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보다
- 2018/03 제38호
학교 안의 모든 구성원들과 페미니즘을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해》 서평
2000년대 초반의 대학 시절, 나는 운이 좋게도 페미니즘 운동의 세례를 받았다. 대학가 혹은 운동사회 내 반성폭력 운동의 물결과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공동체, 사회를 재구성하자는 노력 속에서 스무 살 남짓 살아온 내 삶을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다시 볼 수 있었다. 페미니즘을 통해 나는 내 안의 많은 것들이 설명되는 경험을 했다. 내가 여성으로서 느끼고 있던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부당하다고 느꼈지만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취급받았던 감정과 기억들이 온전히 자신의 모습을 인정받던 순간들이었다. 페미니즘의 프리즘으로 세상을 둘러보니 차이가 차별이 되는 수많은 사례들에 대한 이해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즘은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나의 존재로부터 출발해 키우게 해 준 고마운 존재였다.
몇 년 후 나는 사립여자고등학교에서 사회교사가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근 7년 만에 간 고등학교에는 (완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치마 길이 단속 및 두발 규제가 있었고, 브래지어가 비치지 않게 하복 안에는 꼭 속옷을 입어야 했다. 한 여성 담임은 브래지어의 필요성을 못 느껴 런닝만 입고 다니던 그 반 학생이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다닐 수 있게 해달라는 생활지도부 남자 선생님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
통제의 명분은 언제나 학생들에 대한 ‘걱정’과 ‘보호’였다. 치마가 짧거나 야한 옷을 입으면 성폭력의 대상이 되기 쉽다는 잘못된 상식은 ‘보호’하기 위해선 복장을 규제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정작 많은 여성들이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고 있는 사회 현실에 대해 학교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부재했다.
학생들 중 성소수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사회적 소수자’가 수업 주제였던 어느 날, 공개적으로 학생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선생님, 어떤 학생이 선생님이 진짜로 좋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거에요?” 40명의 눈이 나를 진지하게 응시하고 있었고 그것은 농담이 아니었다. 적잖이 당황했지만 ‘그런 학생이 있다면 나를 좋아해 주는 마음에 대해 고맙다’고 말한 후 하지만 나는 이성애자라고 할 것이라 말해 주었다. 그 일 이후 새삼 우리 학교에도 성적 소수자 학생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반대로 공공연히 호모포비아를 드러내는 학생들도 있는 만큼 이 주제를 학생들과 어떻게 나눌까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니 내 삶도 크게 바뀌었다. 나는 육아로 학교를 잠시 떠나 있었고, 엄마로서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에 대한 고민에 몰두해 있었다. 돌아와 보니 페미니즘을 대하는 학교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 있음을 느낀다. 페미니즘 모임에 푹 빠져 사는 게 낙이라고 이야기하는 동료 교사가 있는가 하면, 학생들의 독서 목록이나 수업 주제에 페미니즘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우리 학급의 한 학생은 ‘맨박스(manbox,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에 대해 발표하면서 페미니즘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친구들을 진지하게 설득했다. (여학생이라고 해서 다 페미니즘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페미니즘을 주제로 여학생들끼리 토론해보라면 의외로 격렬한 토론이 벌어진다. 물론 공감 백퍼하며 끝날때도 있다.) 메갈리아의 미러링이나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학교 울타리 안에서도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 같다. 학생들과 독서 멘토링 주제로 페미니즘 책을 함께 읽으며 들어보니 아이들은 학교 밖에서 이미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페미니즘을 배우고, 자신의 경험들을 설명하고 모임을 만들고 대중문화를 분석하는 등 많은 활동들을 하고 있었다. 납득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는 만연한데 학교는 이에 대해 가르쳐 주지 않으니 학생들은 ‘학교 밖 학교’에서 배울 수밖에 없다.
《페미니스트 선생님》에 실린 최현희 선생님의 인터뷰는 내게 ‘사이다’였다. 수업 시간에 페미니즘의 내용을 포함시켜왔지만,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뭔가 마이너하게 느껴질까 머뭇하며 용기 있게 내뱉지 못하던 말들을 너무 쉽고 통쾌하게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학교에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페미니즘은 인권이다페미니즘만큼 공교육의 목표인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는 데 좋은 것은 없다
나에게 사이다였던 만큼 이 인터뷰에 대한 공격들은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이 공격들에 맞서 에스엔에스에서는 ‘페미니스트 교사가 필요해’ 해시태그 운동이 일어났다.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를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에는 21만 명 이상이 서명했다. 그리고 지금 ‘미투 운동’을 통해 대한민국의 낯 뜨거운 현주소가 드러나면서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 책은 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증언이다. 책에서 나온 선생님들의 이야기에 절절하게 공감되었다. 페미니스트 교사를 만났거나, 만나지 못한 사람들의 학교 안 경험들도 강렬하게 다가왔다. 학교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40명 아니 수백 명 속의 마음 속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었다. 페미니즘은 지나치게 편향된 교육이라고 생각하거나, 성소수자의 ‘존재’를 반대 혹은 허락할 권한이 스스로에게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용기 있는 페미니스트 교사들에게만 페미니즘 교육을 맡겨 두며 짐을 지워지 않았으면 한다. 모든 학교 구성원에게 페미니즘의 창이 생기면 좋겠다. 페미니즘은 모두의 행복을 위한 것이므로. 그러기 위해서 페미니즘 교육은 의무화되어야 한다. 무슨 시간 빼고 거기에 페미니즘 교육을 몇 시간 채워 넣는 방식이 아니라 학교 운영 전반과 교육 과정 전반을 페미니즘으로 재구성하는 진정한 의미의 융합교육이 있었으면 좋겠다.
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할 것을 생각하면 수많은 과제가 떠오른다. 이를 주제로 교직원 회의도 진지하게 해야 할 것이고,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수업과 교육내용을 구성할 수 있는 권한도 필요할 것이며, 성차별 단원을 수능 출제 범위로만 인식하게 하는 교육구조의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생각만 해도 즐겁다. 그렇다. 페미니즘은 이렇듯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