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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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5 제40호

만성야근과 압축야근 그리고 과로자살

웹디자이너 과로자살을 통해 본 오늘날 노동시간 체제의 특징

  • 박준도

에스티유니타스의 과로자살과 월 69시간 포괄근로계약

2018년 1월 3일, 에스티유니타스의 웹디자이너가 자살했다. 그녀는 원래 우울증이 있었지만 그들 모두가 그렇듯, 그녀도 정상적으로 직장생활을 했고 활발하게 사회생활을 했다. 거의 나았다는 주치의의 소견을 받고 에스티유니타스에 취업했다. 그리고 2년 8개월 후, 이젠 더 이상 일어나고 싶지 않다며 자살했다.

그녀가 2015년 에스티유니타스에 입사하면서 맺은 근로계약서를 보면 연봉 중 36.1퍼센트의 금액이 연장 및 야간수당 명목으로 할당되어 있다. 월 69시간 연장근로수당과 월 29시간 야간근로수당이 연봉에 포함되어 있다는 식으로 계약을 맺은 것이다. 전형적인 정액수당형 포괄근로계약이다. 
 
이렇게 계약을 맺게 되면, 매월 69시간 이하의 연장근로수당에 대해서는 사업주가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연장근로수당이 이미 지급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 말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월 69시간까지는 사업주가 연장근로를 시켜도 추가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월 69시간 연장근무” 회사는 이제 웹디자이너의 노동력 사용에 대한 자유이용권을 가졌다. 
 

야근을 전제로 한, 압축적인 개발 계획

이런 근로계약을 맺게 되면 야근은 당연시된다. 관리자나 경영진이 디자인 개발 계획을 짤 때, 주 40시간이 아니라 평균 16시간(=69/4.35) 연장근무를 포함시킨 개발 계획을 짜기 때문이다. 
 
(왼쪽) 디자인 개발 일정이 어떻게 짜여지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2015.11.6. 故 장민순의 카톡 기록 중)
(오른쪽) 입사 1년, 만성적이면서도 압축적인 야근을 한 이후, 고인은 '나아가던 우울증이 악화'되고 있다며 괴로움을 호소했다. (2016.6.26. 네이트온 기록 중)
 
평균이기 때문에 급하면 이번 주에는 20시간 연장근로를 시켜도 문제가 없다. 다음 주에는 12시간만 연장근로를 시키면 수당을 더 지급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루 14시간 일을 시켜도 다음 날은 10시간만 근무시키면 역시 문제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업주는 아무 때나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내일 모레까지 기획안 다시 작성해라” “나 같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이걸 끝낸다.” 연장근무와 야근을 압축적으로, 탄력적으로 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루 12시간 근무, 압축노동

매월 69시간까지 연장근로를 시킬 수 있는 자유이용권을 가지고 있다 보니, 법이 정한 연장근로제한(근로기준법 53조), 즉 근무일 기준 12시간 제한한도를 넘기는 건 부지기수다. 2015년 5~7월 입사 초기에는 한 주도 빠짐없이 12시간 제한한도를 넘겼고, 2016년 1월과 3월도 마찬가지였다.
 
(그림1) 매월 연장근무제한 위반율
 
(그림2) 매월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 비중
 
동시에 매월 69시간을 연장근로 시킬 수 있기 때문에, 주 단위 일 단위 연장근무는 매우 탄력적으로 가능하다. 주 단위로 얼마나 신축적이면서도 압축적으로 연장근무를 시켰는지는 주 단위 연장근무제한 위반율(그림1)로도 나타난다. 에스티유니타스가 웹디자이너를 일 단위로 얼마나 압축적으로 일을 시켰는지는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 비중(그림2)에서 나타난다. 

재직기간 동안 5일 중 하루(18.0퍼센트)를 12시간 넘겨서 일했고, 입사 초기에는 특히 심했다. 5일 중 3일 이상을 12시간 이상 일했다. 만성적이면서도 압축적으로 야근을 한 것이다. 이렇게 입사초기부터 2016년 9월까지 만성야근, 압축야근을 반복하는 사이 고인의 우울증은 악화되기 시작했다. 
 

2017년, 다시 시작된 압축야근

2016년 10월 이후 야근은 많이 줄었다. 2017년 연봉 재계약을 하면서 연장근로수당은 월 52시간 만 포함되는 형태로 재계약하기도 했다. 그러다 2017년 4월 디자인혁신본부 온라인디자인실로 오면서 야근은 다시 늘기 시작했다. 만성적이라기보다는 압축적이었다. 야근은 5월과 11월, 특정기간에 집중됐다.  

건강이 악화된 상태에서 5월에 다시 시작된 압축 야근(연장근무 위반율 40퍼센트, 12시간 이상 근무 비율 11.8퍼센트), 이에 더해 작업을 다시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면서 고인은 공황장애 증상을 호소한다. 동료들과 상사에게 우울증을 호소하며 9월 한 달간 휴직을 하게 된다. 
 
(왼쪽) 2017년 5월 몇 날 며칠을 야근하며 만든 작업이, 기획 단계에서 엎어졌다. 윗선에서 방향을 바꾸라 한 것이다. 일을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다시 또 야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공황장애 증상을 호소한다. (2017.6.8. 카톡 기록 중)
(오른쪽) 4명 분의 일을 하면서 완전히 지쳤음을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고인은 사직 압박으로까지 여겼다. (2017.11.24. 카톡 기록 중)
 
10월 중순에 복귀한 뒤 고인은 훨씬 더 심한 압축야근을 하게 된다. 연장근로한도를 넘긴 비중도 40.0퍼센트로 늘어났고, 무엇보다도 하루 12시간 근무 비중이 늘어났다. 27.3퍼센트에까지 이른 것이다. 공황장애 증상을 호소하던 5월보다 더 심각하게 압축야근을 한 것이다. 4명분의 일을 한꺼번에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컨펌 대기 및 까기, 주말 독후감 쓰기, 채식주의자에게 육식 강요 등 직장 내 괴롭힘까지 있었다. 

12월 초 겨우 비투비(B2B: 기업 간 거래) 업무를 마무리하고 난 뒤, 고인은 완전히 탈진했다. 잠도 못 자고, 못 일어나기도 하고, 안 하던 지각도 했다. 그렇게 보름이 지난 뒤 『스콜레』 브랜딩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1월 14일 목요일 브랜딩 발표가 있을 예정이었고, 다시 시작될 야근을 앞두고 웹디자이너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압축 야근을 규제하기 위한 노동시간 단축방안

에스티유니타스의 웹디자이너 과로자살 사건은 업무 압박, 직장 내 괴롭힘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정확한 원인이 보인다. 하지만 에스티유니타스의 노동시간 재조직 양상은 그 자체로도 문제다. 첫째, 포괄임금제 등 장시간 노동체제는 그 자체로 일상적인 장시간 노동 뿐 아니라 매우 신축적인 근무환경까지 종용한다는 사실이다. 둘째, 일일단위의 압축적인 노동, 극단적인 신축적 노동으로 주 단위의 노동시간 제한 규제를 회피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동시에 한국의 노동시간 체제가 상당히 특이한 양상으로 변이되어가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만성적 장시간 노동체제가 압축적 장시간 노동체제로 이동하고 있다는 정황 말이다. 

이런 변이가 가능한 것은 우리나라의 노동시간 규제가 일일단위로는 없기 때문이다. 전방규제로든 후방규제로든[1] 우리나라는 하루 노동시간에 대한 제한규정이 없다. 소정근로시간 8시간에 대한 규제만 있을 뿐 하루 연장근로의 한도가 없다. 그래서 하루 12시간 이상 압축적으로 일을 시킬 수 있게 된다.

이는 심각한 제도적 허점이다. 이제까지 노동시간 단축 운동의 불균형이기도 하다. 독일과 프랑스는 하루 노동시간에 대한 제한 규정이 있는 상태에서 노동시간을 신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제도들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일일 노동시간에 대한 규제가 없는 상태에서 노동시간을 신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제도들이 도입되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는 매우 파괴적인 압축적 노동 재조직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면 과로사와 과로자살의 행렬은 멈추지 않는다. 일일노동시간 규제 및 단축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2]
 

Footnotes

  1. ^ 근로시간의 규제 방법에는 근로시간 자체를 제한하는 방식(전방규제형), 일간 또는 주간 최소휴식시간을 정함으로써 역으로 하루의 최고근로시간의 한도가 정해지는 방식(후방 규제형) 및 두 가지를 병행하는 방식(쌍방향 규제형)이 있다. <근로시간법제 주요 쟁점의 합리적 개편방안>, p.328
  2. ^ 이에 대한 대책위의 예비적 결론은 다음과 같다. 하루 8시간, 주 40시간 노동을 정착함(칼출근, 칼퇴근)과 동시에 일일 최대노동시간이 규제되어야 한다. 연장근로 주 12시간 뿐 아니라, 일일 3시간 단위로도 규제되어야 한다. 아울러 노동시간에 대한 규제는 임금보상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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