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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 제40호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 성취와 과제

  • 안길정
지난 2월, 국민의 관심을 모은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의 활동이 일단락되었다. 특조위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헬기사격이 있었는지를 조사하는 팀(헬기팀)과 광주를 표적으로 공군 전투기가 폭탄을 장착하고 출격할 준비를 갖추었는지를 조사하는 팀(전투기팀)으로 나뉘어 조사활동을 벌였다.  그 성과와 앞으로의 과제를 짚어보았다.
 
특조위는 국방부 훈령 2070호로 제정된 ‘518민주화운동 헬기사격 및 전투기 출격대기 관련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 설치·운영에 관한 규정’에 근거하여 설립되었다. 특조위의 조사위원은 위원장 포함 총 9명의 민간위원으로 구성되었으며, 조사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국가기록원·검찰·경찰에서 파견된 공무원, 육군과 공군의 항공·조종·감찰·헌병·기무·법무에서 파견된 현역 군인들, 그리고 순수 민간 조사관 등 총 33명의 조사관과 군인이 참여하였다.
 
(2018.5.17.SBS 8시 뉴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측근인 민정기 전 비서관은 다시 한 번 헬기 사격을 부인하고 나섰다.
 

조사의 수행 방식

특조위는 국방부 별관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출동부대 방문, 출동군인 면담, 관련자료 수집 및 분석을 통해 조사를 수행했다. 조사기간은 5개월(2017년 9월 11일~2018년 2월 10일)이었다.

조사과제는 위원회가 선정하여 조사관에 할당하고, 그 결과를 의결하는 방식으로 추진되었다. 조사대상 부대의 선정은 1980년 당시 광주에 출동한 대대급 이상 약 140개 부대였으며, 이들 부대를 조사관들이 약 40일간에 걸쳐 현지를 방문하고 관련 자료를 색출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실행하였다. 그리고 면담은 당시 출동한 군인(사병·장교) 전반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조사관이 육군본부 인사처나 전우회 등을 통해 인적사항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수행하였다.
 

새로 발굴된 자료

특조위가 이룩한 성과 중의 하나는 방대한 기초자료의 확보였다. 관련자료를 소장한 기관은 육군기록정보단, 군사연구소, 합참, 기무사, 정보사, 국가기록원, 서울지검과 군검찰, 국정원 등이었다. 그밖에 항공학교, 행정학교, 상무대, 2군사령부, 특전사령부 등도 조사관들이 직접 방문하여 대출해 오는 방식으로 자료를 수집했다. 필자는 헬기팀에 소속되어 조사를 수행했는데, 기억에 남는 자료는 다음과 같다.
 
  • 부대사 _ 장성 상무대에 소장된 《1980년 기갑학교사》는 1980년 5월 21일 08:00시에 진돗개 하나가 전교사지역에 발령되어, 자위권 발동 이전에 군인들에게 개인당 실탄 90발 지급된 사실을 기재하고 있다.
  • 합참자료 _ 5·18의 핵심쟁점들을 발췌하여 군의 입장에서 대응논리를  만든 『현안문제』는 문답식 교재이다. 511위원회에서 작성했다고 믿어지며, 왜곡 논리의 원천이다.
  • 기무사 자료 _ 국가기관 소장 자료 중 5·18 진상규명의 원천이 되는 일급자료로, 이번에 완본 57권(84책)이 확보되었다. 여기에는 511위원회(대책반)의 활동, 암매장, 발포경위, 사망자의 숫자 등에 관한 기록이 들어있다.

 

특조위가 성취한 점

먼저 성취를 보겠다. 지난 특조위의 가장 큰 성과는 무엇보다 국민의 관심이 쏠린 5·18관련 의혹사건에 대해 국가기관이 공식 보고서를 채택하고 국가의 공식입장을 천명했다는 데 있겠다. 헬기사격의 경우 지난 1995년 7월 검찰의 수사의지 결여로 인해 수많은 목격자 진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소권 없음’ 결정으로 사실상 부인되었는데, 이번 특조위는 그것을 뒤엎었다. 이것은 전두환 노태우 등의 내란사건 재판 시에 사법부의 심판에서 빠진 주제에 관한 공식 준거를 제시하였다는 의미가 있다.

둘째로, 5·18진상과 관련된 민간 목격자들의 증언이 국가기관에 의해 공식기록으로 확보되었다는 점이다. 헬기사격은 발포명령과 표리관계를 지닌 중요한 사안으로 진상규명의 핵심과제와 직결되는 의의를 지닌다.
 
(2018.5.17.SBS 8시 뉴스)
 

특조위의 미진한 점

지난 특조위의 활동은 조사의 한계도 명확히 보여주었다. 조사의 대상이 된 면담 군인들은 대부분 헬기 사격사실을 알지 못한다며 헬기의 무장사실조차 시인하려 들지 않았다. 조사관들은 방대한 자료를 확보하고서도 기간의 부족으로 이를 효과적으로 구사하여 조사대상자들의 부인행위를 반박하지 못했다.

아울러 헬기사격에 대해서 보고서는 ‘사격이 있었다’고 인정하는 위원 다수의 견해를 공표하였으나, 아쉽게도 어느 부대의 어떤 헬기가 언제 출동하여 사격을 하였는지 특정하지 못했다. 이런 탓으로 헬기사격을 본 목격자들의 증언들이 다수 확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부인하고 왜곡하는 세력들의 책동을 일소할 결정적 증거를 확립하지 못했다.

또 전투기 출격대기의 경우는 기밀 해제가 안 된 자료가 많은 상황에서 과연 이 과제가 현실적으로 규명 가능한 것이었냐는 지적이 있다. 그래서 제기된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기보다는 잠재적 불씨를 남긴 게 아닌가, 일사부재리의 덫만 설정하고 만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돌이켜보면 진실 규명은 흔들릴 수 없는 근거 위에 확립되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래야 어떤 정권이 들어서건 진실의 부인과 왜곡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진한 진상 규명이 올 9월부터 가동될 특조위에서 보완되기를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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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광주 518 특조위 헬기 전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