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노동보다
  • 2018/05 제40호

압도적인 병력으로 싸우려는 의도 자체를 부수자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조합 가입이 절실한 이유

  •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오기형
2018년 4월 17일,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삼성전자서비스 원청과의 직접고용 합의서가 발표되었다. 6000여 건의 노조와해문건이 폭로되며 삼성그룹 차원의 부당노동행위가 세상을 들썩이던 시기, 80년 무노조 경영을 유지해오던 삼성에 금속노조 소속의 노동조합이 생긴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삼성에서 최초로 “노동조합 인정”, “노동조합 활동보장”을 공식화한 것은 대단히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외에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이 더 있다. 
 

첫째, 합의주체가 특별하다. 보통 정규직 전환 과정의 주도권은 사용자가 가지고 있었다. 사용자가 정규직 전환 계획을 발표하면 그에 따라 노동조합이 협의를 진행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민간부문에서 정규직 전환 발표 자체를 노동조합과의 합의서면에 기초한 곳은 없었다. 이는 정규직 전환과정 전체의 주도권이 다른 이해관계자보다 특히 노동조합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둘째, 합의의 실제 내용을 마련하는 과정이 특별하다. 지금까지 노동조합이 정규직 전환협의의 한 주체로 참여하는 것은 보장되었지만 독점적인 교섭권한을 확보한 사례는 없었다. 정규직 전환의 대상은 해당 사업체에 근무하는 노동자 전체인데 노동조합이 이들 모두를 대표하지는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그런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직접고용 합의서는 세부내용에 대한 협의를 노동조합과 진행할 것을 명시했다. 사용자의 일방적 전환에 찬반의견을 표시하는 수동적 위치가 아니라 정규직 전환의 실제 내용을 공동으로 마련하는 주도적 위치를 확보한 것이다. 

셋째, 민간에서 자회사를 배제하고 원청 직접고용을 쟁취한 최초의 사례다. 청주시 수도검침 노동자, 광주시와 서울시립대 용역노동자가 공공부문에서 원청 직접고용을 쟁취한 사례는 있다. 하지만 정부·지자체의 비정규직 전환 방침 등의 조건이 없는 민간부문에서 지금처럼 규모 있게 자회사 설립이 아닌 원청 직접고용이 진행된 사례는 없었다. 
 

이번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이끌어 낸 직접고용 합의는 여러 면에서 노동조합이 직접고용 과정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한편에서 애써 이를 부정하고자 하는 세력이 있다. 자신의 지위가 불안정해진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의 사장들과 관리자들이다. 

“팀장들 중심으로 한국노총을 만들 테니 기다려라. 금속노조는 너무 강성이다.” 맞다. 금속노조는 강성이다. 강성인 만큼 보장수준이 높다. 고정급 비율이 높고 현장에서의 권력도 세다. 부당한 업무지시는 따르지 않는다. 반면에 팀장을 중심으로 노동조합을 만든다는 말은 일단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노동조합은 사용자와 입장이 달라야 제대로 된 활동이 가능한데, 팀장들 중심의 노동조합은 사용자와 입장이 같다. 제대로 된 요구안 하나 만들어낼 수 없다. 입장이 같기 때문이다. 작년 에스케이브로드밴드의 직접고용 전환 때에도 팀장들 중심의 노동조합이 일부 지역에서 잠시 만들어진 적이 있었지만 곧 사라졌다. 

설령 노동조합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명의만 노동조합일 가능성이 높다. 사용자 대신 노무관리기능을 대신하는 조직일 공산이 크다. 독립적으로 판단과 결정을 하지 못하는 사용자의 관리를 받는 노동조합은 사용자의 거수기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런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된다는 것은 위치는 노동자이면서 행동은 사용자처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종의 자해행위이다.

“전부 직접고용 될 것이니 굳이 노동조합에 가입할 필요 없다” 소위 무임승차론도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사정을 모르고 착각에 빠져있거나 사정을 알면서 사기를 치는 것이다. 직접고용 세부내용에 대한 본격적인 협의는 시작되지 않았다. 협의의 주체는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하나뿐이다. 유일한 교섭주체가 아직 교섭을 시작하지 않았는데 협의 과정에서 배제된 자들만 말이 많다. 

아직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임금체계와 노동조건은 유동적이다. 이를테면 정규직전환 과정에서 근속 승계가 문제가 되지 않았던 적이 없다. 직접고용을 쟁취했지만 신입으로 입사한 공공부문의 사례를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에스케이브로드밴드 직접고용 전환 때는 일괄 3년의 근속수당을 인정받았다. 일부라도 근속을 인정받은 것을 성과라고 평가했다. 어느 수준에서 확정되는지는 모두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교섭력에 달려있다. 직접고용 대상, 직접고용 시기, 직접고용 후의 임금체계와 직급체계도 모두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무임승차론은 설득력을 잃는다. 무임승차론을 말하는 자들은 유독 ‘어차피 고용’만 언급한다. 고용 여부가 전부처럼 보여야 노동조합에 가입하건 말건 아무 차이가 없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고용 여부’가 아니라 ‘고용 이후’다. 아무 때나 노동조합에 올라타도 결과는 마찬가지일까? 아니다. 달리는 기차에 지금 당장 올라타 기차의 관성을 높이는 것이 더 멀리까지 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출처 SBS

“백 번 싸워서 백 번 이기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이다. 그러므로 최상은 병력으로 적의 싸우려는 의도 자체를 깨는 것이다.” 손자병법에서 가장 핵심으로 꼽히는 문구다. 싸워 이기는 것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더 낫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압도적인 병력 차이로 적이 싸울 생각도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을 가로막아선 적은 한편으로 삼성전자서비스 원청이고, 다른 한편으로 기존 협력업체 관리자들이다. 어느 적에 대해서도 손자의 병법이 적용된다. 실무교섭에서 직급분리, 이중임금체계 등 삼성전자서비스 원청이 장난칠 생각도 못할 정도의 압도적인 병력 차이를 만들어야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체계를 설계할 수 있다. 직접고용 과정에서 복수노조를 만들 꿈도 못 꿀 정도로 조합규모를 키워야 복수노조로 인한 노동자 사이의 분열을 막을 수 있다. 오늘의 노동조합 가입이 앞으로의 10년을 좌우한다. 

5월의 나무에서는 굵고 짙푸른 잎들 사이로 맑고 투명한 연두색 새잎이 돋아난다. 5년의 투쟁으로 단단해진 조합원들 사이로 활기 넘치는 신규조합원이 늘어나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지금과 닮았다. 무성한 잎사귀가 온 나무를 덮게 될 7월에도 우리와 계절이 닮아있기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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