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필름X정치
  • 2018/03 제38호

고부 갈등의 숨은 주역은 가부장제

다큐멘터리 "B급 며느리"의 미덕과 단점

  • 홍명교
영화 〈B급 며느리〉는 ‘고부 갈등’이라는 전형적인 문제를 다루는 자전적 다큐멘터리 영화다. 설 명절 시즌을 맞아 개봉했고, ‘독립다큐멘터리 영화’치고는 나름의 흥행 가도를 이어가고 있다. 개봉한지 38일 만인 2월 24일 현재 1만 8000명을 기록 중이다.

영화는 내레이터이자 주요 등장인물인 배우자 김진영(존칭 생략)과 시어머니 조경숙 간의 갈등을 그려낸다. 제목인 ‘B급 며느리’는 김진영을 가리킨다. 언젠가 조경숙은 며느리 흉을 보며 “걔는 B급도 아니야. F급이야”라고 말하지만, 김진영은 이런 규정에 그리 상처받지 않을지도 모른다. ‘B급’이란 명명은 관습적인 역할을 충족하지 못하는 며느리를 바라보는 가부장제적 시선만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리어 자신을 둘러싼 강제에 저항하려는 한 젊은 여성의 반란 선언이기도 하다. 감독(선호빈)이 사회운동이 무관심한 작가가 아니기에(지난 10년간 그는 용산 참사, 고려대 출교 사태, 강정마을 투쟁 등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어왔다), 라는 제목은 김규항의 에세이집 《B급 좌파》를 떠올리게 한다.
 
출처 네이버영화

〈B급 며느리〉는 유쾌한 독립다큐멘터리다. 두 주인공의 캐릭터가 꽤 강렬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힘이 있고, 갈등 구조도 선명하다. 영화 속 김진영은 말한다. “진짜 왜 그렇게 날 싫어하는 거야?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자신에게 ‘착한 며느리’가 되길 요구하는 시어머니를 향해서 하는 말이다. “시동생한테 존댓말 쓰게 하는 것부터 난 다 바꿀 거야” 그는 ‘며느리’라는 존재에 부여되는 가부장제의 억압적 관습을 용납하고 싶지 않다. 그것이 자신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과는 배치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결혼 전에 내가 얼마나 행복하고 건강한 사람이었는데…”
 

고부 갈등, 문제는 남편

김진영이 남기는 숱한 명언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관객에게는 일종의 해방감도 선사한다. 이런 대사가 아니었다면 영화는 성립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난 이 다음에 내 위인전을 만들고 말 거야. 여자 위인으로 남겠지”, “명절 때 시댁에 안 갔어요. 그래서 완벽한 명절을 보냈죠”, 위인전을 남길 만하다. 그는 ‘이상한 여자’가 아니라, 보기 드물게 현명한 사람일 거란 생각이 든다.

문제는 남편이다.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격정적인 갈등으로 치달을 때에서야 비로소 그는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는 둘 사이의 갈등에서 어정쩡한 제스처로 일관했고, 양쪽 모두를 향해 “날 더러 어쩌란 말이냐”는 말을 반복했다. 이 역시 전형적인 반응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김진영이 말하는 것처럼 고부 양자는 너무도 다른 세계에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고, 둘은 가부장제라는 구조적 폭력에서 자유롭지 않은 채, 일정한 역할을 요구받는다. 문제는 이 사회적 관습이 반강제적으로 요구되고, 불가피하게 고부간의 갈등을 양산한다는 사실이다.

시어머니는 언젠가 자신도 해냈던 그 역할을 거부해선 안 된다고 여기고, 반대로 김진영은 그것을 납득하지 못 한다. 문제는 남편이 단순한 구경꾼도, 제3자도 아니란 사실이다. 남편은 이러한 가부장제적 관습의 은밀한 행위자이며, 그 권력의 중심에 서 있다. 아버지나 동생, 고모 등 가족들은 남편에게 “네가 연기를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과연 지속 가능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인지는 알기 어렵다. 단, 많은 관객은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고부 갈등의 숨은 구조

필자 역시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험난한 경험담을 들어왔다. 어머니는 항상 ‘시어머니’와의 갈등에 대해 말했고, 그때마다 눈물을 흘리거나 크게 한숨을 쉬었다. 젊은 시절 비슷한 억압과 고통을 겪었을 또 다른 ‘며느리들’은 모든 걸 잊은 채 자신의 며느리에게 억압을 강요했고, 남성들은 점잖게 멀리 떨어져 이 전쟁과도 같은 갈등을 ‘관전’했다. 

어쩌면 여성들에게 쌓일 ‘한’과 아픔이란, 이런 방관의 산물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 문제에 있어 가장 문제적 인물이자 ‘이상한’ 사람은 며느리가 아니라 남편인 셈인데, 〈B급 며느리〉 역시 마찬가지다.
 
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속에서 갈등이 폭발하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다. 김진영은 펑펑 울음을 터뜨리며 말한다. “영화감독 부인되는 거 내 꿈도 아니었어. 니가 영화 만든다고 돌아다닐 때 난 이 집에서 늙고 병들어 가고 있다고!” 카메라와 주인공 김진영의 관계만큼이나, 남편과 부인 사이의 위계와 거리가 느껴진다.

그러니 〈B급 며느리〉는 ‘김진영’이라는, 관점이 분명한 인물이 아니었다면 성립되지 않았을 영화다. 그녀는 말한다. “이건 굉장히 복잡한 문제라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 그런 게 다 복합적으로 엮여있어. 단순히 고부 간의 갈등이 어떤 성격 이상한 두 여자의 질투심 때문에 발생하는 건 줄 알아? TV드라마가 다 망쳐놨다니깐!” 남편이 카메라를 들기 시작한 것도 ‘이거 영화되겠다’는 감 때문이었을 게다. 하지만 우리가 문제의 본질에 다가갈수록, 실은 감독 자신에게 가장 큰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감독만 모르는 결론

지리멸렬해진 고부 갈등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인지, 혹은 남편이 만들고 있는 이 영화의 완성을 위해서인지 김진영은 크게 ‘한 수’ 접고, 시어머니와 대타협을 이룬다. 이 포부가 쉽지 않았을 것이고, 어쩌면 그는 시어머니가 바라는 대로 ‘전형적인 며느리’의 자리로 어느 정도는 진입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김진영의 ‘담대함’에 탄복하게 되지만, 이런 과정이 영화적으로 명민하게 구현되진 않았다. 

감독은 이 용두사미 격 후반부를 형식적으로 ‘열린 결말’인 것처럼 정리했다. 결국, 가족이 하나로 모여 집 안으로 들어가고, 그는 맨 마지막에 터벅터벅 집 안으로 들어간다. 그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잘못 묘사’한 것처럼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가장인 듯 말이다. 현명하진 않지만, 현실적인 결론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고부 갈등이나 가족 내의 문제들은 ‘봉합’될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를 깨닫고 재빨리 ‘연극’을 하는 게 더욱 현명할지도. 영화는 그 연극을 ‘운명론적’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은밀히 보여준다. 사주팔자를 본 점쟁이가 김진영의 사주를 보며 어떤 시어머니를 만나건 고부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장면을 기점으로 모든 갈등이 용해되거나 봉합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점쟁이 역시 ‘대한민국’의 무수한 시어머니 중 하나일 뿐이다. 유사-시어머니가 일종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고대 그리스 극의 극작술.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하여 극의 긴박한 국면을 타개하고, 이를 결말로 이끌어가는 수법)로 등장한 셈이다.

한데 이미 우리가 알다시피 이는 며느리 김진영의 잘못이 아니다. 가부장제와 그 모순에 복무해 관전자가 되곤 하는 ‘남성 일반’의 문제다. 감독은 이런 인식에 도달하진 못한 것 같다. 다만 이 영화를 본 많은 관객은 다른 것 같다. 네이버 영화 한줄평이나 각종 후기에서 하나같이 “남편이 문제네”라고 말한다. 오직 감독만이 몰랐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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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영화 페미니즘 다큐멘터리 필름 B급며느리 고부갈등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