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특집
  • 2018/05 제40호

청와대가 다 해결해드립니다?

인터넷 정치와 한국의 정치위기

  • 박상은
취임 1년,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고공행진 중이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분석결과,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년차 마지막 4분기 지지율은 68퍼센트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높다. (김대중 63퍼센트, 김영삼 59퍼센트, 박근혜 54퍼센트(한국갤럽)) 김기식·드루킹 사건으로 야당이 맹공을 펼치고 있지만 지지율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지지율만 높은 것이 아니다. 모든 의제를 청와대가 주도한다. 북한과의 외교는 물론, 포괄임금제나 최저임금과 같은 노동문제, 낙태죄 폐지와 같은 여성문제도 청와대의 입장이 전면에 부각된다. 개헌안도 대통령이 발의했다. 야당, 공무원은 물론, 일반 시민들도 청와대만 바라본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처럼 말이다.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국민청원게시판

촛불 이후 폭발적이진 않지만 노동조합이 곳곳에서 조직되고, 재벌의 갑질에 대한 고발이 이뤄지고, 미투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곳이 있으니 바로 문재인 정부 취임 100일을 맞아 청와대 홈페이지에 개설한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이다. 청원 동참자가 30일 동안 20만 명을 넘으면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가 답변을 하게 된다. 포털과 SNS계정을 통해 로그인 한 뒤 댓글을 달면 청원에 동참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출범 100일 대국민 보고’에서 “국민들은 간접 민주주의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정부의 정책도 직접 제안하는 직접민주주의를 국민께서 요구하고 있다”고 발언하면서 이 게시판을 개설했다. 

반응은 폭발적이다. 4월 24일 13시 현재, 청와대 누리집의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이하 국민청원게시판)에는 누적 17만 여 건의 청원이 이뤄졌다. 이 중 31건이 20만 명을 넘겨 답변이 되었거나 답변대기중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청와대 홈페이지 캡쳐)

시민들은 왜 청와대에 직접 청원을 할까. 첫째, 청원방법이 쉽다. 국회청원은 국회의원을 통해서 법안을 구성해 청원을 해야 하지만,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누구나 제안사항을 올리고 포털에 댓글을 달 듯 청원에 동참하면 된다. 인터넷 서명운동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둘째, 국회와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광범위한데 비해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 촛불로 만든 대통령이면서, 불통과 권위주의의 상징이었던 이전 정부와는 달리 ‘친절한 청와대’를 내세우는 청와대에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청원게시판이 “복잡한 사회문제들이 ‘클릭 한 방’과 ‘대통령의 말씀’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오해를 유도”한다거나 “찬반을 토론하고, 근거들을 검토하는 과정을 삭제”한다는 지적도 있다. 맞는 말이다. 토론을 통한 의견 조직의 과정이 사라지니, 즉각적인 분노로 조직된 ‘김보름·박지우 선수자격 박탈’, ‘국회의원 급여를 최저시급으로’와 같은 청원이 쉽게 20만 명을 넘어선다. 청와대도 곤혹스러운 청원들이다. 국민청원게시판을 본래 청와대가 의미부여한대로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장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크다. 
 

팬덤정치의 강화

‘대통령이 다 해 줄 것’이라는 광범위한 바람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팬덤정치의 강화는 접점이 있으면서도 다르다. 한국의 팬덤정치는 일반적으로 2000년대 초반 노사모의 활동을 그 시작으로 본다. 그 뒤 유력 정치인들에게는 그들을 지지하는 팬클럽 조직이 상수가 되었다. 정치인을 연예인처럼 소비하는 팬덤정치는 세계적인 현상이고 한국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에게 고유한 현상은 아니지만, 최근 1년 ‘문빠’라고 불리는 열성 지지자들의 행동양식은 특히 자주 회자되었다. 
 
출처 한겨레
 
문재인을 향한 팬덤정치의 특징은 무엇일까. 일단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자 감시의 역할을 자임했던 노사모와 달리 ‘문빠’들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무조건적이다. 이러한 무조건적인 지지는 인터넷 행동주의와 맞물려, 소위 ‘좌표’를 찍고 화력을 보여주는 (특정 인터넷 기사나 게시글에 단시간에 집중적으로 댓글을 다는) 행동방식으로 드러났다. 비판적 의견이 들어설 여지를 주지 않는 무조건적 공격에 대해, 많은 이들이 우려를 표명한다.

팬덤정치가 대중의 ‘반지성주의’의 심화를 상징한다며 걱정하는 흐름도 적지 않지만, 더 큰 문제는 정당과 정치인들이 이를 이용한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당시 경쟁 후보에 대한 공격을 “경선을 흥미롭게 하는 양념”이라며 별로 문제시하지 않았다. 이는 정책이 유사한 상황에서, 선거 승리를 위해 작은 차이를 부풀리고 대중의 감성에 호소하는 전략을 채택하는 ‘미디어 정당’, ‘선거전문가 정당’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결국 정치의 혐오로 이어진다.  
 

포털을 장악하면 정치를 장악한다? 

드루킹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포털 댓글과 추천수를 통해 여론을 장악하려는 시도는 한국 정치의 상수가 되었다. 언론 기사를 보면 드루킹은 사이비 교주에 가까운 사람으로 보인다. 그는 최소 올해 1월과 3월, 매크로 프로그램(같은 작업을 단시간에 반복하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특정 기사에 대해 추천수를 조작하고 댓글을 작성하였다. 김경수 의원이 드루킹에게 인터넷 기사 주소(URL)를 보내며 홍보해달라고 한 적도 있었고, 드루킹이 오사카 총영사 자리를 요구하며 김경수 의원실의 보좌관에게 금전을 제공했다 보좌관이 반환한 적도 있다. 앞으로 검찰수사 혹은 특검을 통해 추가 사실이 밝혀질 것이기 때문에, 향후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섣불리 추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 사건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결국 정치허무주의와 정치혐오로 이어질 행위라 해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주저없이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출처 조선일보
 
포털의 댓글 문화는 여러 언론에서 지적하듯 한국의 특수한 문화다.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대부분은 부정적인 측면이 많다고 생각한다.  시민들은 댓글공간이 극소수의 이용자에 의해 점유되고(지난 21일 네이버에서 기사를 단 이용자는 전체 이용자의 0.8퍼센트에 불과하다), 거짓과 비방과 조작까지도 가능한 공간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를 가장 잘 알려준 것이 바로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이다.

그러나 청와대와 민주당도, 자유한국당 등 야당도, 조선일보 같은 언론도 ‘댓글 정치’에만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댓글과 추천수가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4월 19일자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청와대와 조선일보 둘 다(서로 의도는 전혀 다르지만) 지난 남북단일팀과 비트코인 정책으로 인한 것으로 분석된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10퍼센트 하락이 드루킹의 조작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유한국당은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이 극렬 지지층의 댓글 작업이 아니냐며 의심한다. 전형적인 음모론적 사고다. 이들이 볼 때 시민들은 댓글과 추천수 조작에 쉽게 의견을 바꾸는 수동적이고 우매한 이들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의 위기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강화되고 있다.  


한국 대중정치의 현주소

시민들은 어디든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출할 공간이 필요하고, 여기서 인터넷 공간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또한 오늘날 많은 시민들이 인터넷을 통해 정치적 행위 양식을 배우고 경험한다. 그러나 최근 드루킹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터넷 공간의 영향력은 과대평가되고 있다. 여론은 포털의 댓글과 추천수로만 움직이지 않음에도 말이다. 

댓글 정치를 이용하는 정치인들의 문제는 다른 진영일 경우에만 지적된다. 야당이 청와대에 대한 맹공을 펼치는 이유는 지방선거 전,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한 지형을 만들기 위해서다. 여야를 막론하고 댓글 정치가 시민의 정치적 역능을 축소하고, 이후 정치혐오와 정치위기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경고에는 무관심하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식 공방 속에 정치인에 대한 지지 방식이 팬덤화·대중문화화하는 이유, 그 구조가 재생산되는 이유에 대한 질문은 사라진다.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정당의 이념적 지향성의 약화, 미디어에 대한 의존의 심화, 이에 따른 선거중심적 정당화, 증오 캠페인의 활용 등이 분석의 단초로 존재한다. 여기에 대한 답을 찾을 때 이 현실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변화시킬  다른 정치형태, 다른 정치의 장을 열 단초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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