에 기반한 참여주체 확대 △의제별, 업종별, 지역별위원회와 특별위원회 구성을 통해 초기업 중층적 교섭구조로 가는 지렛대 역할 확보가 가능한 ‘노사정위원회법 개정’을 기본 입장으로 정했다. 추가로 △구조조정 대책,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사회서비스 공단, 산별교섭, 노정교섭 추진, 공공특위 구성 등 현안문제 해결과 병행 추진 △‘노동기본권 위원회’ 설치를 요구하기로 했다.
한편 사회적대화기구 개편과 참여 문제 관련 조직 내 논의 절차는 3단계로 나눠 추진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1단계로 2018년 상반기까지 새로운 사회적대화기구 개편 관련 ‘법 개정’ 추진, 2단계로 2018년 하반기 ‘시행령 개정’을 통한 세부 운영방안 마련, 3단계 대의원대회에서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순이다.
새로운 사회적대화기구 개편 추진에 대한 기본 입장
민주노총이 새로운 사회적대화기구에 참여하는 일은 지난해 위원장 선거에서부터 쟁점이었다. 사회적 협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민주노조 운동이 가져야 할 전제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먼저 현재 노동운동의 주·객관적 조건을 고려하면 사회적 대화로 개혁적 방향의 협약을 맺기는 어렵다. 때문에 노사정 대화 자체보다는 전제조건으로서 산별교섭구조를 구축하고 노정교섭을 통한 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노동자운동의 전략적 목표 역시 대화와 협약 자체가 아닌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역전을 위한 교두보 확보여야 한다. 이를 염두에 둔 투쟁과 교섭방안이 입체적으로 수립되어야 한다.
사회적 대화는 전략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세력관계와 조직 내부 조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와 함께 기구의 위상과 성격, 개입 목적과 논의 의제를 분명히 확인하면서 민주적 토론을 바탕으로 신중히 추진해야 한다.
4.23 노사정대표자회의 합의에 대한 우려
4.23 합의는 새로운 사회적대화기구의 큰 골격을 담고 있다. 그런데 그 절차와 내용에 문제가 있다. 우선 절차적으로는 충분한 조직적 논의와 동의가 부재한 가운데 정부·자본·한국노총이 정해놓은 일정에 끌려가듯 합의했다. 내용에서도 최소한의 ‘협의기구’로서의 위상도 명확히 정립하지 못했고, 노정교섭-산별교섭 등 중층적 교섭 실현(또는 최소한 실현 로드맵)과 연동시키지도 못했다. 민주노총 집행부의 총체적인 투쟁-교섭 전략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기구 운영원칙의 쟁점, 즉 합의(기구)인지 협의(기구)인지가 명확히 정리되지 않았다. 향후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현행 노사정위원회는 형식적으로는 대통령 자문기구이며 내용적으로는 (정책) ‘협의’기구다. 하지만 실제 운영은 정부 정책 관철을 위한 ‘노사정 3자 합의’를 강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 따라서 새로운 사회적대화기구 개편 과정에서는 기존 노사정위원회의 ‘합의주의’의 폐단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예방하고 극복할 것인가가 핵심 과제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는 ‘협의기구’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4.23 합의문에 관련 내용은 없다. 대신 노사정대표자회의 이후 문성현 노사정위원장이 언론브리핑에서 ‘충분히 협의하되 책임 있는 결정’을 하는 기구(합의지향 협의기구)라 언급했을 뿐이다. 하지만 ‘합의’에 집착하지 않는 충실한 ‘협의’ 원칙은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다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현행 노사정위원회도 형식적으로는 ‘합의지향 협의기구’다. 단지 실제 운영할 때 합의를 강요할 뿐이었다.
따라서 관련법 개정 과정에서 새로운 사회적대화기구의 운영 원칙을 ‘협의기구’로 명시하고, ‘합의’가 필요할 경우 별도의 교섭틀과 프로세스를 통해서 추진된다는 점이 구체적으로 반영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노사정위원회의 ‘합의주의’의 폐해는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다. 사회적대화기구 자체의 불안정성도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노사정 간 불신이 깊고, 노사단체 조직률이 낮으며, 여전히 기업별 교섭 중심이며 산별교섭 등의 초기업단위 교섭은 제도적으로 막혀있는 한국 노사관계의 주객관적 조건을 감안하면, 당분간 사회적대화의 수준은 ‘협의’를 넘어서기 어렵다. 산업별 수준에서조차 제대로 된 교섭이 진행되지 않는데, 국가 수준의 교섭과 합의를 기대하는 건 비현실적이다.
상대적으로 큰 논란 없이 합의한 본회의 구성 방식도 쟁점이다. 노동자 대표로 조직노동을 대표하는 양대노총 외에 여성, 청년, 비정규직 대표를 포함한다는 부분이다. 양대노총이 제청권을 갖는다는 점에서 문제점을 보완하기는 했다. 하지만 조직노동, 특히 정부·자본에게는 가장 껄끄러운 상대인 민주노총을 상대화한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물론 민주노총이 이들 ‘취약계층 노동자’를 제대로 대변하고 있는지는 반성할 부분이다. 그렇다고 노동조합이 아닌 누군가가 노동자를 대표할 수 있지도 않다. 지금 합의된 본회의 구성은 조합원을 대표하고, 위임을 받아 대화에 임하고, 그 결과에 대해 조합원의 통제를 받고 책임을 지는 총연합단체의 대표성을 상대화할 우려가 크다.
업종별 위원회 설치는 이번 4.23 합의에서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못하고 추후 대표자회의 결정으로 미뤄졌다. 하지만 향후 우리나라의 집단적 노사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면밀한 평가가 필요하다. 민주노총 김명환 집행부는 사회적대화기구를 ‘초기업 집단 노사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전술적으로 활용’하겠다며, 이를 위한 핵심경로로 ‘업종별 위원회’를 제시했다. 하지만 업종별위원회가 어떻게 산별교섭 활성화의 ‘지렛대’가 될 수 있는지 충분히 설명하진 않았다. ‘지렛대 역할’이 어떻게 가능한지 해명되지 않을 경우 의도와는 달리 노사 산별교섭 활성화가 지체되고, 모든 교섭·협의가 사회적대화기구로 몰릴 수 있다. 이는 집단적 노사관계 발전이 정부 역할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효과를 낳게 된다. 나아가 사회적 대화와 산별교섭을 연동시킬 경우, 향후 정세 변동에 따라 사회적 대화 체제가 불안정해지면 산별교섭도 함께 파탄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노사정 3자대화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노정교섭-산별교섭과 노사정 3자 대화를 병행 추진하는 중층적 교섭전략이 다시 한 번 강조될 필요가 있다.
특히 정부가 실질적인 사용자인 공공부문의 경우, 대정부 직접교섭을 선도적으로 실현해야 한다. 사회적대화기구 내에 공공부문 관련 위원회를 구성하더라도 사회적대화기구 산하 위원회가 정부와의 노정교섭(협의)기구를 대체할 수는 없다. 오히려 사회적 대화기구 산하 위원회에서는 공공부문의 노정교섭(협의)기구 구성방안을 논의하고, 그 결론에 입각해 별도의 공공부문 노정교섭(협의)기구를 구성하는 것이 맞다.
‘노동존중’ 노동정책의 구조적 한계
2018년 들어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 정책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향후 후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비록 공무원노조 설립 신고증을 교부했지만 △특수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전교조·교수노조 등 가장 기본적인 단결권 보장 조치는 정부 출범 1년이 다 되도록 이행되지 않고 있다. 반면 최근 핵심 노동현안인 노동시간, 최저임금 산입범위, 구조조정,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등에는 심각하게 노동이 배제되고 있다.
노동정책이 표류하는 이유는 정부가 표방한 소득주도성장의 근본적인 한계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는 ‘유연안전성’을 말하며 이전 정권과 비슷한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한 성장동력 확보정책으로 기울고 있다. 정부의 2018년 경제정책방향에 따르면 3대 전략은 △일자리·소득주도 성장 △혁신 성장 △공정경제다. 일자리 증가는 최종적으로 경제성장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거시경제 정책이 취약한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주도 성장이라는 모순적 과제를 표방하며, 정부가 처한 ‘기득권 침해 없는 구조적 개혁’이라는 곤란함을 피해가려 한다. 그 결과 임금격차 등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는 부차적인 과제로 취급되고 임기응변식 정책이 난무한다. 내용에 있어서도 ‘최저임금 인상 연착륙 유도’ 등 출범 당시 ‘최저임금 1만원 단계적 실현’에 비해 매우 후퇴했다. 노조할권리 보장, 초기업단위 교섭 활성화 등 핵심 사항도 누락되어 있다. 심지어 집단적 노사관계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사회적대화기구 정비’는 ‘혁신성장’을 위한 사회 인프라 구축이라는 범주로 제시한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노조할권리 보장을 포함한 노동정책을 철저하게 경제에 종속적인 변수이자, 재벌대기업의 낙수효과에 기대는 것 이상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동친화적 구조개혁을 위해 노동계에 힘을 싣기보다 재벌대기업과의 적당한 타협만을 바라고 있다는 얘기다.
투쟁과 교섭전략의 재정비가 시급
민주노조 운동은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음을 냉철히 인식하며 국면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자칫하면 문재인 정부의 일정과 기조에 끌려 다닐 수 있다. 민주노총의 전체적인 투쟁과 교섭전략을 재정비하고, 새로운 사회적대화기구도 총체적인 투쟁·교섭 전략의 맥락에서 위상과 역할을 재구성해야 한다.
첫째, 사회적 대화를 통해 얻고자 하는 바에 대한 충분한 준비와 조직 내 합의가 필요하다. 현재 민주노총은 산별교섭을 포함하여 산업·업종별 중층적 협의구조 구성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보인다. 산별 노사관계 형성은 매우 중요한 과제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결정적인 통로는 아니다. 자칫 정규직-기업별 노조를 중심으로 한 현재 노사관계를 집단적으로 재편하는 것에 그칠 수도 있다. 지금 노동자계급의 분할과 양극화를 지양하기 위해서는 중소영세, 비정규직 노동자가 초기업 노동조합에 가입하도록 보장하고, 초기업 수준에서 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까지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계획 없이 조급하게 대화 테이블에 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둘째, 요구의 내용과 더불어 사회적대화기구 개편과 참여와 관련해서도 충분한 조직적 논의와 동의가 필요하다. 노정·노사 산별교섭 뿐만 아니라 노사정 3자 대화를 무조건 거부할 수는 없겠지만, 사회적대화기구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다. 또한 사회적대화기구라는 형식적 틀 구성에 매몰되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사회적대화기구의 성격과 운영원칙, 노정·노사 산별교섭 추진 등 중층교섭 실현과의 관계, 세부운영체계 등 핵심 쟁점에 대한 조직적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상대방이 제시한 일정에 떠밀리기보다는 충분한 조직적 논의와 동의가 우선 되어야 한다.
셋째, 최저임금, 구조조정, 비정규직 문제 등 문재인 정부의 표리부동한 태도에 강력히 대응하고 노동자 내부의 단결을 도모해야 한다. ‘노동배제 노동정책 규탄’ 기조 아래 전조직적인 투쟁태세를 정비해야 한다. 특히 현안으로 떠오른 구조조정, 공공부문 비정규직, 삼성 노조탄압·노조할권리 보장 등 현안에 대한 투쟁과 교섭틀을 시급히 정비해야 한다. 현재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가 논의 중인 하반기 총파업·총력투쟁을 위력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사회적 협의는 노조의 투쟁력 없이는 아무 의미가 없다. 즉 협의에 앞서 조직화와 투쟁, 사회운동으로 확대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ILO 협약 비준·노조 할 권리를 전면적으로 주장해야 한다. 이를 중심으로, 공공부문 및 민간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최저임금, 구조조정 등 핵심 현안을 결합시켜 실질적인 투쟁을 조직할 수 있을 것이다.
새 정부 초반 노동정책 방향에 개입하기 위해 사회적 대화 관련 논의를 빠르게 추진하는 민주노총 집행부의 취지도 이해된다. 그러나 조급하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어느 나라든 사회적 대화가 성사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민주노총의 주체적 준비는 취약하고, 노동시간·최저임금 산입범위 등 쟁점도 산적하다. 서두르는 사이 ‘노동자의 단결’이라는 민주노조 운동의 대원칙이 사라질까 두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