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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2 제35호

한국형 사회적 대화?

이번 민주노총 임원 선거의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한 사회적 대화, 어떻게 볼 것인가?

  • 김동근

‘한국형 사회적 대화’?

8월 23일 문재인 대통령은 문성현 전 민주노총 금속연맹 위원장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이하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했다. 이날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춘추관 브리핑에서 문성현 위원장에 대해 “한국형 사회적 대화기구 설립을 이끌어나갈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사회적 대화와 관련한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10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가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노력에 더해 노사정이 모두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가 꼭 필요”하며, “경제정책과 노동정책에 관한 사회적 합의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반드시 해내야 하는 시대적 사명”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러한 행보는 10월 24일 청와대가 개최한 문재인 대통령과의 간담회 및 만찬 행사에 불참한 민주노총을 압박하는 성격이 짙다. 민주노총은 노정간 대화로 논의되던 자리에 일방적으로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을 배석시킨 것, 2부 만찬 행사에 일방적으로 일부 산별·사업장을 개별 접촉하여 참여를 조직한 것 등을 비판하면서 불참을 결정했다.
 
 
 

사회적 대화를 둘러싼 조건 : 불분명한 논의 의제

현재 논의되고 있는 노사정 대화는 상대적으로 논의 의제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이전의 경험들과 다르다. 19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는 3자 개입금지, 노동조합의 정치활동 금지 등 집단노사관계와 파견제·정리해고제·변형근로시간제 등 개별노사관계를 쟁점으로 했고, 1998년 노사정위원회 역시 정리해고제·파견제 도입이라는 명시적인 목표를 위해 구성되었으며 이는 ‘2.9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으로 이어졌다. 2000년 노사정위원회 합의는 노동시간 단축을 의제로 했고, 2008년에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 및 노조전임자 임금 의제를 논의하기 위해 ‘노사관계선진화위원회’가 설치·운영되었으며, 2015년 노사정위원회는 이른바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합의를 도출하는 등 이제까지 노사정 대화는 분명한 목적과 의제를 토대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노사정 대화 관련 논의는 다루어야 할 의제보다 협의틀 자체에 방점이 찍혀 있다. 정부는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 노동시장 격차 개선,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고용형태 다양화 등을 언급하고 있지만 이들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의제를 논의할지는 불분명하다.
 

사회적 대화를 둘러싼 조건 : 자본의 거부

사용자측은 노사정 대화에 대해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경총은 “대화로 풀어나가는 것 자체에는 공감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내놓고 있으며, 문성현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위촉에 대해서도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통상임금, 최저임금 등 중요한 노동·경제 이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입장을 내기 주저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5월 경총이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을 비판한 이후 사용자측과의 대화에서 경총을 배제하려는 태도를 취하면서 경총을 압박하고 있다. 최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한국의 노사정 문제에서 경총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기존의 경총과는 다른 새로운 사용자단체의 탄생과 변화가 필요하다” 등 노사정 대화의 주체로 경총을 인정하지 않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보수언론과 경제지 등은 문재인 정부가 경총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으며 지나친 친노동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문제 제기했다. 문성현 위원장 위촉에 대해서는 “선수를 심판으로 세운 꼴” 등의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과 노사정대화에 대한 자본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다. 실제 경총은 언론을 통해 양대 지침이 폐기된 것은 노사정 합의사항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며, 노동시장은 더욱 유연화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대한상공회의소 역시 11월 13일 열린 ‘전국 일자리위원회 워크숍’에서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규제가 완화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유럽의 경험 : 사회적 협약의 변화와 쇠퇴

1980년대 이후 유럽에서 사회적 협약은 실질임금을 노동생산성보다 낮은 수준으로 억제하여 국내 재화의 원가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하는, 이른바 ‘경쟁력 강화’를 위한 협약이었다. 이러한 사회적 협약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조직된 노동조합의 양보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사용자측보다는 노동조합의 참여가 더욱 중요하다. 노동조합의 사회적 대화 참여에 대한 보상은 직접적인 형태보다는 노동조합에 대한 정부의 제도적 인정, 공공정책의 내용을 구성할 수 있는 권한, 사회적 협의에의 참여 등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2010년대에 들어서는 이러한 ‘제한된 정치적 교환’조차 점차 사라졌다. 경제위기가 일반화되면서 유럽 각국 정부는 단시간에 급진적인 긴축 패키지를 도입했는데, 여기에 임금 삭감, 세금 인상, 공공지출 축소, 단체교섭 분권화 등이 포함되어 노동조합의 일방적인 희생이 너무 커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 각국 정부는 노동조합의 협력을 요청조차 하지 않았으며, 노동조합을 ‘특수 이해집단’으로 치부하면서 배제했다. 그 결과 2010년대 들어 유럽에서 사회적 협의는 위기에 빠졌으며, 이는 비단 경제위기에 빠진 국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독일의 하르츠 개혁은 노동조합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도입되었다.
 

사회적 협약 형성의 조건

사회적 협약의 출현에는 여러 가지 조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대화는 국가 경제의 위기라는 객관적 상황에서, 경제 위기를 독자적으로 관리할 수 없는 약한 정부가 정책 조정을 위해 사회세력과 광범위한 연합을 추구할 때 나타난다. 사회적 대화가 사회적 협약으로 이어지는 데는 노동조합의 지향이 영향을 미친다. 노동조합 내에 사회적 협약을 전제로 사회적 대화 참여를 지지하는 세력이 많을 때 사회적 협약이 성사될 수 있다.

사회적 협약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사회적 협약의 ‘안정화’가 그 출현보다 더 중요하다. 사회적 협약의 안정화에는 사용자의 전략적 선택이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사용자측은 사회적 협약이 유리하다고 판단할 때에만 협약을 유지한다. 이는 아일랜드와 이탈리아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일랜드에서는 사용자측이 사회적 협약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전폭 지지했고, 사회적 협약은 안정화되었다. 이탈리아의 경우 사용자측은 스스로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1992년 사회적 협약은 지지한 반면, 1995년 이후에는 사회적 협약을 우회했으며, 2001년부터는 노동시장의 규제 완화를 위해 정부에 직접 로비를 함으로써 사회적 협약을 무너뜨렸다.
 
 

 

한국에서 ‘사회적 협약’이 성사될 수 있는가

한국에서 짧은 기간 내에 사회적 협약이 형성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우선 장기불황이라는 구조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순환적 회복 국면에 있는 경제 조건에서 사회적 협약 체결은 시급한 문제가 아니다. 국회 및 행정부 장악이라는 측면에서 ‘약한 정부’인 문재인 정부는 노사정위원회 재가동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20여 년간 이른바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동유연화를 경험한 노동조합은 더 이상 양보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 현재 상황에서 사회적 대화 혹은 사회적 협약의 목표는 이전까지 후퇴된 노동권을 복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사회적 협약의 가능성은 사용자측의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현재 사용자측은 사회적 대화에 참여할 의지가 없으며 오히려 정부의 노동·경제정책 방향을 선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경총과 대한상공회의소는 현재 더 많은 노동유연화 조치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정부의 노동·경제정책이 전환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십 년간 이어진 사용자측의 일방적 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노동권을 억압하고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한 채 지대추구행위를 일삼는 재벌기업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 여론과 더불어, 정부의 단호한 개혁 의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재벌은 정권의 개혁 동력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고, 문재인 정부는 재벌체제에 대한 근본적 해법을 제시하고 재벌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강제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정치구조 및 제반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사회적 협약은 노·사의 능동적 대화와 합의를 전제로 이를 정치적·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통해 형성된다. 따라서 사회적 협약을 제도적으로 현실화할 수 있는 정치구조 및 조건이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은 총자본과 총노동이 교섭하고 합의할 수 있는 전국적 노사협상체계나 심지어 산별교섭체계 틀조차 없고, 사용자측은 사업장을 넘어서는 범위에서는 노동조합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에 더해 역사적으로 정부 및 국회는 1996년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이후 노동개악 입법의 사례와 같이 사회적 협약이 성사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제도화(입법화)를 시도하거나, 1998년 사회적 협약 이후 2000년대까지의 역사적 경험과 같이 사회적 협약의 내용 중 사용자측에 유리한 부분만을 제도화하여 협약을 무력화하는 등 사회적 대화 및 협약을 반복적으로 왜곡했다. 물론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의 행보를 볼 때 사회적 대화의 양상이 이전까지의 경험과 완전히 같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입법화라는 측면에서 현재 국회의 상황을 고려하면 사회적 협약이 성사된다 하더라도 왜곡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된다.

 

노동자운동이 마주한 상황과 과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사회적 대화의 정당성, 사회적 대화의 장으로서 노사정위원회를 둘러싼 입장, 사회적 대화기구를 통한 사회적 협약의 가능성 및 정당성이 중요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론’을 기본적인 경제정책으로 천명하고 ‘노동존중사회’, ‘일자리창출’을 전면에 내세워 이명박-박근혜 정권과 차별성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한계도 분명하다. 문재인 정부는 한국 사회의 핵심 문제인 재벌체제 개혁을 회피하고, 한국사회 재건의 핵심 주체인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보장이라는 과제를 우회하고 있다. 또한 소득주도성장론은 장기불황을 극복하는 경제 정책으로서의 실효성에 물음표가 남아 있다. 

하지만 노동자운동의 구심으로서 민주노총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고, 과거 노동유연화 정책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는 가운데, 현재까지는 강제된 개혁보단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합의를 끌어내려 시도한다는 점은 이전과 달라진 측면이다.
노동자운동이 처한 역사적·구조적 조건을 극복해야 한다는 점 역시 고려해야 한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토대로 한 민주노조운동은 사업장을 넘어서는 교섭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그 결과 총노동 차원의 실천과 투쟁을 제도화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노총 출범 당시부터 많은 역량을 투여해온 정치세력화 운동은 한 순환을 마감했다. 이와 같은 조건에서 현재 제기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소위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노동시장 유연화, 구조조정 산업에서의 자본의 책임성 및 총고용보장 등 현안에 대한 민주노총의 사회적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한편 촛불 항쟁은 재벌체제 개혁, 노동3권의 전면적 보장 등 한국 사회의 근본적 개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한국사회 개혁에 대한 열망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맹목적인 기대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경제·노동 문제를 핵심 사회의제로 끌어올리고 개혁의 범위를 확장·심화시키는 과제를 안고 있다.

 

능동적인 전략과 태세가 필요하다

 
 
정부는 앞으로도 노사정위원회의 개편과 함께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복귀를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노동자운동의 목표가 사회적 대화나 사회적 협약 그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노사정위원회가 노동유연화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던 역사에서 증명된다. 민주노총은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를 역전시키기 위한 교두보를 확보한다는 전략적 목표를 중심에 두면서 투쟁과 교섭 방안을 입체적으로 수립해야 한다. 전략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전술적 수단으로서 사회적 대화는 세력관계와 조직 내부 조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추진해야 하며, 노사(산별)·노정·노사정 등 중층적 차원에서 제기되는 사회적 대화 각각에 대해서 목적·의제·기구 등 제반 조건을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 정책에 대한 순진한 기대 속에서 사회적 대화 및 사회 협약을 맹종하는 사회적 합의주의는 금물이다. 또한 사회적 대화와 사회적 합의주의를 동일시함으로써 투쟁의 성과를 공고화하고 사회적 영향력을 확장할 가능성을 차단하는 수동적 태도도 극복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① 길지 않은 시일내에 현재의 노사정위원회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 협약이 성사될 가능성은 매우 낮고, ② 사회적 협약을 제도화할 수 있는 정치적 조건의 부재, 논의해야 하는 의제가 불분명한 상황을 고려할 때 노사정 대화 그 자체보다는 전제조건으로서 산별교섭구조의 구축과 노정교섭을 통한 제도 개혁의 현실화가 오히려 중요할 수 있다. ③ 노사정 대화의 경우 협의틀 구축보다는 다루어야 하는 의제를 중심으로, 사안별 논의를 통해 의제를 사회화하고 재벌을 압박하는 사회적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 등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운동은 20년에 걸친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를 역전시킨다는 전략적 목표에 입각하여 노동유연화 악법(‘3제’) 폐기·임금 및 노동조건 개선의 핵심 수단으로서 노동기본권(‘노조할 권리’)의 전면적 보장·재벌 대기업을 정점으로 한 원하청 구조의 개편과 ‘좋은 일자리’ 책임 강화·간접고용 노동자의 실질적인 사용자로서 원청 책임 인정·산업 구조조정에서 총고용 보장과 기업 소유-지배구조 개선(재벌 및 대주주의 소유권-경영권 청산) 등을 사회적 의제로 제기해야 한다. 어느 때보다도 유능하고 섬세한 전략전술과 대중운동 실천이 필요하다. ●
 
 
 
 
덧붙이는 말

※ 본 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사회진보연대에서 발간한 소책자 《문재인 시대, 민주노총 진단과 과제》에 담겨 있다.

필자 소개

김동근 I 보건의료 공공성, 노동자운동 강화에 관심을 가지고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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