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 2017/04 제27호
대통령 탄핵과 정치의 사법화
헌법재판소 판결, 성숙한 민주주의의 결과인가?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했다.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헌재의 전원일치 파면결정, 적폐청산의 신호탄이 되어야 한다’는 논평을 통해 파면 결정을 “격하게 환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6년 10월 29일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촛불집회를 개최할 시점부터 사회운동은 국회 탄핵소추 방안에 우려를 표했다. 그 때문에 탄핵보다는 박근혜의 ‘즉각 퇴진’을 주장했었다. 왜 그랬나?
첫째,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될 가능성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판단. 새누리당은 2016년 20대 총선에서 24석이나 감소했으나, 여전히 122석을 차지해 그들 중 이탈표가 없다면 재적의원의 3분ㅈ의 2를 넘을 수 없었다.
둘째,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더라도, 헌재의 탄핵심판이 개시되면 박 대통령의 진퇴 문제에 사회운동이 개입할 여지가 봉쇄된다는 판단. 실제 보수언론은 탄핵심판 개시 후, ‘혼란을 일으키지 말고 차분히 결과를 기다리라’는 식으로 집회의 자제, 심지어 중단을 요구하고, 나아가 ‘헌재는 어떤 외압도 고려하지 말고 온전히 법에 따라 판단하라’는 식의 주문을 내놓기도 했다. 다시 말해, 헌재가 사법적 절차를 개시하자마자 사회운동은 중립적 의사결정을 교란하는 ‘외부세력’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셋째, 헌재의 탄핵심판 인용을 장담할 수 없다는 판단. 헌법재판소는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되는데, 대통령이 3인, 국회에서 3인,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을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런데 대법원장도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 지명 3인도 여당 몫 1인, 야당 몫 1인, 여야합의 1인이다. 따라서 실제 구성은 8:1 또는 7.5:1.5로, 대통령과 여당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법조계의 예상과 달리 헌재가 2014년 12월 통합진보당 해산결정을 내린 것처럼 헌재 구성은 매우 보수적이었다.
물론 이러한 이중·삼중의 장벽을 넘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 낸 것은 그야말로 ‘성난 민심’이었다. 그렇다면 최종 결과가 국민 다수의 의견과 일치하므로 애초의 판단과 우려는 과도하거나 부적절한 것이었나? 만약 이번과 유사한 다른 사태가 벌어지면 더 이상 헌재의 결정을 의뢰하는 데 주저할 필요가 없을까?
정치의 사법화, 대안은?
사회운동의 우려는 근본적으로 따져보면 ‘정치의 사법화’에 대한 비판으로 집약될 수 있다. 정치의 사법화란 한마디로 국가의 중요한 정책 결정이 정치 과정이 아닌 사법 과정으로 해소되는 현상을 말한다. 먼저, 헌법재판소가 위헌심사 권한을 행사하여, 국민이 선출한 권력인 입법부가 제정한 법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가 무효화 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또 정당이 정치적 경쟁에서 승리하려는 수단으로 사정이나 특별검사, 탄핵과 같이 비선거적 수단에 의존하는 행위를 가리키기도 한다. 전자는 사법부가 일종의 입법권을 행사한다는 의미이고, 후자는 사법부가 정치적 무기가 된다는 뜻이다. 그 결과 ‘제왕적 사법부’가 출현한다.
기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은 국내에서도 ‘정치의 사법화’ 현상에 관한 토론을 촉발시켰다. 나아가 그 후로도 동성동본 금혼, 이라크 파병, 낙천낙선운동, 간통죄, 사형죄, 존엄사, 국가보안법, 양심적 병역거부 등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안이 연이어 헌재에 맡겨지며 그 추세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도 정치의 사법화를 어떻게 인식할 것이며, 그 대안은 무엇인가를 두고 상당히 활발한 논의가 전개되었다.
그 요지를 살펴보면, 정치의 사법화에 관해 제시되는 대안은 큰 틀에서 보면 ‘정치’(정당 및 의회)에 대한 개혁방안과 ‘사법’(헌재)에 대한 개혁방안으로 나뉜다. 먼저 정치개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은 정치의 사법화가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으로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를 지목한다. 즉 대의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의회가 마비상태에 빠져 문제해결 능력을 상실하므로 사법부가 새롭게 ‘문제해결자’로 부상한다는 진단인 셈이다. 그렇다면 대의제를 부활시킬 수 있는 정당개혁 방안은 무엇인가? 이에 관해서는 서로 상반되는 견해가 있다.
한편에서는 ‘대중정당’ 모델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정당이 사회적 ‘균열구조’, 즉 계급구조에 근거한 대중정당으로 재편돼야 의회민주주의가 재활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서유럽의 보수-혁신 양당구조를 이상화하는 주장인 셈인데, 혁신정당 즉 사민당이나 노동당이 노동자계급의 요구를 의회제를 통해 대변함으로써 서유럽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었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이와 정반대로 원내정당 모델이 정착되어야 의회제가 작동될 수 있다는 입장도 있다. 서유럽 사민당이 쇠퇴하는 현상처럼 계급적 대중정당 모델이 더 이상 다수 유권자의 이익을 대변할 수 없으므로, 노동조합이라는 대중적 기반과 거리를 두는 (의원중심) 원내정당 모델이 도입되어야 포괄정당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미 ‘저비용·효율성’ 논리에 따라 지구당을 폐지하고, 당원중심성을 약화시킴으로써 기본 틀은 원내정당을 지향하고 있다.)
다음으로 사법, 즉 헌법재판소 개혁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있다. 이 입장에 따르면 헌법재판관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국회와 대통령에 비해 민주적 정당성이 약할 뿐만 아니라, 독립성과 전문성의 원리에 비춰 미흡한 점이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재판관이 임명권자에 대해 독립적인 구조라 말하기 어렵고(대통령·여당이 9명 중 8명을 지명), 재판관 전원이 법조계 인사로 충원되므로 매우 협소한 인적 네트워크에 의존한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재판관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거나 국회가 임명하는 방식으로 민주적 정당성을 보완하는 개혁이 필요하며 헌법재판소가 다루기에 적합하지 않은 영역이 있음을 인정하고, 정치 문제의 사법화를 자제하는 정치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러한 논의는 정치의 사법화를 객관적 현상으로 인식하고 구체적 대안까지 모색한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으나, 역시 맹점은 존재한다. 단적으로 왜 서유럽식 대중정당인 사민당·노동당은 쇠퇴하게 되었는지, 나아가 원내정당·포괄정당으로의 성격 전환을 사실상 완료한 후에도 왜 정치위기가 지속되고 있는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의회민주주의의 위기와 그 효과로서 정치의 사법화, 우파 인민주의 정치세력의 발호는 세계적으로 목격되는 정치현상이다. 따라서 원인 역시 세계적이라고 추론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이는 세계적 수준에서 경제·사회정책의 신자유주의적 수렴과 분리할 수 없다. 경제정책의 신자유주의적 수렴은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명분으로, 세계적 경제기구를 매개로 관철되는 바, 이는 기술관료·전문가의 엘리트 지배를 낳았다. 따라서 기존 정당 간 이념적, 정책적 차이는 점차 소멸되고 정당의 전통적 지지층은 해체되었다. 그에 따라 대의제의 위기는 가속화되지만, 각 정당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부패·비리 이슈를 매개로 비선거적 수단에 더욱 의존하므로 오히려 대중의 정치 환멸은 더 심화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으로의 세계적 수렴이라는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제도적 해법은 한계를 노정할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소 판결은 성숙한 민주주의의 결과인가
사회운동은 처음 판단과 달리, 사태 전개를 거치며 박근혜 퇴진을 현실화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안으로 사실상 국회의 탄핵소추를 지지했고, 탄핵소추안 가결 후에는 탄핵인용을 요구했다. 보수언론은 헌재 선고 전후 시점에 헌법재판소 결정을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 결과 사회운동이 애초 의도했던 바와 달리 헌법재판소의 ‘헌법수호자’로서의 위상을 강화하는 효과를 낳았다.
이런 결과가 박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바로 잡겠다는 목표의식에 부합했는지, 오히려 향후 사법부 지배라는 보수적 효과를 산출했는지 깊이 따져보아야 한다. 이제 탄핵인용 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만큼, 지난 5개월을 차분히 복기하고 우리 사회운동이 간과해선 안 될 쟁점들에 대한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