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는글
- 2018/04 제39호
기술수입의 나라에서 기술유출의 나라로?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기술사를 되짚는 《한국 테크노컬처 연대기》는 한국에 새 기술이 유입되는 과정이 대략 다음과 같다고 설명한다. 처음에는 해외에서 제작한 완제품을 도입한다. 이후 한국 기업이 외국과의 기술제휴를 통해 조립생산을 시작하고, 이후에는 일부 부품의 국산화를 시도하는데 주변부품에서부터 시작해 핵심부품을 국산화한다. 모든 부품을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게 되면 후속 모델 개량에 들어가 국내 실정에 맞게 기술을 변형한다.
1960년대의 경운기와 2000년도의 케이티엑스 열차가 위의 예로 언급되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전자오락 ‘갤러그’와 세운상가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흥미로웠다. 1980년대 청계천 상인들은 일본에서 새로운 게임기가 나오면 5일 만에 초정밀 필름을 입수, 칩보드를 풀어서 금성반도체로 다시 구성해 해적기판을 만들었는데 동남아 등지로 수출까지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선풍기를 처음 선보인 곳은 신일산업이 아니라 세운상가의 제작자들이었다거나, 원자력발전소에 세운상가 기술자들이 가서 전압기를 설치해주며 되려 한 수 가르쳐줬다는 증언들도 눈길을 끌었다. 두 사례 모두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기술을 습득하고 이를 발전시켰다는 노동자들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물자가 귀하고 정품을 쓰기에는 여유가 없던 주변부 국가였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이야기를 읽으며 한국의 빠른 성장에 대해 새삼 생각한다. 1990년대 한국은 몇몇 분야의 기술력에서 세계적인 반열에 올랐다. 반도체, 휴대폰, 자동차산업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2010년대 한국에서는 기술유출과 먹튀기업 문제가 주요 뉴스로 종종 떠오른다. 2004년 쌍용차를 인수했다 2008년 법정관리를 신청하며 사업에서 철수한 중국 상하이차, 하이디스의 특허 기술만 빼먹고 경영난을 이유로 사업을 정리한 대만 이잉크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현상이 기술사에서 어떤 지위를 차지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10여 년 째 복직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 쌍용차 노동자들과 올해 2월 복직 없이 3년의 투쟁을 정리한 하이디스 노동자들을 볼 때, 우리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노동자운동의 과제로 상존하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4월호 커버스토리에서는 외국인투자기업의 문제를 다룬다. 더블스타의 금호타이어 인수 시도, 정부지원을 전제로 한 실사를 받고 있는 한국지엠 사태를 다뤘다. 이번호 노조할 권리의 주인공인 지하철9호선도 프랑스계 기업이 80퍼센트의 지분을 가지고 있어 문제가 복잡하다.
외부 조건으로 인해 생존이 위협받는 건 외국인투자기업의 노동자들만은 아니다. 중국과 미국에 크게 의존하는 수출경제구조, 북한과 미국의 결단에 따라 좌우되는 한반도 정세는 우리의 평범한 삶을 자주 위협한다. 수동적인 상황에 주저앉지 않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이를 논의하는데 《오늘보다》 4월호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