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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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3 제26호

누가 게임개발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나

게임업계 노동실태를 돌아보다

  • 편집실 기획국장 김경민
방준혁 넷마블게임즈 의장이 18일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개최된 
제3회 NTP에서 발표하고 있다 ©넷마블
 
몇 해 전 개봉한 영화 <행복한 사전>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15년간 준비해온 사전의 후반 편집 과정에서 중대한 오류가 발견된다. 처음부터 모든 내용을 검토해야 할 상황에서 정해진 발매일을 미룰 수는 없다. 

이에 출판사 소속 정규직은 물론이고 계약직 사원, 아르바이트생들 모두 퇴근을 고사한 채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오류 수정에 몰두한다. 모두가 기꺼이 구슬땀을 흘리며 뿌듯하게 일하는 모습이 보이지만 어딘가 개운치 않다. 영화의 원제는 <배를 엮다>였으나 한국에서는 <행복한 사전>이라는 아이러니한 제목으로 개봉을 했다. 한 번 물어보자. 행복하다니, 행복한 건 과연 누구였을까?

최근 넷마블에서 근무하던 노동자 세 명이 잇따라 사망하면서 게임산업의 노동실태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게임산업 종사자라면 자유로운 업계 분위기와 창의적인 업무 환경 속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할 것이란 인식이 무색하게도, 사망 사건 이후 공개된 각종 통계들과 설문 결과들은 충격적인 숫자로 가득했다. 앞서 언급한 영화가 묘사하고 있는 아름다운 합심과 자발적 퇴근 반납이라는 포장을 걷어내고 나면 사실 그 자리에 남는 것은 바로 이런 노동실태다. 게임개발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보여주는 수많은 통계들 중 주목해야 할 부분을 짚어보고, 그 함의와 향후 남겨진 과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게임업계 노동실태가 밝혀지다

지난 2월 9일 정의당 이정미 의원· 노동자의미래 주최로 토론회 ‘넷마블 노동자의 돌연사, 우연인가 필연인가?’가 열렸다. 여기서 게임개발자연대가 2014년부터 시행해온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를 보면 ‘사람을 갈아 게임을 만들고 있다’, ‘자살을 고민하게 하지 말라’는 노동자들의 절박한 외침에 온몸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게임개발자들의 노동환경에서 가장 고질적인 문제는 장시간 노동인데, 이것이 ‘간헐적이고 집중적인 초장시간 노동’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용된 한 게시판의 설문조사를 보면 한 번 출근해서 36시간 이상 회사에 머물렀다는 응답이 30퍼센트를 넘는다. 그리고 이 ‘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은 주로 20대 후반(26.5퍼센트), 30대 초반(39.7퍼센트)에 걸쳐 있다. 청년고용률이 85퍼센트에 달하는 IT업계에서 청년노동자들은 평균적으로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하고, 크런치 모드(Crunch Mode, 데드라인을 맞추기 위해 야근과 특근을 반복하는 것)에 돌입하면 꼬박 2박 3일, 3박 4일 동안 일하는 것이다. 청년의 피를 빨아 성장하는 산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음은 임금이다. 개발자들은 자신을 ‘갈아 넣은’ 만큼 제대로 된 임금을 받고 있을까? 초과근로가 당연시되는 직종에서는 근로계약을 맺을 시 ‘포괄산정임금제’를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각종 법정수당들(연장근로수당, 야간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 등)을 따로, 또 정확히 계산하여 합산하는 대신에 기본급을 따로 정하지 않고 월급을 통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에도 취업규칙에 명시된 기준 이상의 휴일 근로 및 추가 근로에 대한 수당은 별도로 지급되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빈번하게 크런치 모드에 돌입하는 게임업계에서도 포괄임금제로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비율이 53퍼센트를 넘는다. 자신이 어떤 형태로 임금을 받는지 잘 모르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35퍼센트가 넘었기 때문에 실제로 포괄임금제에 해당하는 비율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봐야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초과근로가 고정적인 업체의 41.4퍼센트가 포괄임금제를 적용하고 있다. 그중 게임업계의 포괄임금제 적용 비율은 평균을 웃돈다. 휴가 관련 수당, 야근 수당을 따로 지급받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각각 20퍼센트, 10퍼센트이고, 실제로는 연장 근무의 경우 저녁 식대와 교통비만 지급되는 ‘업계 관행’까지 만연하다고 하니, 게임업계 노동자들은 사실상 무료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초장시간 노동에 포괄임금제가 적용되기 때문에 개발자들의 평균 연봉(3861만 원)을 시간당 임금으로 환산했을 때, 최저임금 미만이 3.3퍼센트, 임금근로자 중위값인 8870원에 미달하는 비율이 19퍼센트나 된다는 사실이다. 그럼 평소에 이렇게 일을 시켜먹었으니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인센티브라도 챙겨주지 않을까? 

하지만 이 역시 지나친 기대다. 회사에서 인센티브를 제안했더라도 실제 관련 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는 30퍼센트가 채 되지 않는다. 실적이 좋더라도 약속한 만큼의 인센티브를 받지 못한 경우가 46.8퍼센트에 달한다. 이들이 만들어 낸 부가가치는 다 어디로 간 걸까? 부는 위로만 쌓이고 있다.
 
 

고용불안 속에서

게임산업 종사자들의 전체 경력과 현 직장에서의 근무 기간을 비교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설문 응답자 중 5~9년의 경력을 가진 사람의 비율이 31.9퍼센트, 10년 이상이 28.7퍼센트에 달하고 있는 반면 현 직장 근무 기간은 6개월~2년 미만의 비율이 약 60퍼센트 이상으로 큰 비율을 차지했다. 이를 잦은 이직에 관한 수치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업계에 몸담은 지는 오래되었어도 한 직장에서 오래 버티기 힘들다는 것은 장시간 노동뿐만 아니라 임금 체불, 고용불안이라는 요소와도 관련되어 있다. 개발자들은 마치 자신이 만들어 낸 가상의 캐릭터처럼 이 맵, 저 맵, 그리고 또 다른 맵을 전전하고 있다.

직무에 따른 연령 분포 역시 의미심장하다. 10년 이상의 경력자가 전문직(개발자, 아티스트)에 종사하는 비율은 39.6퍼센트인 반면 사무직에 종사하는 비율은 55.4퍼센트로 절반을 넘었다. 사무직이 차지하는 비율은 5~9년차에서 10년차 이상으로 넘어가며 눈에 띄게 상승하고 있다.(5~9년차 16.1퍼센트, 10년차 이상 55.4퍼센트) 대체로 10년가량을 종사한 후 사무직을 맡는다는 것인데, 사무직으로 전환된다는 것이 경력자로서의 ‘대우’를 받는다기보다 똑같은 장시간 근로에 노출되면서 직군만 변경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개발자로서의 커리어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설계가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게임업계에서의 고용불안은 외부적인 요인뿐 아니라 내적인 논리에 의해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새로운 위험, 개발사의 유사-하청화

최근 넷마블 노동자의 돌연사는 ‘장시간 노동’이라는 만성적인 위험에 새로운 위험 요인들이 덧붙여지면서 발생한 것이다. 새로운 위험 요인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개발사의 유사-하청화 경향이다. 2013년 이래 게임시장이 모바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중소규모의 개발사가 살아남기 더욱 어려워졌다. 영화 배급사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게임 퍼블리셔들이 이익은 독식하고 손실은 중소 개발사에 전가하는 구조가 자리 잡으면서, 영세 개발사의 파산이 잦아지고 임금 체불과 고용불안이 빈번히 일어났다.

다시 말해, 중소 개발사들이 더 많은 유저를 확보하고 효과적인 마케팅과 홍보를 하기 위해 넷마블, 한게임 같은 대형 퍼블리셔에 의존하게 되고, 이로 인해 개발사와 퍼블리셔 간 위계가 생겨나기 시작한 경향을 유사-하청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토론 자료에 따르면 “대형 퍼블리셔는 여러 개의 개발사를 ‘거느리면서’ 또는 자회사의 형태는 아니더라도 시장 지배력을 통해 개발사 간 경쟁을 유도하고 결과물을 수시로 평가해서 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런칭”한다. 즉, 문화산업의 경우 한 상품이 시장에서 성공할지 실패할지 불확실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개발 과정의 리스크를 중소 개발사들에게 전가하여 유통 과정에 대한 통제율을 높인다는 것이 그 이유다. 제조업에서 나타나는 다단계 하청 구조와 이를 통한 리스크 전가 방식이 게임산업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게임산업은 여전히 컨텐츠산업의 대표 주자로 각광을 받으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매출과 이익은 대기업으로만 집중되고, 게임산업 전체 종사자 수와 임금은 하락세에 있다. 물량이 쏟아지면 노동자들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잔업과 특근이 반복되고, 물량이 줄면 예고 없는 휴업과 해고가 이어지는 공단의 일상과 크런치 모드, 일주일 두 번 출근(한 번 출근하면 2박 3일 내지 3박 4일을 일하는 것) 개발자들의 ‘치가 떨리는’ 일상이 우리 시대 노동의 풍경이다.
 
 

뒤늦은 출발선에 서다

한편 토론회에서는 예전에는 게임업계 장시간 노동을 차악의 선택, 또는 억압 기제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웠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개발자들이 자신의 노동을 작품을 만들기 위한 예술혼, 헝그리 정신을 불태우는 ‘인고의 과정’으로 여겨왔다는 것이다. 업무에 있어 비교적 자율성이 높고, 다른 컨텐츠산업과 유사하게 작업과정 자체가 낭만화되는 경향이 많았기 때문에 게임산업의 노동 실태는 쉽게 가시화되지 못했다.

우리는 이제야, 열정 착취를 넘어 생명 착취로 나아가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뒤늦은 출발선에 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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