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칼럼
  • 2018/04 제39호

쨍!하고 반가운 영화

38 여성의 날 맞이 사회진보연대 영화상영회 <파도 위의 여성들>

  • 김민정
6시 땡! 하고 사무실을 뛰쳐나왔지만 2호선 교대역 플랫폼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온통 검정색 겨울옷을 입은 사람들에 떠밀려 탄 지하철에서 3월, 신촌, 영화, 여성, 인권, 페미니즘 등 봄 냄새 가득한 단어들이 떠올라 아주 오랜만에 설레고 들뜬 기분이 들었습니다. 영화 〈파도 위의 여성들〉이 낙태에 관한 이야기라는데 문득 임신이면 어쩌지 마음 졸이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세월이 참 많이 흘렀구나! 엉뚱한 생각도 했던 것 같습니다. 

영화 〈파도 위의 여성들〉은 저의 예상과는 달리 여성들의 자유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태아의 생명권 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해묵은 논쟁이나 낙태금지국가에서 안전하지 않은 낙태에 노출된 여성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다루는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영화는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서 일어난 문제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노력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파도 위의 여성들〉은 한 여성이 내린 결정에 대하여 결코 되묻거나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결정을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방법을 안내하고 지켜볼 뿐입니다. 물론 이 영화에는 여성 개개인에게 일어난 작은 변화들이 사회의 큰 흐름으로 이어져 결국 낙태 합법화를 쟁취하는 호쾌한 장면도 있습니다. 그리고 과격한 반대자들을 만나도 유쾌하게 웃으라는 레베카의 충고도 참 좋았습니다.
 
 
아주 사적인 영역, 자신의 몸을 결정하고 통제하는 자유가 참으로 중요하구나! 큰 울림을 주는 영화였습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하지만 성적 대상이자 재생산 도구로 쓰이는 여성들의 몸은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저의 임신에 대한 불안도 지금 곱씹어보면 출산이냐 임신중지냐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안전한 낙태를 보장받기 어려운 현실, 어디에서도 정보를 구할 수없는 막막함, 가족에게조차 도움을 청하기 어려운 부풀려진 죄책감, 사회적 비난과 낙인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서럽고 안쓰럽게 느껴집니다. 여성들의 낙태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면서 다른 부작용은 제도적 장치로 보완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자유를 형법상 범죄로 처벌함으로써 사회적으로 비난하고 억압하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낍니다.
 
제가 배운 것은, 변화를 창조하기 위해선 언제나 공격적인(offensive) 전략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후폭풍(backlash)에 대한 두려움은 자기검열(self-censorship)과 같은 것이니까요.
- <파도 위의 여성들> 중 레베카 곰퍼츠의 대사
영화 상영을 모두 마치고 2부 토론에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의 존재와 함께 곧 헌법재판소에서 형법 제269조 제1항 및 제270조 제1항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의 공개변론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활인이 되어 업무에 파묻혀 지내며 ‘이제 어쩌나’ 고민이 많던 저에게 쨍! 하고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찾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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