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그날 나는
  • 2017/09 제32호

10년 전 여름, 홈에버 매장을 점거했던 날

  • 진재연

계산대가 멈추자 매장이 멈췄다

2007년 6월 30일, 홈에버 상암점의 계산대가 멈췄다. 아침 10시 매장 곳곳에 있던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며 계산대를 하나씩 점거하기 시작했다. 계산대가 멈추면 매장이 멈췄다. 상암점은 계산직 노동자가 대부분 조합원이었고 매장을 멈추는 것에 이견이 없었다.

“고객 여러분. 이제부터 영업하지 않습니다. 저희 노동자들은 퇴근 두 시간 전에 해고 통보받고 있습니다. 투쟁이 끝나면 홈에버에 오십시오. 우리의 일자리를 되찾을 수 있도록 함께 해 주십시오”

2007년 7월 1일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많은 사업장에서 ‘2년 이상 일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지 않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그리고 외주화했다. 홈에버와 뉴코아에서 계산업무 등을 담당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700여 명도 해고되었다.

7월 20일 공권력이 투입돼 끌려나가기까지 21일 동안 홈에버 상암점 계산대 아래에서 잠도 자고 밥도 먹었다. 계산대 안쪽에는 조합원들이 자고 바깥쪽에는 연대 온 사람들이 잤다. 앉아 있는 것도 상상할 수 없었던 고된 노동의 공간이 잠시나마 넉넉한 유대의 공간이 되었다. 매일 관리자들의 눈치를 보며 숨죽이고 일했던 매장을 자신들의 힘으로 멈추었던 시간은 두려우면서도 해방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날도 따땃하니, 그때 생각하면 진짜로 따사로운 봄날 같아요.” 매장 점거했던 날들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조합원들에게는 삶의 빛나는 한순간으로 남아있다.

영화 〈카트〉와 드라마 〈송곳〉으로 많이 알려진 2007년 이랜드 투쟁은 노무현 정부의 비정규악법 철폐 투쟁의 상징이었다. 법 시행을 앞두고 자본의 대응을 예고하는 대량해고가 투쟁을 촉발했지만, 이미 그 전부터 오랫동안 이랜드 노동자들은 일상적인 모멸과 고통을 견디며 일하고 있었다. 손님인 척 가장해 감시하는 모니터링제, 강제로 발리는 빨간 립스틱, 정규직만 회원 가입할 수 있는 회사홈페이지, 손님과 회사 사이에서 정지해야만 하는 감정과 생각들. 오랜 시간 차별과 모욕 속에 노동해 온 그녀들에게 싸움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파업은 1년을 훌쩍 넘겨 510일이나 지나 끝을 맺었다. 사측은 외주화를 철회했고, 조합원들은 이랜드 홈에버를 인수한 홈플러스에 무기계약직으로 복직했다. 조합원들 대부분은 그렇게 현장으로 돌아갔지만 복직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12명의 핵심 간부들은 회사의 권고사직을 받아들이는 희생을 감수했다. ‘절반의 승리, 절반의 패배’라는 현실 앞에 서럽고 아픈 눈물을 흘렸다.
 
                                             ⓒ프레시안
 

희망을 만드는 투쟁

그때 나는 이랜드 조합원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함께 투쟁하고, 밤에는 술 먹고, 언니들의 말들을 받아 적었다. 저임금, 열악한 노동조건의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담당해왔던 삶, 그런데도 늘 보조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여성의 노동, 당연하게 무시되는 서비스 노동자의 감정에 대해 조합원들은 때로는 무심하게, 때로는 격하게 토해냈다. 조합원들의 일상을 아주 가까이 들여다보면서 최소한의 생활조차 멈춰있는 불안을 보았고, 현장으로 돌아가거나 노조를 탈퇴하는 동료들을 바라보는 힘든 속내를 공유했고, 끊이지 않는 회사의 회유와 협박에도 인간의 존엄을 지켜가는 품위를 보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싸우고 있다는 자부심, 지역대책위를 중심으로 한 힘 있는 지역연대, 여성노동자로서의 온전한 존재감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승리하기 위해 파업 투쟁한 게 아니라, 파업투쟁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승리한 거예요.”라고 무심히 말하던 최현미 조합원.

“이기든 지든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 거 같아요.”라며 환하게 웃던 윤수미 조합원.

“우리의 권리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또 작게는 우리 아이들에게 멀게는 후세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늘 한결같았던 장은미 조합원.

언니들의 든든하고 따뜻한 말들은 늘 내게 위로와 힘이 되었다. 2008년 11월 13일, 510일간의 파업을 끝내기로 하고 마지막 문화제를 하던 날 우리는 “잡은 손 놓지 말자”고 외쳤다. 북받치는 설움을 참지 못해 울음을 터뜨리며 현장으로 돌아간 조합원들은 사용자 측의 교묘한 탄압과 투쟁 이후의 후유증을 이겨내고 여전히 현장을 지키고 있다. 영국 테스코 자본이 떠나고 MBK파트너스가 인수하는 고용불안의 상황을 극복하고, 노동조합을 건강하게 지켜내기 위해 언니들은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2017년 현재 장은미 조합원은 홈플러스일반노동조합 정책국장으로 일하고 있고, 윤수미 조합원은 월드컵지부 지부장을 맡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용기 있는 노동자

벌써 10년이 되었다. <카트>보다 더 영화 같고, <송곳>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일상이 펼쳐지는 우리 사회의 노동 현장. 2007년 함께 투쟁하던 KTX 노동자들은 숱한 일을 겪고 싸우면서 여전히 거리에 있다. 2016년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19살 청년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간 구의역 사고가 일어난 지 1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위험의 외주화’는 멈추지 않고 있다.

그 속에서 한발 한발 전진해 만들어낸 성과들도 있었다. 비정규악법은 2007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존재하지만 법을 뛰어 넘는 정규직화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광주시청 청소노동자들이 눈물 나는 투쟁으로 직접고용을 쟁취했고, 서울시 다산콜센터, 서울지하철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의 승리로 확대되었다.

문재인 정부도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표방하면서 인천공항공사 정규직화를 시작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추진하고 있다. 물론 정부의 정규직 전환은 많은 한계를 가진다. 하지만 10년 전 비정규 악법을 밀어붙여 기간제 노동자의 대량해고와 외주화를 불러왔던 정치세력이 이제는 상시지속 업무에 대한 기간제 사용제한과 파견, 용역 노동자의 직접고용을 추진하고 있다. 공식적 반성은 없었지만 사실상 정책 실패를 자인한 셈이다.

오늘 우리가 작은 진전을 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이랜드 투쟁과 같은 용기 있는 노동자들의 행동 덕분임에 틀림없다. 10년 전 510일간의 힘든 투쟁을 이어갔던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여전히도 우리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 믿는다. 매장을 점거했던 그 시간들이 언니들에게 따뜻한 봄날이었듯, 내게도 언니들과 함께 한 날들이 너무나 소중했고 늘 고마운 마음이었다고  전하고 싶다. ●
 
 
필자 소개

진재연 | 사회진보연대 회원. 부천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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