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노동보다
  • 2018/05 제40호

우리는 세상을 바꾸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직접고용, 노조 인정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황수진

세상이 몰랐던 이야기

삼성 노조파괴 문건 6000건이 폭로된 4월 초부터 하루에 수십 개씩 기사가 쏟아진다. 솔직히 오늘 무슨 기사가 나왔는지 전부 파악하지도 못할 정도다. 그런데 지난 4월 20일 에스비에스(SBS)와 엠비시(MBC) 보도는 우리 조합원들이 차마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낄만한 내용이었다.
 
하나는 2013년 7월 노조설립 직후부터 9월까지 진행된 고용노동부의 삼성전자서비스 불법파견 관련 수시 근로감독 결과 ‘요약본’에서 노동자에게 유리하고 삼성에 불리한 내용이 다수 누락되었다는 보도였다. “논란의 여지는 많으나 위장도급은 아니”라는 당시 판정은 “술은 마셨으나 음주운전은 아니다.” 발언과 유비되며 조롱받았다. 노조는 자세한 근거가 담긴 ‘원본’을 공개하라고 숱하게 요구했지만, 비공개 부분이 영업 비밀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받지 못했다. 근로자 지위확인소송에서도 결국 원본은 공개되지 않았고 법원은 ‘요약본’을 근거로 판단했다. 결과는 알다시피 노조의 패소. 당시 노동부가 삭제한 내용이 에스비에스 보도에서 공개되었다. 영업 비밀과는 관계없었다. 요약본은 삼성이 빨간펜 들고 첨삭해준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번에 폭로된 삼성의 노조파괴 문건에는 “노동청 근로감독관과 수시로 접촉해 공감대를 형성하라”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판정이 나온 9월은 1600명까지 치솟았던 조합원 수가 여름 성수기 후 표적감사 등 각종 탄압 때문에 감소하던 때였다. 노동부 판정은 노동자들을 기죽였다. 긴장이 계속되던 10월 마지막 날 최종범 열사가 목숨을 끊었다. 노동부가 제대로 판정했으면, 혹시 최종범이 죽지 않아도 되었을까 …
 
출처 SBS
 
또 다른 보도는 염호석 열사 시신 탈취사건 당시 삼성이 부친에게 6억을 주고 회유했다는 사실이었다. ‘6억’은 새삼스럽지 않다. 삼성은 돈이 더럽게 많다. 삼성의 노조파괴 문건에는 “문제가 생기면 돈으로 해결하라”는 문구가 있다. 그저 나는 “부친을 원망하지 말자 … 그러면 호석이가 편하게 쉴 수 없지 않겠나.”라는 나두식 대표지회장의 덤덤한 다짐이 슬프다.
 
노조파괴 문건 수사가 시작되면서 묻혀있던 진실들이 끝없이 나온다. 노조가 접근할 수 없었던 정보와 증거들도 나오지만, 솔직히 우리에겐 ‘새로운 진실’이 아니다. 5년 동안 수백 건의 보도자료로 크고 작은 일을 세상에 알렸지만 이제야 [단독]을 달고 나오는 기사도 수두룩하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이게 말이 돼?” “어떻게 이런 일까지 있을 수 있어?”)을 보며 내가 새삼 되새긴 건 지난 5년 동안 버텨온 조합원들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다. 사실 이런 말도 안 되는 부조리는 “니들이 아무리 안간힘 써봐야 우리 발밑 노예야”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주입하고 인간의 자존심을 파괴한다. 소위 ‘피해의식’이 내부를 향하게 되고 적보다 동지를 증오하며 칼끝을 겨누는 순간이 왜 없었겠는가. 그런데 어떻게 버텨올 수 있었을까.
 

“이거 지금 꿈 아니지?”

사실 이런 우울하고 ‘숭고한’ 얘기는 요즘 우리 분위기와 완전 딴판이다. 우리는 요즘 매 순간 말도 안 되게 기쁘고 행복하다. ‘직접고용’, ‘노조 인정’이라는 무기를 쥐고 예비조합원 동료들을 만나러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간부와 조합원들이 “이거 지금 꿈 아니지?”라고 묻는다. ‘비노(비노조)’라고 대상화해 부르던 명칭도 ‘예비조합원’, ‘우리 동료’로 바뀌었다. 아직도 보기 싫고 힘들다는 이야기도 없지 않다. 매우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5년 동안 쌓인 미움이 그리 쉽게 없어질 수 있겠나. 하지만 노력하는 모습이 좋다. 서로를 보듬고 격려하며 “이해하자, 우리가 먼저 손 내밀자”고 한다. 삼성이 갈라놓았던 우리 사이에 다리를 놓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볼 때 난 우리의 목표와 미래에 확신이 생긴다.
 
 

우연? 필연?

꿈같은 이 상황이 어떻게 가능했느냐는 질문도 있다. 삼성전자의 다스 소송비 대납 의혹 압수수색 과정에서 하드디스크를 들고 도망가는 직원을 검찰이 현행범으로 체포했는데 거기서 문건 6000건이 나왔다고 한다. 노동조합 투쟁의 역사에 이런 ‘얻어걸린 대박’이 또 있을까? 그렇다면 이번 승리에서 그 우연의 비중은 몇 퍼센트일까?
 
걸린 게 6000건이면 실제로는 수만 건일 테다. 삼성이 그렇게 많은 문서를 작성한 건 우리가 그만큼 끊임없이 투쟁했기 때문이다. “감히 삼성에서 노조를 만들어?” 삼성 재벌(미래전략실)이 ‘개무시’하고 짓밟으려 했던 ‘앵벌이’에서 감히 무시할 수 없는 가장 강력한 견제 세력이 되기까지 우리는 한시도 쉬지 않고 투쟁했다.
 
삼성이 안 움직이면 우리 현장은 ‘1도’ 안 바뀐다며 바지사장을 제치고 삼성 상대로 투쟁했다. “이렇게까지 매년 싸워야 하냐, 임단협과 재벌개혁 투쟁을 꼭 같이해야 되냐”라는 질문도 많았다. 때로 노조의 욕심이 과해 조합원들이 지쳐 나가떨어졌던 순간도 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간접고용 노조가 원청에 임단협 교섭하자고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했다. 왜? 우리 현장을 결정하는 건 쪼르르 윗분에게 달려가 이거 해도 되냐고 물어보는 바지사장들이 아니라 원청이고, 원청과 마주 앉아 근로조건‧임금‧권리를 논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예비조합원 동료들이 희망을 얻고 우리와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간접고용 노조가 원청 상대로 투쟁하고 교섭하며 조직을 확대하는 모델을 민간 최대기업 삼성에서 만들어 널리 확산하자고 했다. 우리는 당연히 삼성이 직접 고용해야 하는 노동자이지만 법(위장도급 소송)에 전적으로 기대진 말자고 했다. 원청이 우리를 무시 못 하게 힘을 키우자고 했다. 당연히 이겨야 할 소송에서 졌을 때 심적 타격은 있었지만 노조 탈퇴는 거의 없었다. “여기서 실망해 그만둘 거였으면 시작도 안 했다.”던 누군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국정농단을 ‘이재용-박근혜 게이트’로 규정하고 몇 달 동안 거리에서 선전물을 뿌릴 때도 솔직히 많은 사람이 지친다고 했다. 촛불의 아름다움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이렇게 한다고 우리한테 ‘뭐가 돌아오냐고’, 이걸 꼭 ‘우리’가 해야 하냐는 질문이었다. 그 말이 틀렸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우리의 존재적 한계(간접고용)를 넘어서기 위해 새로운 방식으로 싸워야 한다고 서로를 북돋는 하루하루였다. 결국 이재용이 구속됐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회사 측이 8000여 명의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기로 했다.
(사진 _ 4월 17일 직접 고용 합의 당시)
 
어떤가? 삼성이 코너에 몰리고, 80년 동안 부르르 떨던 민주노총(금속노조)을 그룹 안에 들인 게 ‘운빨’인가? 이병철을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게 한 주인공들의 이 자랑스러운 역사는 성실하게 기록되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민주노조운동의 주역은 이들이어야 한다. 삼성계열사에 노동조합을 꽃 피우는 꿈을 향해 한발 한발 전진하는 노동자들이어야 한다.
 
여전히 난관이 많다. 세부 교섭을 철저하게 준비하고 압도적 기세로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아직 주저하는 동료들이 또다시 삼성을 위해 희생하는 삶이 아니라 ‘나를 위한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지금 세상을 바꾸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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