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2017/04 제27호
M자 곡선
며칠 전의 일이다. ‘아이돌봄서비스’에 대해 알아보려고 아이가 낮잠 자는 틈을 타 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혼자 아이를 키우시나요?”
“아니요. 아빠랑 함께 키웁니다.”
“맞벌이신가요?”
“아뇨.”
“장애가 있으신가요?”
“아닌데요.”
“집에 질환을 앓는 분이 있나요?”
“아닙니다.”
질문공세를 마친 담당자로부터 정부가 정한 양육공백사유에 해당하지 않아 돌봄 서비스 지원이 어렵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과정에서 새삼 깨달은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 아이 돌봄은 철저히 여성 개인, 개별 가정에게 전가되어 있다는 것.
임금노동을 하지 않는 ‘전업주부’라든지, 휴직이나 실업 중인 경우라든지, 나처럼 정부의 기준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하루에 단 한 시간, 아니 단 몇 분이라도 육아가 아닌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허용되지 않는다. 출산과 양육은 의무로만 존재할 뿐 여성의 보편적 권리 실현을 위한 제도는 전무하다.
이런 현실에서 소위 ‘경단녀(경력단절여성)’ 혹은 ‘맘충’이 되지 않기 위한 이 시대 여성들의 몸부림은 처절하기 짝이 없다. 더욱이 단체나 노동조합 등의 공간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은 어떻게 재생산의 권리를 행사하면서도 경력단절여성이 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엄마라는 정체성과 ‘나, ○○○’라는 정체성을 어떻게 동시에 가져갈 수 있을 것인가?
3월 8일 여성의 날에 출산 후 첫 집회에 참가하고, 다음 주말에는 몇몇 선후배들과 만났다. 그 자리에서 ‘우리 안의 M자 곡선’ 이야기를 꺼냈더니,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선배가 웃으며 말한다.
“M자 곡선은 자녀가 모두 성장한 이후 중년의 여성들이 비정규직과 일용직으로 다시 노동시장에 복귀한다는 건데, 우리는 아직 아이도 다 못 키웠고 노동시장이든 활동공간이든 어디로도 복귀를 못한 상황이잖아.”
그랬더니 둘째 출산 후 노동조합으로 활동복귀를 앞두고 있는 후배가 외친다.
“아니죠. 저도 곧 복귀하고 ○○ 언니도 활동 중이잖아요.”
아직 M자형 곡선에 끼지도 못한다는 씁쓸한 현실이든, 어떻게든 활동을 이어나가려 애를 쓰는 현실이든, 모두 어렵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엄마가 된 우리 여성 활동가들은 그렇게 무언의 응원을 나누고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누군가 이렇게 결론지었다.
“국가가 책임져야지!”
정답이다. 여성의 재생산 권리를 보장하고 아이를 함께 키우는 나라를 만들어야지. 촛불의 열기 속에 그런 나라의 형상도 만들어야겠지. 물론 거기까지 가는 길은 고단하기 짝이 없겠지만 여럿이 함께 하면 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여성 활동가들이 겪고 있는 현실적 문제들에 대해 고민해오고 있는 이들을 차근차근 만나가며 지혜를 모아봐야겠다.
근데 그러려면 시간이 나야할텐데? 방법이 있나. 우선은 아기 업고 만나러 다녀야지, 뭐! ●
- 덧붙이는 말
문설희 | 4월 11일이면 태어난지 백일이 되는 아이를 키우고 있으며, 사회진보연대 사무처 상근활동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