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여는글
  • 2017/06 제29호

인터넷 시대의 내로남불

  • 홍명교
미카엘 하네케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문제적인 영화감독이다. 그는 당대의 가장 첨예한 모순, 현대 사회와 대중 이데올로기의 폭력성을 지독하고도 날카롭게 파고드는 <퍼니게임>, <하얀 리본> 같은 영화를 만들어왔다. 5년 만에 그가 들고 온 영화는 <해피엔드>. 프랑스 칼레의 냉담한 부르주아 가족을 통해 난민촌 강제퇴거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는 오늘날 대중이 “자기 보호 본능이 너무 뛰어난 나머지 지나치게 폐쇄적”이라고 말한다. 소셜미디어가 매개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작 제대로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이 장님·귀머거리가 돼버렸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말? 오늘날은 ‘모두가 평론가’이자 ‘모두가 기자’인 시대라 하지 않았던가? 500만 명이 매일 시사와 정치 문제를 다룬 팟캐스트를 듣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 댓글 창에 한마디씩 평론을 남기는, 바야흐로 ‘정치 부흥의 시대’라고 하지 않았던가? 

불행히도 하네케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의 인터넷 정치문화는 선호하는 정치인에 따른 편가르기, 음모론에 근거한 난타전에 갇혀 있다. 한국의 유력 정치 세력인 민주당 내부경선에서, 대통령 선거 본선 레이스에서, 그리고 문재인 당선 이후 보름 간 이어진 ‘진보 언론’에 대한 문재인 지지자들의 비난에서 우리는 보편성이 소거된 사회의 적나라한 풍경을 목격하고 있다.

‘어용지식인’이 주동하는 가짜 정보와 비뚤어진 정치 선동 역시 도가 지나치다. 민주당보다 왼쪽에 있는 이들을 ‘구좌파’이자 ‘적폐’로 규정한 어느 저렴한 정치학자의 언설은 막대한 사회적 영향력을 갖게 된 김어준 류의 음모론자의 선동과 조우했고, 최근 정치예능계의 핫스타 유시민에 다다라 대중적 지지를 얻었다. 이들은 자신의 정치적 지향이 성공할 수만 있다면 다소간의 정치적 양심이야 쉽게 내팽개칠 수 있어 보인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한 리버럴 지식인들의 이 같은 언설은 노동자운동과 진보정당운동에게 도전이 될 것이다. 꽤 많은 민주노총 조합원을 비롯한 진보정당 당원, 일부 간부들 역시 이른바 ‘진보 팟캐스트’의 애청자들 중 하나기 때문이다. 이들은 노동조합의 교육이나 집회 연설보다는 팟캐스트를 통해 시사 이슈를 익히고, 정치적 시야를 갖춘다. 그래서 한 줌의 사회운동 좌파보다는 자유주의 집권정당 편의 입장이 보다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우리는 비평과 전망이 소멸한 불행한 시대를 살고 있다. 헌데 대중이 정치와 미디어의 ‘소비자’이기만 한다면, ‘우리가 주권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현실 비판의 날카로운 무기와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사회를 향한 전망이 세워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 정부 초기 꽤 많은 것이 바뀐 것처럼 보이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잘 한 것은 칭찬하고 못 한 것은 비판하는 건강한 정치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비평과 전망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매일의 정치 뉴스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새 정부 정책의 근본적 문제와 한계를 탐색하고, 보다 긴 시야에서 우리의 전망을 찾는 일이 필요하다. 그래야 실천도 부박하지 않고 풍부해질 수 있다. 월간 《오늘보다》도 보다 폭넓은 접근성에 기반한 넓은 시야와 날카로운 비판성을 갖춰가리라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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