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노동보다
  • 2018/04 제39호

과로사 없는 사회, 우리는 3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가

노동자의 절박한 목소리 외면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 채수용
2월 27일 새벽 환경노동위원회는 노동시간 단축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안은 바로 다음날인 28일 일사천리로 국회를 통과, 3월 13일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었다. 불과 2주 만에 법적 절차가 모두 마무리되어 7월 1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정부와 여당, 언론은 이번 개정안이 노동시간을 단축해서 저녁과 주말이 있는 삶을 앞당길 것처럼 말한다. 과연 그러할까.
 
이번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논의된 여야간사합의안보다는 일부 진전했다. 노동시간 상한 없이 무제한 연장근로를 가능하게 하는 ‘제59조 근로시간 특례’의 경우 현행 26개 업종에서 운수업·보건업만 남긴 5개로 축소하기로 했고, 특례가 유지되는 업종에서도 근로일 사이 11시간의 휴식시간을 부여하도록 하였다. 또한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전면 도입하여 민간 기업에서도 법정 공휴일을 연차 대체 사용 없이 유급 휴일로 누릴 수 있게 된다.
 
또한 개정안은 그간 논란이 되었던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명시하였다. 휴일근로는 연장근로가 아니라는 해괴한 행적해석[1]을 바로잡아 연장근로에 휴일근로를 포함시키면서 주당 최대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하여 노동시간의 실질적인 단축을 도모한 것이다.
 

노동시간 양극화를 묵인하는 안

그러나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노동시간의 양극화를 초래하는 안이기도 하다. 주당 최대노동시간 52시간제한이 사업장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1년 6개월씩 시차를 두고 적용되는 탓에 300인 미만 사업장은 2020년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은 2021년 7월부터 적용된다. 중소사업장일수록 쥐꼬리만 한 임금에 장시간 노동을 시키는 사업주들이 많은데, 지금 개정안은 중소사업장의 장시간 노동을 최대 3년간 방치하는 셈이다. 심지어 공휴일에 유급휴일을 적용하는 규정마저도 사업장 규모별로 1년씩 시차를 두고 단계적으로 도입된다. 대규모 사업장은 노동시간을 단축하지만 중소사업장은 장시간 노동을 방치함으로써, 노동시간 격차를 조장·확대하는 것이다.

더구나 30인 미만 사업장은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여 노동시간 단축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3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 연장근로 제한이 적용될 시점인 2021년 7월1일부터 1년6개월간 8시간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한 것이다. 특별연장근로는 오히려 노동조건을 기존보다 더욱 후퇴시킨다. 토요일이 휴무일[2]인 중소사업장은 토요일까지의 최대노동시간이 52시간이었다. 그런데 특별연장근로가 허용되면 토요일까지의 최대 노동시간이 60시간으로 늘어나게 된다. 근무일 기준 연장근로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탄력적 근무시간 확대?

가장 큰 문제는 특별연장근로가 종료되는 2022년 12월 31일까지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 확대 방안을 준비하도록 명시했다는 점이다. 법정최대노동시간의 단축은 본래 초장시간 노동을 제한함으로써 반대로 최소시간만 일시키고 조퇴시키는 등의 탄력적인 노무 관리를 방지하는 효과를 낳는다. 그러나 일일근무에 대한 제한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확대할수록, 주 52시간 연장근로 제한의 취지는 무색해진다. 

지금도 3개월 이내일 경우 1주의 평균 노동시간이 40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한에서 특정주의 노동시간은 52시간까지 늘릴 수 있다. 이 때의 노동시간은 연장근로로 보지 않기 때문에 연장근로수당도 받을 수 없다. 현재 행정해석은 여기에 12시간의 추가 연장근로가 가능하다고 보아 특정 주에 최대노동시간은 64시간까지 연장 가능하다.[3] 어떤 주에는 하루에 12~13시간씩 노동을 하고, 어떤 주에는 휴업을 해도 된다는 것인데,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일을 몰아서 하니 힘이 드는 반면 월급은 더 적어진다. 
 
주당 53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 수
(경활부가조사(2017)에서 필자 재구성)

일일근무시간의 양적 유연성이 무제한인 상태에서, 월단위 년단위로 노동시간을 더욱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한다면, 임금 격차·노동시간 격차는 더욱 확대될 수 있다. 만성과로, 급성과로 문제가 저임금 노동자 쪽으로 집중될 수 있다. 
 

노동자의 목소리는 외면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은 결국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다. 임금격차, 고용격차에 노동시간 격차가 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개정하는 과정도 문제투성이였다. 논의 예정인 안건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묵살된 채 비공개로 진행되었고 하룻밤 만에 밀실합의 되었다. 기존 논의에는 전혀 없던 특별연장근로나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 터무니없는 내용들이 추가되면서 말이다. 정작 법 개정의 당사자인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외면됐다. 

여야 합의에만 급급한 짜깁기식 개정안이 나온 것은 문재인 정부와 국회가 한국사회의 개혁에 대한 청사진이 없기 때문이다. 재벌이 주도하는 한국자본주의는 기술혁신보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체제를 개혁하려는 노력 없이 장시간 노동을 줄이겠다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매년 300명씩 과로로 사망하는 현실에서, 시급히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한 계층에 대해서 이 안은 침묵하고 있다. 과로로 죽어가는 한국사회에 제동이라도 걸어야 한다는 절박함도 보이지 않는다. 그 결과는 장시간노동의 변형, 노동시간 양극화를 야기할 뿐이다. ●
 

Footnotes

  1. ^ 휴일근로(8+8)가 연장근로(12)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행정해석에 따라 법정최대노동시간은 주당 60시간(40+12+8, 토요일이 휴무일) 혹은 68시간(40+12+8+8, 토요일이 휴일)으로 계산되었다.
  2. ^ 시급제 사업장은 토요일 무급휴무일인 경우가 많다. 통상유급시간은 243시간이 된다. 시간당 통상임금은 줄어든다.
  3. ^ 특정일의 노동시간은 12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되어 있지만, 역시 행정해석상 여기에 연장근로 시간은 해당되지 않아 사실상 무제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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