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특집
  • 2018/05 제40호

문재인 정부 1년, 노동공약 이행은 어디까지 왔나

  • 김동근
19대 대선은 박근혜·최순실·삼성 게이트가 박근혜 탄핵으로 귀결된 후, ‘촛불’의 열망이 어떠한 사회 변화로 이어질 것인지 전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상황에서 치러졌다. 공무원 임면권 남용, 언론자유 침해, 뇌물수수, 정경유착 등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적 원칙이 무너진 절망적인 상황을 바로 세우는 것부터, 한국 경제의 위기와 모순을 심화시키는 재벌체제, 빈곤을 심화시키는 부익부·빈익빈, 사드 배치 문제로 상징되었던 동북아 평화 문제, 비정규직 차별과 노동조합 탄압으로 대표되는 노동권 침해 등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넘어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과제까지, 2016년에서 2017년을 넘어가는 한국 사회는 매우 큰 질문에 직면해 있었다.

당시 사회진보연대는 박근혜 탄핵 국면이 ‘비도덕적인 권력자 처벌’, ‘민주주의 회복’에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졌다. 이에 따라 사회 불평등과 불법 경영세습 해결을 위해 시민의 힘으로 재벌 체제를 개혁하는 것,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노동조합을 할 수 있는 제도적·집단적 권리를 확보하는 것, 한·중·일 민중 모두의 안전과 생존을 위해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는 전 국민 평화 운동을 펼치는 것을 박근혜 탄핵 이후 주요 과제로 제시하였다.
 
2016-17년 촛불 당시 사회진보연대가 제시했던 '박근혜를 만든 5대 체제'
이를 바탕으로 '재벌 체제 해체', '노조 할 권리', '전 국민적 평화 운동'이라는
3대 과제를 주장하였다.

이러한 세 가지 과제는 19대 대선 과정에서도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특히 노동정책의 경우 모든 후보들이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향적인 공약을 내놓았다. 구체적으로 일자리 확충,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중심으로 하는 임금격차 축소, 비정규직 정규직화 및 원청 책임 강화,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사회적 대화 재편 등이 쟁점이 되었다. 새 정부 출범 1년이 지난 현재, 제시했던 노동공약의 이행 상황을 중심으로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을 평가해본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공부문에서 81만 개, 노동시간 단축으로 50만 개, 도합 131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핵심공약으로 제시했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을 전원 정규직화하고 민간위탁이 이루어졌던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재공공화하는 한편, 공무원 일자리를 17만 개 늘리겠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휴일노동 포함 주 52시간의 법정노동시간 준수, 근로시간특례업종 축소·폐지를 핵심 정책수단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기관별 정규직화 전환계획 수립은 크게 지연되고 있다. 공공부문 정규직화 첫 사례로서 상징성이 큰 인천공항에서조차 2017년 말에야 기본 방안이 마련되었을 뿐이다. 공공부문 전체에서 예상되는 전환 규모는 20만 명으로 전체 비정규직의 절반에 불과해 공약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고용형태 역시 대체로 무기계약직과 자회사 고용으로 처우개선이 제한적이고 경쟁채용 방식도 다수 포함되는 등 한계적이다.

사회서비스 일자리 재공공화 공약은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방안이 발표됨으로써 다소 구체화되고 있다. 그러나 추진 속도가 현저하게 느리다. 실제 얼마나 재공공화할 수 있을지, 처우개선은 어느 정도 이루어질지 전망도 밝지 않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사회서비스공단 추진 과정에서) 민간어린이집을 잠식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공공부문의 공격적인 정책을 원동력으로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민간부문까지 확산시키겠다는 계획은 사실상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 대책

2018년 최저임금은 16.4퍼센트 인상된 7530원으로 2001년 이후 최고 인상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하려는 자본의 공격적인 시도가 나타났고 정부는 이를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 오히려 정부는 최저임금위원회를 통해서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조정을 추진하기도 했다. 현재 최저임금 산입범위 문제는 국회로 넘어가 있는데, 정부는 이에 대해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정책에 대해서는 자본이 격렬히 저항하고 있는 가운데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 공약이 달성될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한 상황이다.
 
 

노동시간 단축 공약의 핵심은 주 68시간으로 규정된 법정노동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정상화하며,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근로시간특례업종을 축소·폐지하는 것이다. 법정노동시간 정상화 문제에 대해서 문재인 정부는 애초 행정해석 변경을 통해 현실화하고, 근로시간특례업종에 대해서는 애초 전면 폐지 입장을 내세웠으나 결과적으로 두 가지 모두에서 상당히 후퇴했다. 2018년 2월 28일 국회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는데, 연장근로 제한은 사업장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적용되고 공휴일 유급휴일 역시 사업장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도입되며, 특별연장근로가 허용되어 노동시간 단축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근로시간특례업종의 경우 26개 업종에서 5개로 축소되어 상당한 진전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처음 과제였던 전면 폐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비정규직 대책에 대해서는 후보시절 △상시·지속적인 일자리는 법으로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정하고, △동일기업 내에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하고, △사내하청에 대해서 원청 기업이 공동고용주의 책임을 지도록 법을 정비하는 한편, △특수고용노동자에게 고용보험·산재보험 적용을 의무화하고 노동3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올바른 기준을 세우겠다고 제시했다. 현재까지 구체적인 대책은 없다.
 

노조 할 권리

집단적 노사관계 정책, 즉 노조 할 권리 정책은 후보시절 노동공약 중에서도 가장 무시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수고용노동자 노동자성 인정, 하청노동자에 대한 원청 기업의 책임성 강화 등 노동권 확장 정책이 일부 제시되긴 했지만 구체적인 실현 방안이 부재했다. 게다가 타임오프제도 폐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강제 제도 폐기, 부당노동행위 근절, 공무원·교사 노동기본권 보장 등 중요한 항목들은 도외시되었다. 당선 이후 현재까지 상황을 보더라도 노조 할 권리와 관련한 눈에 띄는 진전은 없다.

노조할 권리와 관련해서 2018년에 가장 중요한 쟁점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이 될 전망이다. 정부는 2018년 1월 공개한 〈제3차 유엔 국가별 정례인권검토(UPR) 실무그룹 보고서 초안〉을 통해 ILO 핵심협약 비준 권고에 대해 ‘수용’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핵심협약 비준 문제에 관해, 청와대에서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 말고는 어디에서도 뚜렷한 계획을 밝힌 곳은 없다. 따라서 어떤 구체적인 로드맵도 없다. 보수진영은 “ILO 핵심협약 비준이 곧 전교조 합법화”라는 프레임을 설정하고 맹공을 퍼붓고 있으며, 정부는 이러한 보수진영의 공세를 피하기에 급급하여 ILO 협약 비준 문제를 쉬쉬하고 있다.
 

지난 4월 12일 열린 ‘ILO 핵심협약 비준과 모든 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 국제 토론회에서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는 건 협약의 실질적 이행을 국제사회에 공식적으로 약속하는 것”이며,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국내법과 상충여부를 분석하고 협약에 반하는 국내법 제도를 개선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ILO 핵심협약 비준의 구체적인 시기와 방안에 대해서는 여전히 밝히지 않은 것이다.
 

총평

사회진보연대는 대선 시기 《노동자의 눈으로 본 2017 대선》 소책자를 통해서 문재인 후보의 노동공약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첫째,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대책을 중심으로 한 개별노사관계 공약에 비해, 노동자 스스로 임금과 고용을 방어·증진시킬 수 있도록 하는 집단적 노사관계 관련 공약은 부실하다. 이는 노동정책을 노동권 확대보다는 고용이라는 관점에서 사고하고 있기 때문으로, 노동정책의 근본적인 방향설정이 잘못되었음을 보여준다. 둘째, 노동공약 전반이 노동자의 권리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한다는 측면보다는 고용정책의 일환으로 제시되고 있어 문제 해결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공약 등 일자리 공약은 부풀려진 수치를 중심으로 제시되었으며, 비정규직 정규직화 대책은 노동자 간 부당한 차별의 공고화라는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적인 측면을 해결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제시되었다. 셋째, 제시된 일자리창출 공약은 그 규모가 상당부분 부풀려졌고 실제 효과가 어느 정도일지 불투명할 뿐 아니라 임금하락과 노동유연화의 위험을 내재하고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공약은 재원 투입 최소화라는 제약조건 하에 고용불안 문제의 일정한 해결에 집중되어 있어 공약이 그대로 이행된다 하더라도 처우 개선은 제한될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현재까지의 흐름으로 판단했을 때 대체로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및 최저임금 인상 문제에서 일정한 변화가 있지만, 노동정책의 전반적인 추진은 선거 과정에서 제시했던 공약과 비교해도, 취임 초기 제시했던 정책 방향과 비교해도 후퇴하고 있다. 2017년 거시경제 상황이 상대적으로 양호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공약 이행이 한층 더 무뎌질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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