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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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3 제38호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노동조합을

2018 노동조합 활동가학교 ‘노동조합 만들기’ 마당

  • 이민영
노동조합을 만드는 과정은 각 사업장과 노동자의 특성, 조건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당일 토론에서는 지역노동시장 조직화의 사례로 건설노조 경인건설지부(이하 건설 경인)의 토목건축노동자 조직화, 대지자체 투쟁을 통한 공공부문 조직화의 사례로 공공운수노조 광주전남지부(이하 공공 광전), 사업장 조직화의 사례로 금속노조 경기지부 현대모비스화성지회(이하 모비스 화성)의 사례를 발표했다. 각기 다른 상황과 조건에서 노조 설립과 확대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물었다.
 
[건설 경인] 건설 현장은 주문생산 방식이에요. 현장이 개설되면 공정 수행에 필요한 직종의 노동자들이 임시 취업하는 식이죠. 건설 산업은 단일 업종으로 가장 많은 인원이 취업하고 있지만 그 중 73.5퍼센트가 일용직, 임시직이에요. 고용 안정성이 낮죠. 비가 오거나 일이 없으면 일을 쉬어야 해요. 여기에 다단계 불법하도급 구조까지 더해지죠. 뜯길 대로 뜯긴 하도급 단가에서 일당 맞추려면 몸을 혹사해 일할 수밖에 없어요. 새벽에 별보고 출근해서 못대가리 안 보일 때까지 망치질한다고 했던 게 겨우 몇 년 전이에요. 

건설노동자는 각자 현장에 취직하는 방식이 아니에요. 인맥을 통해 팀으로 일을 구하는 식이죠. 2007년 중간 도급 팀장이 불법이 되면서 노조가 합법적인 직접고용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만들어졌어요. 대구와 경기 중서부에서 투쟁을 시작했고, 전국으로 확산됐죠. 협약서 받아서 조합원 몇 명씩 취직시키는 과정이 시작이었어요. 전국적으로 직고용 사업이 진행됐고, 2014년 인천에서도 직고용팀을 만들었어요. 

전국적으로 직고용 사업이 진행됐고, 2014년 인천에서도 직고용팀을 만들었어요. 현장과 고용주가 계속 바뀌는 건설 현장의 특성상, 공사가 시작될 때부터 조합원 고용을 요구하는 것이 교섭의 시작이에요. 처음은 아파트 현장에 형틀 목수 1팀을 넣는 것으로 시작했어요. 

이후 인천 곳곳 건설 현장의 전문건설업체와 현장별 교섭을 했죠. 조합원 고용을 요구하고, 요구안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투쟁했어요. 조합팀을 늘려가면서 자연스럽게 건설노조 소문이 퍼졌죠. 송도와 청라 일대 대규모 현장을 중심으로 조합팀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분위기를 만들었어요. 1호팀 15명으로 시작했던 조합팀은 이제 24개팀 300명 규모가 됐어요. 

2017년 전국 중앙 교섭을 통해 단체협약에 '회사는 개설되는 현장에 대해 조합원을 고용한다'는 문구를 포함하는 성과가 있었어요. 현재는 현장별 두 팀 이상 고용하도록 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죠. 현장이 개설되면 교섭과 투쟁을 통해 조합원 고용을 쟁취하고, 조합원들은 단협을 적용받으며 일해요. 교섭과 일자리 배치를 조합에서 하기 때문에 조합으로 모든 힘과 사람이 모이죠. 
 
 
 
[공공 광전] 80여 명으로 시작한 공공운수노조 광전지부는 10년이 지난 지금 960여 명이에요. 공공운수노조 전략조직사업과 광전지부 대지자체 투쟁 10년의 성과죠. 특히 2013년 이후 급격하게 조합원 수가 늘었어요. 2014년 지자체 선거에서 시민사회단체 출신 후보가 시장으로 당선됐고, 그 계기를 활용하려고 했어요. 지난 10년 간 요구해왔던 ‘민간위탁 철회’ 요구를 명확히 했어요. 그 결과 광주시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환 정책이 제시됐고, 광전지부는 광주시 대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조로 자리 잡았어요.

2015년 2월에는 광전지부가 주도하여 광주시와 사회공공협약을 체결했어요. 주요 내용은 비정규직 노동자 처우개선, 민주적이고 투명한 사회복지기관 운영을 위한 노동자 직접 참여, 안전한 공공서비스를 위한 노동조건 개선과 합리적인 공공서비스 정책 수립, 문화예술노동자의 안정적인 노동환경 마련이었어요. 협약을 통해 사업장 현안에 갇혀있는 사람들을 현장 밖으로 끌어내고, 공공서비스 문제를 노동자와 시민의 공동 요구로 만들었죠. 2017년 11월에는 노사책임 경영정책을 마련하고 시범적으로 시행하는 내용도 합의했어요.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개선에 안주하지 않고 경영참여와 광주시 공공서비스 정책에 개입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공공부문 전체를 대표하는 노동조합이 될 수 있었죠. 그 결과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매년 200명 이상 조합원이 늘었어요. 
 
[모비스 화성] 현대모비스 이화공장은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 섀시, 운전석 모듈을 납품해요. 재고를 쌓아두지 않고 20분 거리에서 바로바로 제품을 공급하죠. 완성차 라인과 사실상 하나의 라인이라고 볼 수 있어요. 노동조합을 만들면 완성차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도 우리의 힘을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공장은 다단계 하청구조였어요. 중간관리업체가 있고, 그 밑에 7개의 하청업체가 생산을 담당해요. 현장에서 불만이 많았어요. 노조 설립 후 별도 요구안을 보면 알 수 있죠. ‘화장실 사용을 자유롭게, 연차 사용 일방적 지정·소진 강요 금지, 관리자 고성 폭언 금지, 냉난방 대책, 장애인 직원 소통 방안 마련, 청소업무 분리’ 등 당연한 부분에서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게 주된 요구였죠. 

2015년 말 금속 경기지부에서 노조설립 상담을 받고, 준비모임을 시작했어요. 회사는 다른 업체 만나는 걸 못하게 했어요. 하지만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서는 업체의 경계를 넘어서는 게 꼭 필요했죠. 다양한 경로로 사람들을 만났어요. 업체와 조별로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들려다보니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졌어요. 이 시간이 제일 힘들었죠. 

2016년 11월부터는 준비모임을 확대했어요. 준비모임에서는 교육도 같이 듣고, 노조 설립을 위한 준비도 진행했어요. 광주자동차부품사지회의 성공사례를 함께 보는 것도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주었죠. 같은 조건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만드는데 성공한 사례였으니까요. 오랜 준비 끝에 드디어 2017년 5월 노동조합을 만들었어요. 3개월 만에 현대모비스를 상대로 임단협을 쟁취했죠. 그룹사 방침을 깨고 사내 노동조합 사무실도 만들었어요. 
 
 

새로운 시도와 고민 

고정된 사업장이 없다면 일맥과 인맥을 잡아 노동조합으로 사람이 모이게 하고, 무조건 지자체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적극 활용해 조직을 확대하고, 자본의 약점이자 사업장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탄탄한 준비를 통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만드는 과정에서 새롭게 시도했거나, 고민했던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건설 경인] 건설 현장은 안전, 환경 등 불법사항이 많아요. ‘툭하면 체불, 아차하면 산재’라는 말이 있을 정도죠. 법을 지키게 하는 것도 노동조합의 역할이었어요. 노동조합이 감시자 역할을 하면서 현장의 많은 부분이 개선됐죠. 

한편으로는 어려운 고민도 있어요. 건설노조가 투쟁하는 과정에서 현장의 이주노동자가 일을 못하게 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주노동자도 사실은 건설 자본의 핵심 착취 대상이지만, 아직 노동조합은 그들과 함께 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죠. 형틀목수가 어느 정도 조직된 상황에서, 건설 현장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제는 이주노동자 조직화에 대한 적극적인 고민이 필요해요. 
 
[공공 광전] 2014년에 광주시가 직접고용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광주시 노사상생 워크숍’을 개최했어요. 같은 프로그램으로 여섯 번을 진행했는데, 아직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분들이 대거 참석하는 자리였죠. 광주시가 주최하는 행사였지만 철저한 사전준비를 통해 광전지부의 조직 확대 계기로 만들었어요. 노동조합이 빡세고 경직된 곳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잘 놀고 잘 즐겼죠. 그래서 나중에 현장에서 만났을 때 스스럼이 없었어요. 결국 그 때 만난 많은 분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했죠.
 
[모비스 화성] 금속노조에서는 보통 사내하청 비정규직이면 지회 이름에 비정규직을 넣어요. 하지만 우리는 현대모비스화성지회로 이름을 정했어요. 사내하청, 비정규직이라는 걸 강조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모비스 공장에서 모비스 제품을 만들고 있는데, 자본의 관점대로 우리의 경계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불법파견 소송도 하지 않았죠. 스스로 비정규직이라고 생각하면서 정규직으로 신분상승하는 것처럼 생각하지 말자고 다같이 이야기했어요.
 
당일 패널로 사례를 발표한 정유리 조직국장은 노동조합에 대한 갈망은 어디에나 있고, 이 갈망을 노동조합에 대한 믿음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최근 전남도청 미화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어요. 왁스 작업 안 하고 싶다, 주말 당직근무 하기 싫다, 식당청소 안 하고 싶다와 같은 현장에서의 불만이 있었죠. 노동조합 만들고 용역 소장과 전화로 싸우자마자 세 가지 불만이 바로 해결됐어요. 10년 동안 가장 바꾸고 싶었던 부분이 10분 만에 바뀐 거죠. 조합원들의 눈빛이 달라졌어요. 노동조합에 대한 믿음이 생긴거죠.”

노동조합 만들기에 왕도는 없다. 현장의 불만에 귀 기울이며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는 것. 세 명의 패널 모두 그것이 기본이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노조, 세상을 바꾸는데 기여하는 건강한 노동조합을 만들고 싶다면 이전과는 다른 고민과 전략이 필요하다. 아직 노동조합을 만나지 못한 수많은 노동자들이 있다. 그들 사이에 관계의 맥을 짚는 노동조합 만들기가 필요하다. 앞으로도 노동조합을 만든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이 전해지고, 더 많은 곳에서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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