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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 제38호

일본 편의점에서는 일본사람이 일하지 않는다

일본 이주노동자의 감춰진 현실

  • 이준혁
요즘 해외여행지로 각광받는 일본! 일본 여행에서 편의점은 필수코스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편의점 음식을 판매하는 사람도, 그 음식을 만드는 사람도 더 이상 일본인이 아니다.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건 베트남·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이다.

일본에서는 유명 체인 식당 서빙, 택배 분류, 건물 청소, 신문 배달, 심지어 간병서비스에도 이주노동자가 늘고 있다. 이들은 내국인들이 꺼려하는 이른바 ‘3K 노동’을 하고 있다. 3K노동은 일본어로 ‘힘든, 더러운, 위험한’을 의미한다.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신 3K노동’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고되며, 급여가 싸며, 돌아갈 수조차 없다’는 의미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자면서 ‘노동자가 아닌’ 신분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취업은 전문직, 교포만 가능한 나라?

일본의 저출산·고령화와 인력 부족 문제의 심각성은 익히 알려져 있다. 생산가능인구, 즉 경제활동이 가능한 15세부터 64세 사이의 인구는 1995년 8720만 명에서 계속 줄어들어 2015년에는 7590만 명을 기록했다. 모든 취업자와 실업자를 합친 경제활동인구의 경우 2001년 정점인 6752만 명을 기록한 이래 지속적으로 감소해 2016년 6648만 명을 기록했다.

부족한 일손을 채우고자 일본은 외국인 고용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현재 법적으로 일본에 취업할 수 있는 외국인은 두 부류 밖에 없다. 하나는 연구·기술·교육 등 ‘전문직·기술직’이다. 최근 일본 기업이 한국의 젊은이들을 선호한다며 나오는 구인광고의 대부분은 이 직종이다. 나머지 하나는 재외 일본인 자녀 또는 일본에 과거부터 살고 있었던 재일외국인 등 ‘신분에 기초한 체류 자격을 획득한 자’다. 이외의 외국인 취업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2010년대 이후 외국인 단순 노동자 수는 급격히 증가했다. 2017년 기준 일본의 이주노동자는 모두 127만 명이다. 이 중 제조업 종사자가 38만 5000명(30퍼센트)으로 가장 많다. 뒤이어 기타 서비스업 18만 9000명(14.8퍼센트), 도·소매업 16만 6000명(13퍼센트), 숙박 및 음식 서비스업이 15만 7000명(12퍼센트), 건설업 5만 5000명(4.3퍼센트)으로 단순 노동자는 약 95만 명에 이른다. 전문직·기술직(23만 명)이 아닌 ‘신분에 기초한 체류 자격 노동자’들을 모두 모아도 45만 명에 그치는데, 이들이 모두 단순 업무에 종사한다 치더라도 95만 명을 넘는 단순 노동자 숫자에 미치지 못한다. 대체 이들은 어디서 나타났단 말인가? 두 가지 편법이 있다.
 

편법 하나. 기능실습생

기능실습생은 1982년 도입된 외국인 연수제도에 기반을 두고 있다. 개발도상국으로의 기술 이전, 인재 육성 등을 목표로 외국인 취업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제도다. 기능실습생 대부분은 베트남·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출신이다. 기능실습생으로 일하는 노동자의 숫자는 2017년 기준 25만 7000명으로 알려져 있는데, 2012년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들은 1년 간 연수생으로 교육을 받으며 이후 5년까지 실무연수라는 이름으로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있다. 정책 목표는 어디까지나 ‘개발도상국으로의 기술 이전’이기 때문에 제한도 많다. 기능실습생 고용은 섬유·의복이나 기계·금속 등 제조업, 농어업, 건설업 등 80여 개 업종으로 제한된다. 게다가 기능실습생은 입국 시 모국에서 하던 일이 무엇인지 증명해야 한다. 입국하고 나서도 같은 일에 종사해야만 한다.
 
일본 농촌의 기능실습생 사진
"열렬 환영, 제 28기 중국 농업 기능실습생 대면식"

1년의 연수기간에는 노동법 적용조차 되지 않으며, 실무연수 기간에도 직장을 바꿀 수도 없다. 5년이 지나면 무조건 모국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때문에 이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이들 대부분은 월평균 10만 엔 정도를 받는데 2016년 도쿄의 1인 최저생계비 11만 5530엔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기능실습생은 노동법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정부의 공식 발표만 보더라도 기능실습생 채용 도중 노동법을 위반한 사업장 수가 2013년 1844건에서 2016년 4004건으로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 최저임금 또는 근로시간 연장 제한 위반이다. 시간외노동에 대해 시급을 실습 1년째는 300엔, 2년째에는 400엔밖에 주지 않는다든가(2017년 기준 도쿄의 최저시급은 932엔이다) 실습생에게 한 달에 연장근로만 130시간을 시킨 일(일본의 과로사방지법은 1년 중 1개월에 한해 월 연장근로를 100시간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능실습생들은 브로커에게 거액의 수수료를 지불하고 입국한다. ‘모국에서의 전직 증명’까지 해야 하기에 수수료는 더 치솟는다. 대부분의 전직 증명은 브로커를 통해 꾸며내야 한다. 일본에 있는 산업이 모국에도 있을 확률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5년밖에 일하지 못하기 때문에 빚을 갚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그 다음은 불법체류를 택하는 길 뿐이다.  
 

편법 둘. 위장유학생

기능실습생 제도의 불편함을 피할 제도로 최근 각광받는 것이 ‘유학생’이다. 최근 일본의 유학생 비중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2017년 6월 기준 일본에 있는 유학생 수는 29만 1164명이다. 2012년보다 11만 명이 증가했는데, 이 중 베트남 출신이 7배나 늘어난 7만 명으로 가장 많다. 그밖에 네팔, 파키스탄, 미얀마 출신도 많이 늘었다. 2012년 이후 유학생 중 이들 4개국 출신의 비중은 80퍼센트나 된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는 유학보다는 돈벌이가 목적이다. 유학생 중 노동자로 일하는 사람은 25만 9604명이다. 대부분 학비를 보충하기 위한 파트타임 노동자라 생각하기 쉽다. 실제 제도상으로도 유학생의 노동시간은 주 28시간 이내로 제한된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여러 일을 동시에 하면 이 제도는 간단히 무력화된다.

이들도 입국 시 거액의 빚을 지고 들어온다. 유학 비자를 취득하려면 노동하지 않고도 부모 또는 자산 소득으로 생활할 수 있다는 ‘경비 지급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부유층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이러한 능력이 거의 없다. 때문에 은행이나 행정기관에 뇌물을 주고 엉터리 서류를 만들 수밖에 없다. 첫 해의 학비나 기숙사비, 유학알선회사 수수료까지 합치면 대체로 150만~200만 엔의 빚을 지고 들어온다. 베트남 일반 서민의 월수입이 1~2만 엔으로 알려져 있으니 빚은 연 수입의 10배를 넘는다.

브로커들은 일본으로 유학가면 월 20~30만 엔은 우습게 번다고 선전한다. 유학생은 기능실습생과 달리 직장 선택, 이동의 자유도 보장된다. 하지만 제도대로 주 28시간만 일하면 월수입은 11만 엔도 안 된다. 혼자서 먹고 살수는 있다. 하지만 빚을 갚아야하기에 결국 몇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어찌되었든 신분은 유학생이라 어학교나 교육기관에 등록이 되어 있어야만 한다. 빚 상환에 학비 부담까지 더해지는 것이다. 형식적으로라도 수업을 듣기는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법체류자가 되어버린다. 그러다보니 일본 사람들이 기피하는 육체 노동과 야간 노동으로 몰리게 된다. 이러다보니 수업시간에는 잠만 자기 일쑤다. 그럼에도 학비를 부담하지 못해 불법체류자로 몰리게 된다.
 
 

노동기준 강화 없이 외국 일손만 늘리려는 일본 정부

현재 일본에 있는 외국인 불법체류자는 6만 5200명에 달한다. 3년 연속 증가 추세다. 이들 중 베트남 출신만 전년 대비 35퍼센트 늘어난 5100명이다. 유학생이 불법체류자가 된 경우도 3800명으로 11퍼센트 증가했다. 노동자면서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제도의 모순이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국내 일손 부족을 이유로 외국인 노동자를 늘리려고만 하고 있다. 기능실습 도입이 가능한 산업·직종을 대폭 확대하려 한다. 또한 정부는 유학생 노동의 현실을 알면서도 2020년까지 ‘유학생 30만 계획’을 실현할 것을 공표했다. 이들의 작업 현장을 노동법으로 더 강력하게 규제한다거나 실태 조사를 강화하겠다는 등 현실 개선 조치는 빠져있다. 기능실습생과 유학생 취업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조치도 빠져있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우리나라에 외국인 취업제도는 없다’는 공식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마음속으로는 외국 인력을 착취할 생각만 하면서 겉으로는 점잔만 뺀다. 그 사이 이주노동자의 현실은 더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
 

화려함 뒤에 숨겨진 이주노동자의 눈물

아름다운 여행지에서 보는 일본. 한국 젊은이들의 해외 취업지로 각광받는 일본. 그 화려함 뒤에 이주노동자들의 눈물이 감춰져있다. 인구 감소와 외국인 인력 충원을 거스를 수 없다면 이들의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이는 동아시아의 또 다른 이주노동자 수입국인 한국에도 던져진 과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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