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2017/03 제26호
편지를 썼다
밤이고 낮이고 평일이고 주말이고 빨빨거리며 동네를 돌아다니는 가스검침원들을 보며 궁금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대충 알 것 같았다. 당연히 정규직은 아니겠고, 시간외수당도 못 받을 것 같고, 갖은 수모를 당하며 일하겠지 싶었다. 마주칠 때면 궁금했지만 그래도 물어본 적은 없다. 주구장창 노동 관련 기사를 쓴 ‘기자’였던 때에도,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대다수인 노동조합의 ‘활동가’가 된 이후에도 나는 그들에게 묻지 않았다.
그들이 건물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또 외벽에서 아슬아슬 가스계량기의 눈금을 확인하는 모습을 보며 맘을 졸이고, 일 년에 두 번 안전점검을 받을 때면 검침원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현관문을 열어두고, 간혹 문틈으로 통화내용을 엿들으며 그들의 노동 강도를 추측하기도 했지만 나는 검침원에게 “토요일 오전에는 가능할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그저 그런 고객이었다.
2017년 2월 7일에야 진짜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검침원들이 난생처음 파업을 시작했고, 내가 있는 사무실을 찾아온 덕이다. 이들을 맞닥뜨리고 나서야 나는 그동안 잊고 지낸 질문들을 했다. 그리고 알게 됐다. 검침원 한 사람이 무려 3400가구를 맡고, 하루에 3만 걸음을 걷는다. 식대는 고작 5만원에 월급은 120만 원 수준이다. 희망연대노조 조합원들처럼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사실상 이들의 임금을 결정할 수 있다. 이런 사실들을 그제야 알았다.
부끄러웠다. 그날 편지를 썼다. “동지들이 권리의 눈금을 올리는 만큼, 모든 노동자들의 권리도 강해진다”고, “검침원 동지들의 파업을 지지하고 연대하겠다”고 썼다. 검침원 동지들이 볼 수 있도록 우리 사무실 현관문에 붙였다. 그리고 다음 날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 달려갔다. 마이크를 잡고선 “하루에 수만 걸음 걸으며 다른 사람의 이름과 숫자를 기록하고 확인하는 동지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파업을 시작했다. 자신의 투쟁을 직접 기록하고 자신의 권리를 직접 확인하고 있을 것이다. 동지들의 싸움을 지지하고 연대하겠다”고 말했다.
사실 처음에는 스무 명 남짓한 대오를 보고 걱정부터 들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 말마따나 “반찬값 벌려고 나온 아줌마들”이라면 이렇게까지 싸울 수 있을까. 파업은 어느새 스무날을 훌쩍 넘겼다. 힘겨운 싸움을 해나가는 스무 명의 조합원에서 희망을 본다.
2000년대 초반 청소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조직한 것처럼 2017년 검침원들은 자신의 동료들과 시민들을 조직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훌륭한 방식으로 조직 중이다. 나는 조직됐다. 이제 당신 차례다. ●