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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 제40호

소비가 성평등을 향한 실천이 될 수 있을까?

《페미니즘을 팝니다》 서평

  • 유다해
2014년 엠티비 비디오뮤직 어워즈 공연에서 비욘세는 나이지리아 출신의 페미니스트 작가 치아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글을 삽입한 노래를 부르며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했다. 그 해 11월 엠마 왓슨은 유엔에서 성평등에 관한 연설을 한 뒤 “페미니즘에 새로운 생명력을 선사한 엠마 왓슨”과 같은 찬사를 받았다.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인 반감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적어도 이제 페미니즘은 미국 주류 사회와 유명인, 소비자들에게 멋지고, 재미있고,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페미니즘을 팝니다》는 이런 경향을 ‘시장 페미니즘’으로 정의한다. 이 책의 첫 번째 장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페미니즘이 대중문화에 영향을 미쳐 ‘방송 페미니즘’을 탄생시킨 과정을 보여주고, 두 번째 장에서는 아직 완수하지 못한 과제들을 다룬다.
 


소비도 성평등을 위한 실천이 될 수 있을까?

‘성인 남녀들에게 “소녀처럼” 달리고, “소녀처럼” 싸우고, “소녀처럼” 공을 던져보라고 지시한다. 사람들은 히죽히죽 웃으며 매우 과장된 동작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손목을 돌린다. 다음으로 실제 소녀들에게 달리고, 싸우고, 공을 던져보라고 지시한다. 소녀들은 선입견과 달리 아주 힘찬 동작으로 지시를 수행한다. 광고는 소녀들의 자존감이 사춘기에 급격히 하락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소녀처럼”이라는 말의 뜻을 다시 생각해보라고 호소한다.’

나는 위의 영상을 감동적으로 본 적이 있다. 이것은 올웨이즈 생리대 광고다. 나이키는 1995년부터 <나에게 운동을 시켜준다면>이라는 감성적인 광고를 통해 스포츠는 남자들의 취미라는 통념에 대해 반박했다. 20세기 초 아메리칸 타바코 컴퍼니는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흡연하는 것이 명시적으로 금지되자 여성들을 고용하여 뉴욕 시내 5번가에서 “또 하나의 성적 금기를 깹시다!”라는 구호를 외치게 했다. 하지만 ‘여권 신장 광고’는 여성에게 어떤 상품을 판매하려 하면서도 그 판매 행위와 실제 페미니즘을 결합하지는 않는다. 나이키 광고는 소녀들이 스포츠에 참가할 기회가 왜 적은가에 대해 여성의 권리의 문제로 접근하지 않는다. 이러한 광고를 찬양하고 올웨이즈 생리대를 쓰고,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담배를 핀다고 해서 실제 여성의 현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한국에서도 페미니즘이 유행하면서 뱃지, 컵, 티셔츠, 가방 등 다양하고 예쁜 페미니즘 굿즈가 페미니스트들의 취향을 만족시켜주고 있다. 페미니즘의 구호를 내가 사용하는 물품들을 통해 표현하는 것은 하나의 작은 실천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성평등을 위한 실천이 소비에 그친다면 페미니즘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도 시장 안에 갇힌다.
 

여주인공 중독 : 페미니즘과 할리우드

 
2015년에 나온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극 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 여전사 퓨리오사와 총을 몸에 매달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할머니 조상들 덕분에 곳곳에서 “올해의 가장 페미니즘적인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일단의 남성 블로거들은 이 영화가 페미나치의 프로파간다를 숨기고 있다며 불매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페미니즘 영화에 미달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많은 반박 기사와 블로그 포스트들이 이어졌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페미니즘 영화’가 여성에 대한 노골적 비하와 여성을 착취하지 않는 모든 작품에 대한 칭찬으로 통용된다는 것이다. 고작해야 여성의 존재를 ‘인정’하는 영화에 대해서 ‘올해의 페미니스트 영화’로 칭송하는 것은 페미니즘을 가치관, 윤리, 정치의 집합체가 아니라 소비할 가치가 있는 작품인지 아닌지에 대한 평가로 바꿔버린다.
 

연예인 페미니즘

2014년부터 미국에서는 유명한 영화배우, 코미디언, 가수들이 앞 다투어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비욘세와 엠마 왓슨의 연설은 그 중 가장 주목을 받은 일이었다. 물론 연예인의 페미니즘 발언이 항상 성공하지는 않았다. 할리우드에서 여성 등장인물이 어떤 취급을 받는가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가 커리어에 상당한 타격을 받은 배우도 있다. 이는 연예인들이 페미니즘의 내용에 대한 구체적 주장보다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밝히는 정체성 선언에 머무르는 이유의 일부를 설명해준다. 엠마 왓슨이 주목을 받았을 때에도 언론은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성취하려 하는가보다는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공개한 그녀의 ‘용기’에 초점을 맞췄다. 성평등을 위해 노력하자는 연설의 핵심 내용은 자취를 감추고 ‘페미니즘의 이미지는 당신들의 생각만큼 무서운 게 아니다’라고 남자들을 설득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 현재 어떤 여성이 페미니스트로서 유명해지는 것은 그들이 다른 페미니스트들로부터 지도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주류 매체가 그들에게서 시장성 있는 이미지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연예인은 사회적 문제에 매력적인 얼굴을 부여하지만 “우리가 연예인 페미니스트의 빛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동안 우리는 전 세계 여성들이 계속해서 직면하고 있는 실제적인 불평등을 외면하는 셈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

페미니즘이 등장했을 때부터 페미니즘에 대한 반작용 또한 역사적으로 존재했다. 많은 영화와 언론 기사에서 여성해방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을 표현했다. 여성들이 획득한 지나친 자유가 괴물을 양산한다거나 독립적인 여성들은 나중에 아이도 없고, 외롭고, 사랑에 굶주려 있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되리라는 식이었다. 한편 구조적인 불평등을 개인의 실패로 돌리는 신자유주의의 부상은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의 비옥한 토양이었다. 1980년대 페미니즘 운동에서는 인종과 계급의 정체성이 젠더와 교차하면서 여성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논의가 이뤄졌는데, 대중매체는 이러한 논의를 여성의 해체를 주장하는 포스트페미니즘과 더불어 여성들 간의 다툼으로 부각했다. 언론의 반작용은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며 페미니즘을 공격한다. 
 

사회를 변혁하는 페미니즘

대중문화 영역에서 페미니즘이 주류가 되었다는 미국과 한국의 현실은 다르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여전히 페미니즘과 페미니즘에 대한 적대감의 각축장에 가깝다. 그러나 강남역 살인사건, 미투운동 등을 거치면서 페미니즘은 점점 더 그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했고, 여성에게 돼지 발정제를 먹이려 했다는 사실을 저서에 담아 논란을 일으켰던 홍준표마저 미투운동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과 같다. 여성을 차별하거나,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페미니즘은 여성차별적인 말을 하지 말자는 착한 캠페인이 아니다. 여성이 여전히 저임금의 하급 노동을 주로 담당하고, 여성의 몸을 인구정책의 대상으로만 보며 통제하는 사회는 남성들과 사회가 젠틀한 태도를 갖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는 여성차별이라는 대지 위에 세워진 성이다. 새로운 인구를 낳아 기르고, 일상적으로 재충전하고, 늙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 데 여성의 노동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사회는 여성의 역할을 가정을 지키는 데 한정하고, 가사·돌봄 노동을 저평가하고, 출산과 낙태, 육아를 위해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있다. 페미니즘은 이러한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꿈꾸는 사상이자 운동이다. 페미니즘의 관심은 훨씬 넓고 깊어야 하며, 여성의 삶에 더 가까이 있어야 한다. 여성이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고 노동할 권리, 출산할 권리와 출산하지 않을 권리, 가사·돌봄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는 한편 이를 사회가 함께 책임지기 위한 싸움을 위해 페미니즘은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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