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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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 제38호

노동조합, 넓고 강하게

  • 유다해
처음 시작하기도 어렵지만 지속적인 발전도 어려운 것이 노동조합이다. 특히 직종이 다양하고 여러 사업장이 함께 조직된 노조나 전국으로 사업장이 흩어져 있는 노조는 노동자들의 단결을 어떻게 도모할지 고민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또 이미 조직된 노동자들이 무엇을 추구하며 활동해야 하는지도 고민이 필요하다. 이런 고민을 안고, 노동조합을 ‘더 넓고 강하게 만들기 위해’ 현장에서 발로 뛰는 활동가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봤다.
 

아래에서부터 바르게: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인천공항지역지부는 인천공항공사를 원청으로 두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17개 지회와 3개 분회로 이루어진, 조합원 3800명의 대규모 노동조합이다. 2008년 각각의 용역업체에서 기업노조로 있었던 750명의 조합원이 공공운수노조에 가입하고 인천공항지역지부를 건설했다. 인천공항지역지부를 건설하고 10년 동안 2번의 전략조직사업, 2013년 파업투쟁, 정규직 전환 국면을 거치면서 3000명에 가까운 조합원이 늘어 인천공항 내 다수 노동조합이 되었다.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이 신설되면서 비정규직 3000명이 추가로 채용될 예정이었다. 이에 인천공항지역지부는 제1여객터미널 미조직 노동자를 50퍼센트 이상 조직하는 한편, 제2여객터미널 개항 준비시기부터 신규 채용 노동자를 조직하는 계획을 세웠다. 전 조합원 교육, 광고 및 선전전, 카카오톡 상담 등을 진행했다.

그런데 이러한 계획을 단위 지회 차원에서 적극적인 사업으로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개별 지회의 입장에서 제2여객터미널 신규 조직화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사업’으로 보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회 현안에 몰두하다 보면 자기 투쟁과 자신들의 사업만으로도 정신이 없다. 그런데 그런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사업’이, 길게 보면 노조를 더 넓고 강하게 만드는 일이 될 수 있다. 제2여객터미널 신입사원 간담회가 그런 일이었다. 그 자리에서 15명이 가입서를 써냈다. 당장의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사업을 꾸준히 진행해야 언젠가 터질 대박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지난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에 방문해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다. 여론이 집중되었다. 인천공항지역지부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입장, 조합원이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표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소속 조합원 200명을 직접고용에 포함할 것을 요구했던 한국노총이나 비정규직에게 ‘무임승차’라 비난하고, ‘경쟁채용’을 주장했던 정규직 노조와 크게 다른 모습이었다. 정도와 대의에 입각한 활동으로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인천공항지역지부가 인천 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표하는 유일한 노조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학교에서 세상으로: 교육공무직본부

교육공무직본부는 학교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다. 학교에서 유령 취급받던 이들이 어느새 수만 명의 조직이 되어 전국 시·도 교육청과 교섭을 하고, 한날한시에 모여 파업투쟁도 벌일 수 있는 노동조합으로 성장했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었던 계기는 진보교육감 당선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시도교육청과 단체교섭을 맺지는 못했다. 대신 노조 건설 이후 바로 쟁취가 가능한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했다. 작은 승리부터 차근히 만들어가는 투쟁을 진행한 셈이다. 투쟁 과정에서 서명운동, 조례제정 운동 등 전국의 학교에 흩어져 있는 조합원들이 참가할 수 있는 실천 활동을 배치했다. 조합원이 직접 참가하면서 만들어가는 작은 승리의 경험들이 노동조합으로 단결하여 투쟁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이러한 자신감을 발판으로 조합원들은 비정규직 철폐라는 더 큰 목표를 향해 더욱 적극적으로 단결하고 투쟁할 수 있게 되었다.

노조가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 교섭을 맺어야 했다. 그러나 각 시·도 교육청이나 교육감은 스스로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용자라는 사실을 부정했다. 교섭을 맺을 상대방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2012년부터 교육감이 단체교섭에 나올 것을 요구하는 사상 최초의 학교 비정규직 전국 총파업을 전개했다. 법정대응과 함께 교육감 직고용 조례제정 운동도 벌였다. 결국 교육감 직고용 조례가 제정되기 시작했다. 교육감이 학교 비정규직의 실질적인 사용자라는 사실도 인정받을 수 있었다. 당연히 교섭 자리에도 나와야 했다. 투쟁으로 쟁취한 것이다.
 

실리보다 자존감 추구하는 노조: 금속노조 경기지부

금속노조 경기지부는 32개 지회 5200명 조합원을 거느리고 있는, 꽤 규모가 있는 노동조합이다. 경기지부는 2012년 에스제이엠과 두원정공에서 벌어진 두 번의 직장폐쇄에 맞서 승리한 적이 있다. 이를 계기로 신생노조 만들기에 성공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끊임없는 성장을 고민하는 노조가 바로 금속노조 경기지부다.

양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예전에는 조합원들이 대부분 자동차 부품사에 다녔다. 지금은 금형모래, 철강, 담배필터, 페인트, 요식업, 기술서비스직 등 산업업종별로 다양해졌다. 통상 비정규직으로 분류하는 하청노동자 조합원도 1000명 가까이로 늘었다.

이는 기존 노조가 민주노조 파괴 공세에 잘 대응하면서 훌륭한 기풍을 만들고, 단지 지키는 것을 넘어 권리를 함께 보장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다. 고참 노조는 단결의 정신을 실천하고 동시에 ‘권리함께’를 위해 신생노조의 투쟁이 생기면 ‘몰빵정신’을 발휘한다. 신생노조는 각종 집회에 열정적으로 참여한다. 고참노조는 이끌고 신생노조는 활기를 불어넣어 끌고 미는 상승효과를 발휘한다.

이러한 선순환을 가능케 한 힘이 어디서 나온 것일까. 노조가 생기면 처음에는 노사가 충돌하고 이후 점점 노조의 존재를 인정받으면서 정착하는 과정을 거친다. 

중요한 것은 정착 이후 노조가 후퇴하는가 발전하는가다. 노조를 만드는 계기가 “나는 너무 힘들고, 돈도 못 받고, 착취당하고 있어”라는 결핍으로 시작해서, 불만을 키우고 그것이 당연해진 조직은 결국은 후퇴할 가능성이 크다. 언제나 모자란다며 ‘결핍’이라는 이름으로 나만의 권리를 추구하는 이들은 나눔도 연대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단지 떼인 돈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당하게 살기 위해서, 실리를 키우기보다는 권리를 키우고, 우월감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존감을 추구하는 노조가 계속해서 발전하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게 된다. 배타적인 조합원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면 그 노조는 이권 노조가 되고, 그것이 권력을 잡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정파 노조가 되어버린다. 

권리와 자존감을 추구하는 노동조합이야말로 ‘대안 노조’가 될 수 있다.
 
 

노동자가 단결하고 자존감을 높이는 노조가 되려면

저임금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불쌍한 노동자, 탄압받는 노동자로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당당하고 자존감을 높이는 싸움을 하자는 의견에 많은 참여자가 공감했다. 이주노조의 경우 “이주노동자는 을 중에서도 을이다. 그래서 탄압과 분노를 이용해 조직해 온 게 아닌가 생각했다. 사회 전체적으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조직화는 정체될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교육공무직본부는 “교육공무직법안 추진 과정에서 여론에서 크게 반감을 얻고 좌절된 것이 떠오른다. 이제는 불쌍한 내 노동조건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최저임금 투쟁 같은 사회적 의미를 더 강조하는 투쟁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노동자의 갈등을 완화하고 단결로 나아가는 문제는 여전히 큰 과제로 남아있다. 인천공항지부에 “정규직화 과정에서 우리 지회가 더 먼저, 또는 우리 지회만은 정규직이 되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없었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인천공항지부는 “처음에는 그런 요구가 크지 않았는데 3000명이 정규직이 된다고 하니 그런 얘기가 나왔다. 충분한 설명과 설득만이 답이다.”라고 답변했다. 

더 넓고 강한 노동조합을 만들어 가는데 정해진 왕도는 없다. 다만 당장의 이득을 넘어 너와 나의 권리가 맞닿는 투쟁을, 너무 먼 것이 아닌 지금 눈앞에 있는 과제에서부터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이 전체 노동자들의 단결로 나아가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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