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노조 할 권리
  • 2017/06 제29호

‘주부사원’이라고 무시마라 우리는 도시가스 안전매니저다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도시가스분회 공순옥 분회장 인터뷰

  • 인터뷰·정리 황수진
“(딩동~♪) 가스검침 나왔습니다.” 

도시가스 검침원은 시민들에게 익숙한 존재다. 그러나 그들의 ‘노동’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는 «오늘보다» 2016년 3월호 ‘노조할권리’ 코너의 주인공이었다. 청소·경비노동자들이 ‘도심의 유령’에서 당당한 노동자로 거듭났던 과정을 전했다. 또 다른 노동자들의 노조 할 권리를 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서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검침원 조직화도 언급됐었다. 

이런 포부가 최근 실현되고 있다. 실제로 도시가스 검침원들이 노조를 결성한 것이다. 가스 검침 노동자들은 청소·경비노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당당한 노동자로서 세상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반가운 마음으로 주인공들을 만나봤다. 
 

집안일 하면서 돈도 벌려고

도시가스 검침원이 평소 하는 일은 고지서 송달, 검침(계량), 안전점검이다. 송달과 검침은 매달, 점검은 6개월에 한 번 진행한다. 그밖에 회사가 추가로 다른 업무를 시키기도 한다. 

“결혼해서 애 낳고 일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사무실 행정업무를 하다가 육아 때문에 결국 그만뒀죠. 그런데 우리집 주변에 검침원 자리가 났다고 연락이 왔더라고요. 출퇴근 시간이 딱 정해져 있지 않고, 동네에서 하는 일이니까 애들 보고 집안일 하면서 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생각했죠. 대신 월급이 적었는데 2000년 당시 60만원이었어요.”

대다수 검침원은 30대 이상 여성이다. 공순옥 분회장처럼 결혼과 출산 후에 육아·가사노동과 ‘병행’하기 위해 이 일을 선택한다. 그러나 실제 마주한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할당 세대를) 100% 점검하라더라고. 처음에는 설마 했어요. 그런데 진짜 다 하라는 거야. 처음에는 밤 11시까지 쫓아다녔어요. 아무리 동네라지만 주소를 보고 집 찾아가는 것도 힘들고… 일요일까지 일했어요. 이렇게 일하고 이 월급 받는 건 너무 말이 안 된다 싶었죠.”

검침원의 업무강도가 높은 가장 큰 이유는 한 사람이 담당하는 가구 수가 지나치게 많기 때문이다. 공순옥 분회장이 속한 강북5센터의 경우 1인당 3300~3400세대를 맡고 있다. 고객이 집에 없으면 여러 차례 재방문을 해야 한다는 것까지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숫자다. 게다가 요즘은 맞벌이와 1인가구가 늘어나면서 ‘대통령보다 만나기 힘든’ 고객들도 많다. 

고객센터는 이러한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비용 절감을 위해 노동자들에게 과도한 업무량을 강요한다. 아침 일찍 또는 저녁 늦게, 혹은 주말에 와달라는 고객이 많기 때문에 ‘자유로운 출퇴근’은 명목으로만 존재한다. 실제 밤낮 없이 일해야 하고, 연차는 그림의 떡이다. 

접근이 어려운 위치에 계량기가 달려있는 경우도 많은데 늘 급하게 일하다 보니 사고 발생 위험도 높다. 시민들의 도시가스 안전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이 정작 자신의 노동안전은 뒷전으로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검침원은 ‘간주근로제’를 적용받는다. 업무 특성상 일의 시작과 끝을 특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한 것으로 ‘간주’하는 임금체계다. 이 때문에 야간과 휴일 근무 등 시간외근로가 은폐된다. 실제 업무량과 업무시간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임금을 받는 이유다. 
 
도시가스분회 공순옥 분회장
 

‘주부사원’이니까

“노동조합 하자는 이야기는 몇 년 전에도 있었어요. 가끔 교육 받을 때 모여서 불만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분위기가 되기도 했죠.”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개인별로 업무를 할당받고 달성률을 측정하는 방식은 노동자들이 회사에 함부로 저항하지 못하게 했다. 잘못 찍히면 어려운 지역을 받거나 더 많은 일을 떠맡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업무 특성상 꼬투리를 잡기도 쉬워 징계의 두려움도 있다. 각자 맡은 공간에서 일하다보니 서로 만나거나 뭉치기도 어려웠다. 

“회사에 불만을 이야기하면 ‘너희는 주부사원이니까 월급은 그만큼만 줘도 되지 않냐’는 식으로 얘기했어요. 같은 고객센터 직원이어도 기사들(남성)은 우리보다 월급을 많이 받아요. 남자들은 가장이지 않냐, 너희는 주부사원이고. 그렇게 대놓고 차별했어요. 기분은 나쁘지만 실제로 주부들은 여기 나가면 또 다른 일자리 찾는 것도 쉽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꾹 참는 사람이 많았죠.”

가끔 송곳처럼 튀어나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곧 ‘쟤는 불평불만이 많아’라는 평가가 돌아올 뿐이었다는, 대한민국에 흔하디 흔한 직장 분위기. 그러던 일터에 작은 사건이 발생했다. 

녹번동에 재개발로 새로운 아파트가 생겼다. 사장은 검침원들에게 직접 입주자들을 만나 가스레인지 연결신청서를 받아오라고 시켰다. 사장 입장에서는 짭짤한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였지만 검침원 입장에서는 원래 업무를 하면서 영업까지 해야 하므로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사장은 돌아가며 영업을 하라고 시키고 수당을 책정했다. 

“하기 싫었는데 회사 일이니까 했어요. 근데 그걸로 4000~5000만원을 벌었대. 그 후에 추석이 왔는데 우리 떡값은 그전이랑 똑같고 행정직원이랑 기사들한테는 우리보다 20만 원을 더 줬더라고. 시간 쪼개서 일을 더 해준 건 우린데 푸대접을 하니까 화가 났죠. ‘진짜 계속 이런 대접 받고 살아야 되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 변하기 전에 그날로 다같이 노조 가입서에 사인해버렸어요.”
 

파업에 돌입하다

 
노조 가입의 낌새가 있자 사장이 갑자기 노사협의회를 하자고 했단다. 노조는 ‘외부인’이 끼니까 싫고 ‘우리끼리’ 해결해보자는 것이었다. 

“첫 노사협의회 때 우리가 얘기했던 게 체육대회 하지 말자는 거였어요(웃음). 반기 마치면 고생했다고 회식을 시켜주는데, 산을 가자고 하질 않나 체육대회를 하자고 하질 않나. 자기는 사무실에만 있으니까 답답하겠지만 우리는 맨날 걸어 다녀서 힘들잖아요. 그래서 그거 하지 말고 관광버스타고 꽃구경 가자, 바닷가에 바람 쐬러 가자고 했죠. 그거 하나 들어줬어요. 결국 노동조합 만드니까 그 다음부터는 다시 우리말을 안 들었지만요.”

노조를 깨기 위한 협박과 회유가 시작됐다. 개별면담을 잡아서 공략하거나 업무상 실수를 꼬투리 잡아 징계를 내렸다. 이 과정에서 동료 몇 명이 결국 노동조합을 떠났다.  

“감~히 노조를? 자기가 사장으로 있는 한 절대 안 된대요. 파업 전에 조정위원회에 갔는데 자기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노조 요구는 들어줄 수 없대요.” 

임금 인상, 식대(검침원 6만원, 기사·행정직 12만원) 차별 시정, 과도한 업무량 조정, 기본업무 외 추가업무에 대한 정당한 대가(수당)지급 등 당연한 요구를 했지만 모두 거부당했다. 결국 교섭은 중단됐다. 사장의 비뚤어진 ‘자존심’에 맞서 결국 노동자들은 파업에 나섰다. 

“2월 1일부터 3월 15일까지 했으니까 한 달 보름 했네요. 처음엔 그렇게 길어질 줄 몰랐어요. 서울도시가스 본사 앞에 가고, 서울시청도 가고, 하다하다 서울도시가스 회장님 집까지 가서 피켓팅을 했어요. 회장님이 뿔나서 당장 해결하라고 했다더라고요.”
 

고비도 있었지만

함께 시작했던 스물여섯 명 중에 여섯 명이 빠져나가자 맥이 빠지고 실망감도 들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이탈자 없이 마지막까지 스무 명이 똘똘 뭉쳐서 싸운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파업이요? 힘들기도 하고 즐겁기도 했어요. 저희는 간부를 따로 뽑지 않았어요. 후배들은 ‘언니들이 나서야지’하고 선배들은 ‘젊은 사람들이 해야지’라고 생각해서 누구 하나 앞장서기 힘들었거든요. 한편으로는 간부를 정하면 그 사람이 사측의 타깃이 되니까 그냥 모두가 사표 낼 각오로 하자고 했어요. 발언이나 언론 인터뷰도 돌아가면서 했는데 처음엔 ‘못해, 못해’ 하다가 막상 하면 다들 너무 잘하는 거예요. ‘어머 쟤 너무 잘해’하면서 놀라곤 했어요.”

인원이 적어 투쟁을 해도 누가 관심이나 가질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서경지부 노동자들의 연대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희망연대노조를 비롯한 여러 선배노조와 사회단체, 진보정당, 학생들도 찾아와 큰 힘을 주었다.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에 열심히 참여했던 것 또한 특별한 기억이다. 직접 무대에 서서 연설하고 촛불 시민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몰라요.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못할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까 되네?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직장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 대한 주인의식이 생긴 거 같아요. 그리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어요. 상무님이 우리를 누르려고 하는 권위의식이 강하거든요. 예전에는 회의시간에 상무님한테 한마디도 못했는데 이제는 막 대들어요. 그래서 지금은 상무님이 우리 노조원들 무섭대요(웃음). 자신감이 생긴 게 가장 큰 변화에요.”

파업에 돌입하면서 고지서에 노조 전단지를 꽂아서 돌렸다. 언론에도 많이 보도되었다. 시민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파업을 통해 우리 노동을 알리는 효과가 있었어요. 끝나고 돌아가니까 고객들이 좋은 성과 있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예전에는 우리한테 짜증내는 분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부드럽게 대해주시는 걸 많이 느껴요. 스쳐가는 존재로 여겼던 우리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하시게 된 것 같아요. 솔직히 예전엔 이 일이 좀 창피해서 어디 가면 ‘조끼(작업복) 벗자’했는데 지금은 자신감이 생겼어요.”

강북5센터 노동자들의 파업은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우선 일단락 됐다. 그동안 차별 받았던 식대 일부를 고객센터로부터 받아냈다. 업무 할당량의 99%를 채우라는 압박도 완화되었다. 본사가 고객센터에 수수료를 지급하는 방식도 기존 건당 지급에서 총괄원가제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서울시를 움직이다

검침원들이 서울시를 찾아갔던 이유는 서울시가 문제 해결의 키를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침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체들은 고객센터, 도시가스회사, 그리고 지자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시가스 공급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도시가스공사가 천연가스를 수입해 민간 도시가스회사에 도매를 하면, 도시가스회사들이 최종적으로 소비자들에게 공급한다. 수익성을 우선시하는 민간기업이 소매공급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규제와 감독이 필요한 시스템이다. 도시가스회사는 검침, 고지서 송달, 안전 점검, 계량기 관리, 민원 처리 등 각종 업무를 고객센터에 위탁하며, 고객센터는 검침원, 행정직, 기사들을 고용해 이러한 업무를 수행한다. 

그런데 검침원들의 임금은 서울시가 책정한 지급수수료에 따라 지급된다. 검침원들의 임금·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서울시의 개입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검침원들이 노조를 결성해 스스로의 임금과 노동실태를 고발하고 나서면서, 서울시가 책정한 임금과 검침원에게 도달한 실지급액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적정인원으로 운영되는지, 인건비가 제대로 집행되는지 서울시가 직접 도시가스회사와 고객센터를 감독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우리가 투쟁하기 전에는 서울시 관계자들도 도시가스 요금만 신경 썼던 거 같아요. 이제는 박원순 시장님도 우리 임금이 너무 적다는 걸 인정했고, 직접 시찰 나와서 우리 업무를 체험해보면서 일이 너무 힘들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서울시가 내린 가이드라인이 잘 안 지켜졌다는 걸 인정했고 당장 2017년부터 임금과 별도로 수당을 더 주기로 했어요.”

얼마 전에는 서울시에서 직접 가스검침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다른 센터의 노동자들도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확인하고 가입서를 제출했다. 

“아직 교섭이 끝나지 않았어요. 서울시 지급수수료가 7~8월에 결정되는데 우리 임금협상도 그것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우리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려면 노동조합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야죠. 아직 할 일이 많아요.”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도시가스분회 조합원들
 

저력 있는 노조

‘도시가스 안전매니저’라는 명칭은 검침원 업무의 공공성과 사회적 중요성을 강조한 이름이다. 

“우리가 가스 새는 거 많이 발견해요. 전문가니까요. 한 눈에 척 알고, 기계보다 코가 더 먼저 알아요. 고객센터에서는 사고 나면 안 된다고 툭하면 협박을 하는데, 그렇게 중요한 업무면 그만큼 대접을 해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우리가 더 꼼꼼히 볼 수 있게 업무량을 줄여 주든지. 기본업무 말고 ‘간 김에’ 해오라는 건 또 왜 그렇게 많은지.” 

비슷한 일을 하는 전기, 수도검침원과 비교해도 가스검침원은 가장 업무량이 많고, 임금은 가장 낮다. 

“그 중에서도 서울도시가스가 젤 후졌고, 서울도시가스 중에도 강북이 젤 후졌다고 옛날부터 그랬어요. 근데 지금은 강북이 제일 낫대요. 왜 그러겠어요? 노조 한다고 들썩이니까 사장들이 조금씩 챙겨줘서 그렇죠. 이것만 봐도 노조를 해야 되는 이유가 분명한데.” 

노조가 쟁취한 것 중에 노조원들만 누린 것은 하나도 없다. 도시가스분회 조합원 숫자는 아직 적지만, 서울시 전체 검침원들의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 좋은 결과를 내야 우리가 더 큰소리 치고 어깨도 으쓱할 수 있는데. 잘 되겠죠?”

밖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직접 해보니 민주노총은 ‘일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조직’이라고 강조하는 공 분회장의 목소리에는 열정과 자신감이 가득했다. 

파업이 끝난 후 조합원들은 함께 노동법을 공부하고 있다. 알아야 싸울 수 있고 아는 만큼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큰 가능성과 저력을 가지고 있는 노동조합. 도시가스분회가 앞으로도 선전한다면 전국의 가스검침원들이 함께 투쟁하는 날도 꿈꿔볼 수 있을 것 같다. ●
 
 
필자 소개

황수진 | 대안적 노동조합운동의 구체적 사례에 관심이 많다.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운영위원과 사회진보연대 조직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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